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동포 수필가 한나 안 작가의 첫 수필집 <흔들리는 돛>에는 누구나 인생 후반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리움’의 형체를 느낄 수 있다. 사진 : 김지환 / The Korean Herald
시드니 거주 동포 수필가 한나 안 작가, 첫 수필집 <흔들리는 돛> 출간
‘꿈이 있는 한 인생에 정년은 없다’... 인생 후반의 이야기, 진솔하게 토로
“...하나 더 할 일이 생각났다. 지난 몇 년 동안 써온 습작 수필들 정리하는 일과 3년 전 써둔 습작 소설 다듬는 일이었다. 부활절 연휴 때, 연말 휴일 기간에 정리해야지 하고 미루어 왔던 일이다. 컴퓨터 속에 잠자고 있던 수필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며 문장들을 재편성해 보았다...”(‘모든 일은 더 좋은 일을 위해 일어난다’ 중에서)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나 안씨는 30여 년 전 호주로 이주했지만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모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듯 수필문학의 역량을 쌓아온 작가이다.
한국의 월간 문예지 ‘문학시대’를 통해 문단에 나온 안 작가가 첫 수필집으로 <흔들리는 돛>을 출간(해드림 출판사)했다. ‘그림 속 마음’, ‘황혼 진풍경’ 등 마흔 다섯 편의 작품 속에는 작가가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인생 후반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으며,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모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질화로에 담긴 불씨처럼 사위지 않고 가슴 깊숙한 곳에 묻혀있음을 느끼게 된다. 연습도 복습도 할 수 없는 인생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 ‘진작 돌아갈 걸 그랬어’ 하는 마음과 ‘그냥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굳이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숱한 인생의 질곡을 견뎌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 어떤 그리움들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한국에 사는 친구와 긴 전화 통화를 한다. 한 번도 주거 이동 없이 결혼 때 장만한 건물 옥상에 과일나무와 화초들을 기르며 남편과 유복하게 사는 친구다. 친구는 작가를 부러워하지만 작가는 정해진 시골 버스를 타고 늘 다니는 길을 오가며 평화롭게 지내는 친구의 생활을 부러워한다.
작가는 자신이 멋지게 산 것인가, 축복받은 삶인가 되짚어 본다. 30년 이민 생활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되나 ‘잘’ 살았다고까지는 아니다. 속이 빈 강정처럼 뭔지 모를 외로움 속에서 두서없이 지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다 작가는 고교시절, 국어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잔디밭에 서면 내가 서 있는 잔디는 듬성듬성하고 먼 곳을 바라보면 그곳은 잔디가 푸르러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그곳 역시 발밑의 잔디가 듬성듬성하였다.”
작가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그리움’의 형체는 이런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인생 2막을 어느 곳에서 펼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돛’처럼. 길건 짧건, 삶의 어느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바로 이것이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공감을 만들어주는 지점이다.
작가는 수필문학 역량은 지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본업을 이어가면서 한국문학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 작가는 한국의 문예지(문학과 비평, 창작문예수필 작품과 작법 등)에도 산문 작품을 발표해 왔다. 현재 시드니한인작가회(회장 권영규) 회원으로 있는 작가는 이번 첫 수필집 발간을 기해 12월 4일(토), 동 문학단체가 매월 모임을 갖는 메도뱅크(Meadowbank) 소재 사회단체(‘CASS’) 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번 수필집에는 미국 워싱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컨셉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제이미 노(Jamie Ro. 안 작가의 자녀)씨의 삽화가 첨가되어 작품을 돋보이게 하며 독자들의 마음에 푸근함을 더해준다.
독일에서 학업을 이어가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반 회사에서 일했던 작가는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에서는 시드니 기반의 비즈니스 매매 전문회사인 ‘SBX’ 사에서 14년째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필문학에 매진해 왔다. <흔들리는 돛>은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