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도 또 한인 사회에서도 여럿 모이면 종종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온다고 한다. “설마?”했다가 “이러다 정말 대통령 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왜 미국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트럼프 현상’이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는 핵심 지지 기반인 저학력 저소득층과 중산층 백인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읽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는 이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거칠고 감정적인, 인종차별적인 항변을 속 시원하게 대신해 주고 있다. 다수 백인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과 불신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한 세대 전과 지금의 미국을 비교할 때, 미국 블루칼러 계층의 삶의 질(취업, 소득, 환경, 치안(총기 사고), 테러 위협 등)이 너무 추락했지만 이를 시정하는 거의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미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다. 30년 전 백인들은 고교만 졸업하고나 기술직 자격증만 있어도 내 집 장만하고 사는데 어려움 없이 풍요로웠다.
그러나 레이건 시절 신자유주의(네오콘)가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돈이 돈을 버는 경제가 되면서 미국의 불평등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지경이 됐다. 2009년 이후 상위 1%의 실질소득이 11.2%가 늘어난 반면 나머지 99%의 실질소득은 단 0.4% 증가에 그쳤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중동 전쟁으로 천문학적 국방비를 감당해야 했다. 인명 피해도 막대했다. 글로벌금융위기(GFC)로 심각한 불황을 겪었다. 지금 미국인 중산층의 삶은 팍팍하고 사회 분위기는 한마디로 살벌하다. 미국 중산층, 특히 백인 서민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이들의 불만 심리를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대변하기 때문에 후보 경선에서 1위를 지속하는 것이다.
호주에서 블루칼러 백인 유권자들의 정서에 통달한 정치인은 존 하워드 전 총리다. 4연승 기록을 세우며 호주의 두 번째 최장수(1996년 3월 ~ 2007년 12월 집권) 총리가 됐다.
1996년 총선에서 노동당 텃밭으로 불린 지역구에서 자유당 후보들이 상당수 당선되는 정치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디어와 정치학자들은 고된 일을 해야 하는 중저소득층 근로자들을 의미하는 ‘오지 배틀러(Aussie Battlers)'가 자유당 지지로 전환됐다는 의미에서 ‘하워드 배틀러(Howard's Battlers)'로 불렀다. 1996년 자유당 선거대책 본부장인 앤드류 롭 전 통상장관은 “노동당이 소홀했던 블루칼러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인정했다.
2004년 인터뷰에서 하워드 총리는 배틀러(battler)란 표현에 대해 “오지 배틀러는 항상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유권자들에게 늘 관심을 보였고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유지하려면 다수 불만 계층에게 “우리가 남이가?”라는 방식의 동료 의식을 갖고 관심을 보아야 한다는 설명인 셈이다.
트럼트가 하워드에게 정치적으로 한 수를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정치인은 ‘오지 배틀러’와 ‘아메리칸 배틀러’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른바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경 대응에서도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은 범죄자들이다, 불법체류자 다 내쫓고 장벽을 쌓겠다, 무슬림은 입국 금지해야 한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 이른바 2001년 10월초 ‘난민선에서 아동을 바다로 던졌다는 의혹(Children Overboard affair)’에서 하워드 총리는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그해11월 총선에서 여야 의석 격차를 더 늘리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훗날 조사를 통해 이 의혹은 사실무근이었고 호주 해군도 이민부에 이런 의혹을 보고한 바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목적(총선 승리)을 달성한 하워드 정부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다.
호주 정치사에서도 일시적으로 ‘약간의 트럼프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폴린 핸슨과 원내이션파티, 리클레임 오스트레일리아(Reclaim Australia), 내셔날 프론트, ALA(Australian Liberty Alliance) 등이 기치를 내걸었지만 대부분 주류 정치 세력화에 실패했다. 호주의 사회 성숙도와 건전한 시민의식이 극한 세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류 정치권에서 강경 보수의 수장인 토니 애봇 총리는 집권 1기 도중 자유당 내부 쿠테타로 퇴출됐다. 유권자들이 아닌 자유당 온건파 세력이 칼을 꺼냈다. 애봇 집권 시절 진보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차라리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야겠다”는 농담이 들렸다. 앞으로 태평양 건너에서 “캐나다 이민을 고려해야겠다”는 소리가 들릴까?.
두려움과 분노의 시대에 선동가들이 등장한 역사적 전례가 많다. 분노에 불을 지르고 증오감을 극대화시키는 선동 정치의 압권은 히틀러인데 트럼프가 종종 이에 비유된다. 그런 트럼프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성 정치권이 싫어서, 증오와 분노가 표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앞날을 위해, 호주를 포함한 서방세계를 위해서도 걱정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