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선거
막판으로 치닫는 한국 대통령 선거가 유례없이 혼탁한 양상이다. 양대 후보에 대한 의혹과 실언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온갖 사술과 요설이 난무하고 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에 참전한 열성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노의 에너지로 충만한 것 같다. 이 분노에 휘말려 인격 말살적인 비난과 뻔뻔스러운 결사 옹위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다.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수치도 감내하는 도덕성 제로의 혼돈 속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이다.
지난 반년여 동안 여당 후보를 둘러싸고 불거지고 있는 의혹은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 FC 등 작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원이 오가는 광대함이 있는가 하면, 십만원대 쇠고기, 초밥, 백숙 등 알뜰살뜰 서민형 소박함도 물신 풍긴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붙잡고 버티면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극한의 정신승리이다.
평생을 검사로 살았던 야당 후보의 대선 행보는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학습능력이 탁월해도 국가 최고 지도자에 합당한 경험치를 단시간에 체득하기란 불가능하다. TV 토론에서 복잡한 정책이나 경제 문제가 나오면 기껏해야 단순 지엽적인 설명이나 하고 심지어 언제 실언이 나올까 불안하다. 그나마 양호한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애초부터 워낙 낮게 설정된 기대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굳이 무속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가 하늘로부터 최고의 관운을 타고난 귀인(貴人)임은 분명한 것 같다. 검찰총장 때에는 청와대, 법무부, 집권 여당 등 살아있는 권력이 불필요한 핍박을 통해 ‘큰인물’로 키워주더니 이제는 어쨌거나 부실한 상대 덕에 가뿐하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느닷없이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한 여권 인사는 ‘괴물’ 대신 ‘식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20대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양대 후보가 졸지에 상종 불가한 ‘괴물’과 무능한 ‘식물’ 로 전락한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있으면 누구나 선의에 기초해 최선이나 차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선택지가 ‘괴물’과 ‘식물’ 뿐이라면 최선이나 차선은커녕 어떻게든 최악을 피해 차악을 뽑아야 한다. 찍는 입장에서는 ‘더 도덕적인 후보’가 아니라 ‘덜 도둑적인 후보’를 가려내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재수 없는 선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양대 후보는 과거 도전자들처럼 재수, 삼수의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회용’ 성격을 갖고 있다.
야당 후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정치인이 아니라 검사였다. 현 정부의 실세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뜨는 바람에 대권까지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다르겠지만, 만약 낙선을 하고 현직 대통령이 퇴임하는 순간 그의 정치적 효용성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여당 후보는 유력한 경쟁자들이 희한한 문제로 제거되거나 약화되면서 유일한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또한 강자를 눌러 약자를 돕는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신화는 근본적인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가슴을 떨리게도 했다. 하지만 그의 억강부약이 권력 사유화를 통해 나만을 위하는 ‘억강부아’(抑强扶我)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혹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하고 권력의 방패가 사라지면 의혹은 쓰나미가 되어 그를 휩쓸어 가버릴 것이다.
이래저래 양 후보 모두에게 ‘재수’란 있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대선이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