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줄타기’ 전수자인 김대균 명인의 공연 줄 ‘양반다리’ 장면(사진). 시드니 공연에서 그는 현지 동포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함께 풀어낼 예정이다.
시드니 코리안 페스티벌서 한국 전통 ‘줄타기’ 공연 선보이는 김대균 명인
유네스코(UNESCO.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한국 전통 ‘줄타기’ 공연이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오는 4월2일 달링하버 텀발롱 파크(Tumbalong Park)에서 선보인다.
이는 ‘시드니 코리안 페스티벌’(Sydney Korean Festival)을 공동 주최하는 시드니 한국문화원이 한국의 줄타기 명인을 초청해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현존하는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김대균 장인이 시드니를 방문, ‘줄타기’ 공연을 선사한다.
지금까지 50회 넘게 해외 공연을 펼쳐온 김대균 장인은 “호주 동포 여러분과 함께 신명 나는 줄판을 펼칠 생각에 설레인다”고 말했다. 김 명인은 한류 주력인 K-Pop이 아닌, 전통 문화라는 측면에서, 해외에서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해외 현지인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제공하기에 반응은 상당히 뜨겁다”고 설명했다.
-해외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 7년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를 위한 한국문화 사절단 일원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했었다. 커뮤니티 칼리지 예술 극장에서 공연할 때 현지 무대 감독이 줄을 걸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무대에 등장을 해야 하는데, 순간 기지를 발휘해 무대 위에 줄을 깔고 땅줄을 탔다. 이렇게 줄을 걸지 못해서 공연을 하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특별한 웃음을 선사하는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됐다. 또한 해외 현지인들이 ‘줄타기’에 담긴 한국적 재담을 이해할 수 있을까 했지만 결국 예술행위는 몸 언어로 이해되고 통용이 되기에 이를 전달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김 명인의 설명에 따르면 ‘줄타기’ 공연의 경우 줄광대는 줄 위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삼현육각(장고, 피리, 겹피리, 대금, 해금 , 북)의 연주에 맞추어 연행(연기)을 한다. 줄광대의 상대역인 어릿광대는 땅에서, 줄 위의 광대와 재담을 나누고, 소리 때로는 춤을 추기도 한다.
‘줄타기’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줄광대인 셈인데, 이 줄 광대는 한국 줄타기 전통의 43가지의 기예(잔 노릇)를 중심으로 다변하는 축제현장에서 줄판을 읽어내는 연행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줄광대가 되기 위해서는 줄소리, 춤, 재담 등을 별도로 공부해야 한다.
-시드니에도 슬랙라인(Slackline)이라는 줄타기 스포츠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있다. 다른 나라의 일반적 줄타기(Tight-rope walking)와 한국 전통의 줄타기가 다른 점이라면?
: 한국 전통줄타기는 26m 길이의 줄을 약 3 미터의 높이로 공중에 설치해야 하기에 까다롭고 어려운데 반해 슬랙라인은 줄 높이가 낮아 비교적 설치가 용이하다. 또 한국 전통 줄타기는 여러 가지 다양한 연행구성을 바탕으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종합예술로 존재하지만, 외국의 줄타기는 스릴과 곡예 위주로 행위가 이루어지며, 예술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미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내용은?
“ 줄타기의 역사와 줄판의 구성을 알고 보면, 의미 있게 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줄타기의 역사는 신라시대 때부터 연행되어 오던 것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줄판의 구성은 줄고사로 시작해, 줄에 오르기 전 줄소리를 통해 관객의 흥을 북돋우며 관객들을 줄판의 한 요소로 끌어들인다. 줄 위에 올라가 여러 가지 잔노릇을 펼치면서 사이사이에 ‘아니리’, ‘소리’ 등을 하고, 어릿광대와 재담을 나누어가면서 공연을 펼친다.
김 명인은 줄 위의 행위가 늘 위험을 담보하기 때문에 고도의 긴장감이 수반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줄판에서 펼치는 공연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지만, 특별한 차이는 없으며, 다만 재담 구성은 줄판의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현장감을 삽입해 재구성한다.
