[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어제는 오랜만에 책을 사러갔다. 바오로 딸과 아가페 서적이 가까이 있는 분당엘 갔다. 오랜만이라 쉽게 서점을 찾지 못했다. 두 곳 모두에 이전에 근무하시던 분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열 권 넘게 책을 사서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환승하는 복도에 어떤 여인이 돈 바구니를 앞에 놓고 엎드려 있었다. 빨리 걷느라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어드렸다. 부끄러움이 많은 분인 것 같다. 만 원짜리를 보았다면 고맙다는 인사를 대여섯 번은 했을 텐데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신림역에 내렸다. 나이 든 사람들을 싸게 해주는 미장원이 있기 때문이다. 배꼽시계가 점심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었다. 미장원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얼른 눈에 띠지 않았다. 그래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은 후 미장원으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삼천 원짜리 머리를 깎으면 도무지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머리를 안 감겠다고 말하고 빨리 깎아주기를 기다렸지만 미용사가 성의껏 깎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마음에 드시느냐고 해서 최고라고 말해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반복했다. 정말 너무 고마워서 팁을 좀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삼천 원 짜리 머리를 깎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참았다.

책이 들어 있는 무거운 짐을 들고 집으로 오는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폐휴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도 꾸부정하고 힘이 들어보였다. 그런데도 박스들을 펴서 가지런히 쌓고 있었다. 며칠 전 버리려고 모아 둔 옷이 생각나서 할머니에게 드리면 가져가시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옷이 폐지보다 비싸다면서 가져가시겠다고 했다. 방금 전에 한 젊은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폐휴지를 다 가져가서 남은 게 없다고 투덜거리셨다.

그분과 함께 집으로 왔다. 버리려고 모아둔 운동화와 구두들이 있어 그것도 가져가시겠느냐 물었더니 좋다고 하셨다. 상당히 무게가 나가서 옷은 다음에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잘 쌓으면 충분히 가져가실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옷과 구두를 큰 봉지로 세 개를 더 가지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한 번에 다 가져가시는 게 무리일 것 같아 차로 실어다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거듭 사양하셨다.

할 수 없이 그러면 잘 가져가시라고 한 후에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할머니는 미안해하시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셨다. 버려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아서 할머니의 연락처를 물었더니 얼른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셨다. 이렇게 폐휴지를 모으러 다니시느라 반찬은 제대로 해드시냐고 물었더니 잘 못해 드신다고 했다. 김치는 있다고도 했다.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거동이 불편한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셨다. 여러 숙제가 생겼다.

어쨌든 나는 삼천 원짜리 머리를 깎고 제일 싼 칼국수를 먹고 만 원짜리를 이렇게 드리는 삶을 살고 있다. 잘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삶이 좋다. 어제는 그래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하루를 잘 보냈다.

사실 며칠 전에는 기회를 놓쳤다. 키가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할머니가 카트에 박스를 가득 싣고 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그분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잠시 망설이는 순간에 그분이 빠른 속도로 멀리 사라졌다. 그렇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시간이 언제나 충분한 것이 아니다. 망설이면 놓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반사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더크 웰림스가 생각난다. 그는 아나뱁트스트였다. 당시 아나뱁티스트들은 박해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예배를 드리다가 그들을 체포하기 위한 사람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흩어져 도망을 갔다. 그런데 더크를 추격하던 추적자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호수에 빠졌다. 그냥 두면 당연히 죽는다. 더크는 즉시 돌아서 추적자를 구했다. 추적자는 구조를 받은 후 더크를 체포했다. 그리고 더크는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했다.

더크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잡히면 죽는 상황에서 얼음이 깨져 추적자가 빠졌다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더크는 차가운 호수에 빠져 죽는 사람을 그대로 두고 도망을 갈 수 없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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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뱁티스트 더크 웰림스는 추적자를 구출하고 1569년에 화형 당한다. ⓒ 위키피디어
 
알렌 크라이더는 <평화교회>라는 책에서 그것이 반사행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것은 반사행동이었다. 우리의 신앙은 이처럼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의해 드러나고 확인할 수가 있다. 내가 반사행동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결국 반사적인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을 여러 번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즉각적이어야 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심사숙고하며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속에는 우리의 반사행동을 요구하는 일들이 더 많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바로 우리의 이런 반사행동에 의해 그 진위가 판가름 난다.

나는 지금도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기회들을 기억하고 있다. 정말 순간의 망설임으로 기회가 사라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격언이 있다.

Character is the crystallized habit.

그렇다. 우리의 인격은 결정체가 된 우리의 습관이다. 반사행동은 결정체가 된 습관이다. 신앙이란 내가 하는 반사행동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어제 기뻤던 것은 내가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망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나의 반사행동으로 구걸하시는 분과 폐지를 줍는 분에게 돈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더크는 화형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에 빠진 추적자를 구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반사행동은 그를 죽음으로 그것도 화형이라는 끔찍한 죽음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렌 크라이더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예수를 따르려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더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핍박이 찾아올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더크가 속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삶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내면화와 공동체의 분위기로 이해한다. 우리가 알게 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내면화로 이해한다. 내면화란 결정체가 된 습관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내면화란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 성서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회는 그것을 “인내의 발효”로 이해했다. 인내가 모두 발효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경우 인내는 사람의 마음을 부패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인내는 발효되어 마침내 인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다른 한 기둥이 바로 공동체의 분위기이다. 공동체는 복음대로 살 수 있는 모판이자 터전이다. 복음은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따라서 개인구원은 없다) 공동체가 없으면 천하에 없는 사람도 복음대로 살 수 없다. 내가 성령공동체인 교회를 어떻게 하든 이루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어제 반사행동을 잘 했다. 그래서 기뻤고 그래서 감사했다. 그러나 내 혼자의 힘으로 이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비록 매주 모이는 공동체가 없지만 유형, 무형으로 나를 돕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교회(성령)의 도움이 있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도움을 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더크처럼 생명을 거는 상황에서도 망설이지 않는 반사행동으로 반응하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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