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 복기
20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선거 기간 내내 양대 후보에 대한 메가톤급 추문이 쏟아져 풍파 없는 날이 없었다. 치열한 대권 쟁탈전은 지난 5년간 농축된 갈등과 모순이 분출하는 장이기도 했다. 혼돈과 당혹이 교차한 몇몇 이슈와 함의를 살펴보자
정권교체 대 연장 구도?
선거의 판세는 인물과 이슈보다 구도가 결정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주된 구도는 정권교체 대 정권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 후보는 50%를 넘나드는 정권교체 여론을 그대로 담아내면 필승이 보장되는 구도였다. 여당 후보 역시 40% 초반을 유지하는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을 기본 밑천으로 삼을 수 있었다면 유리한 선거였다. 하지만 양 후보 모두 ‘부실한’ 인물 탓에 구도의 잇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이때문에 선거전의 양상이 구도보다는 ‘역대급 비호감 인물 선거’로 전개된 듯 하다.
‘대장동’ 수렁에 빠진 국가권력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인 대장동 의혹은 인허가 권력과 토지투기세력의 단순한 결탁 수준이 아니다. 1조원에 육박하는 부당수익의 규모는 물론 지자체, 사법부, 검찰, 국회, 정부, 야당, 언론계, 금융권 등에 대한 전방위 비리 정황은 국기(國基)를 무너뜨릴 정도이다.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의 견제와 균형이 돈과 권력에 미친 군상들의 농단으로 휴지 조각이 됐다.
무속의 힘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무속은 미신 취급을 받고 있으나 최고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의 시각은 남달랐다. 왕(王)자 논란에서부터 무속인, 역술인, 주술가들이 나서서 저주 의식과 대형 굿판까지 당선이라는 복(福)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식이다. 모든 종교 현상에서 능력은 신자의 굳센 믿음을 매개로 발현한다. 무속에 대한 권력집단의 믿음을 통해 미신이 판치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민낯이 드러났다.
‘슬기로운’ 거머리 공직 생활
여당 후보 부인의 불법 의전과 공금 횡령은 지나치게 '슬기로운' 공직자 생계활동이라 할 만하다. 그는 사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적 자원을 통해 해결해온 알뜰살뜰함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비리를 깔끔히 척결하지 못한다면 온 나라가 국고에다 빨대를 꽂고 뽑아먹는 거머리 공직자들로 들끓게 될 것이다.
단일화
선거 막판에 야권과 여권은 각각 크고 작은 단일화를 이루었다. 어김없이 자신들은 가치의 연합이고 상대는 권력의 야합이라는 ‘내로남불’ 비난이 무성했다. 선기 기간 중 단일화는 연합이든 야합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승리한 쪽의 단일화만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계속 유효성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당 후보의 정치개혁과 국민통합 정부
선거 막판에 여당 후보는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정부를 외쳤으나 만시지탄이었다. 어쩌면 유일하게 정권교체론 구도를 깰 수 있는 카드였으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 정권 지지율 40%를 과감히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결단이 일찌감치 필요했다. 그렇기에 ‘개혁과 통합’에 대한 열망보다는 대선 패배에 대한 절박함에 마구 던지는 꼼수로 비춰졌다.
다시 구도로
초박빙으로 나온 출구조사와 개표 결과를 볼 때 대선 투표일에 임박해 양대 진영의 지지자들이 총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똘똘 뭉쳐 퇴로가 없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것이다. 어쨌거나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앞선 것은 정권교체 여론이 조금이라도 우세함을 나타낸다. 이번 20대 대선은 지루한 비호감 인물 전쟁 끝에 결국 원래 구도로 돌아가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 같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