김 명인은 어린 시절, 용인의 한국민속촌을 놀이터로 삼았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면 늘 민속촌 마당에서 뛰어 놀곤 했는데, 매일 접하는 공연물들, 스승이신 김영철 선생님의 줄타기 공연, 아저씨들의 음악연주, 누나들의 무용공연, 그리고 형님들의 농악공연 등을 구경하면서 단 한 번도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스승의 공연 줄에서 매일 매달리고, 줄 위에 올라가 누가 많이 걸어가나 시합을 하기도 하는 호기심이 많은 어린 아이였다. 이런 호기심과 환경적 요인으로 거부감 없이 ‘줄타기’에 입문했다.
-40년을 이어 온 명인인데, 아직도 공연을 위한 연습을 하나? 한다면 어떤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두나.
: 매일 1시간 정도 줄 위에서 명상을 하며 연습을 한다. 줄 위의 동작전개, 43가지의 잔노릇(기예) 위주로 줄 호흡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둔다.
-한국 전통 마당놀이의 꽃 ‘줄타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배경은?
: 유네스코는 한국 전통 줄타기가 줄광대와 상대역인 어릿광대, 그리고 삼현육각 편성을 이루어 줄광대의 연행 능력을 바탕으로 재담, 소리, 춤, 기예 중심의 연행이 이루어지며, 무엇보다도 관객으로 하여금 양방향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종합예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현재 ‘줄타기 보존회’는 경기도 과천에서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10여명의 전수생이 이를 보전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 명인은 ‘줄타기’ 초대 인간문화재였던 고(故) 김영철 선생으로부터 줄 타기의 재담과 기예를 사사받았고, 이 시대의 마지막 창우였던 발탈 인간문화재 고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재담’, ‘아니리’, ‘춤’을, 판소리 인간문화재 고 성우향 선생에게서는 판소리를 배웠다.
그는 축제 현장에서 다양한 줄판이 이루어지는데, 그 공연물들은 바뀐다고 말했다. 따라서 줄광대 자신은 줄판의 성격에 따라 재담의 내용도 달리하고 잔노릇 동작들도 전개를 다르게 해야 한다. 또 매 공연마다 창의적이고 잔노릇 동작들을 많이 응용하며 새롭게 만든 동작을 전개하기도 한다.
-‘줄타기’의 명맥을 잇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 일반적으로 줄타기라고 하면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배우려는 이들이 많지 않고,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줄 위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수학의 방정식처럼 공식화 되어 있다. 그 공식이 무너질 때는 위험하지만 이를 철저히 준수하면 절대 위험하지 않다. 단순히 위험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줄타기를 배우려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 본다.
-현재 김대균 명인의 뒤를 이을 줄타기 전수자들의 상황 및 특성은 어떤지? 혹시 가족분들 중에서 제자가 있는지.
: 우리 가족은 줄타기를 하지 않는다. 10여명의 전수자 중 기량이 뛰어나고 출중한 아이들이 있지만, 아직은 서열구도보다는 줄타기 전수 학습이 중요하다.
-앞으로 줄타기 보존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현재 10여명의 전수생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줄판을 운영하기를 희망한다. 어떤 전수생은 해외공연을 중심으로 매진할 것이며, 또 다른 전수생은 수년 후 한국의 각 축제현장에서 줄 위를 마음껏 비상할 것이다. 또 전승맥락 차원에서 줄타기 보존회를 책임지는 행정가도 나올 것으로 본다. 선생인 내가 할 일은 여러 전수생들이 줄판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를 주고 길라잡이 하는 것이다.
-호주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코리안 페스티벌 주인공인 동포들을 위해서 재담을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동포들의 일상생활에 희로애락이 있을 터인데, 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또한 현지인과 동포들을 대상으로 실제 줄판의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준비도 하고 있다. 이번 시드니 공연에서는 허공에 걸린 줄을 통해 동포들의 애환을 담고 또한 현지의 모든 이들이 하나 되고 상생하는 것을 줄 위에서 풀어내려 한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