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계연도(2022-23년) 예산 계획을 통해 정부가 주택정책을 내놓았지만 높은 임대료로 인해 생활비 부담을 안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서는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각 가정의 생활비 압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용 효율적 조치를 원한다면 호주 전역의 세입자를 지원하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 Allhomes
일부 경제학자들, “비용 효율적 조치 원한다면 임차인 돕기에 집중해야” 강조
지난 3월 29일 연방정부가 내놓은 새 회계연도 예산 계획에서 제시된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라면, 최근 여러 상황(홍수로 인한 식료품 가격 인상, 국제 상황에 의한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한 생활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높은 휘발유 가격 부담 완화를 위해 연료소비세(리터당 44센트)를 절반으로 줄였고(6개월 한시적으로), 고령자 및 복지 수혜자에게는 일회성의 보조금(250달러)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6월 말 회계연도 이후 세금 신고에서 비교적 높은 금액(420 달러)의 세금 공제 혜택도 있다.
주택구입 부분에서는 첫 주택구입자의 부동산 시장 진입을 지원하는 계획이 극적으로 확대되어 보다 적은 담보대출 보증금(mortgage deposit)으로 내집 마련을 하도록 돕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을 통해 정부가 밝힌 내용들은, 그러나 최저 소득자 등 가장 취약한 계층을 구제하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체 호주 가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60만 가구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14%는 ‘임대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가구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에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새 회계연도 예산 계획과 관련해 일부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다수 가구의 생활비 압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용 효율적 조치를 원한다면 호주 전역의 세입자를 지원하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계획이
나를 화나게 했다”
프라이덴버그(Josh Frydenberg) 연방 재무장관의 예산안 발표 다음날,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는 Nine Network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상당수 세입자가 부담을 느끼는 임대료 경감에 대해 아무런 정부 조치가 없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모리슨 총리는 “있다”고 답하면서 “그것은 호주인들이 자기 집에 입주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리의 말은 “주택을 임대해 거주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을 갖도록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미 크게 치솟은 주택가격으로 인해 대다수 세입자 입장에서 내집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아마도 이 방송을 본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총리의 무성의한 답변, 나아가 정부의 진정성 없는 대책에 분노했을 터이다.
TV를 통해 그 인터뷰를 본 이들 중에는 서부호주 킴벌리 지역(Kimberley region, Western Australia)의 쿠눈누라(Kununurra)에서 간신히 임대 거주지를 구한 찬텔레 카(Chantelle Carr)씨도 있었다.
그녀는 “나는 총리의 말에서, 그가 현재 호주 전역의 주택가격은 물론 임대료가 얼마나 높은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현재 호주 전체 가구 가운데 3분의 1에 달하는 260만 가구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7가구 중 1가구는 가계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해야 하는 ‘임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사진은 파라마타(Parramatta)에서 진행되는 한 주거지 프로젝트 가상도. 사진 : ALAND
빅토리아(Victoria) 주에서 살아 왔던 카씨는 최근 의료 분야 일자리를 얻어 쿠눈누라로 이주했다. 이 지역으로 온 뒤 그녀는 임대주택을 구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공급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흔하지 않은 쉐어하우스(share house)를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이곳으로 와 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하자 몇몇은 그녀에게 ‘캐러밴에서 거주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 임대료도 주(week) 250달러에 달했다. “아니면 캐러밴 파크의 한 곳에 있는 작은 오두막 숙소(cabin)를 장기 임대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녀는 “이 또한 한 주 임대료가 400달러나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씨는 “정부가 집을 사도록 돕겠다고 하면 ‘좋습니다, 지금 바로 집을 사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정부 지원이 있다고 해도, 높은 주택가격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당 의석 경합지역들,
최악의 ‘임대 스트레스’
연방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경쟁적으로 주택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 미흡으로 인해 이미 치솟은 주택가격은 임대료 상승을 불러왔고, 이 때문에 ‘임대 스트레스’(일반적으로 가계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에 지출하는 경우를 말한다)에 시달리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공영 ABC 방송이 실시한 전국 임대스트레스 상황을 보면 (정당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의석 확보 경합이 치열한)에서 특히 심각함을 보여준다.
연립 여당이 차지하고 있는 멜번의 치솜 선거구(seat of Chisholm)는 5개 임대가구 중 1가구 이상이 임대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타스마니아 주 론세스톤(Launceston, Tadmania)의 바스 선거구(seat of Bass)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인 동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시드니 지역(region) 중 자유당의 오랜 안방인 리드 선거구(seat of Reid)의 임대가구들도 치솜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유사한 수치를 보이며, 노동당과 자유당이 치열한 경합(현재는 노동당 의석)을 벌이는 리치먼드(seats of Richmond) 및 맥나마라(seats of Macnamara)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밀하게 본다면, 사실 지난 10년 사이 임대료 상승폭은 주택가격 성장 속도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임대 스트레스를 겪는 세입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주택구입 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임금성장이 임대료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경제학자 벤 필립스(Ben Phillips) 교수는 임대료가 크게 치솟은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상당수 사람들은 이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시장에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높아진 것 같지만 현 시점에서 대부분 임차인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임대료 부담 가능성(rental affordability)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수년 동안 거의 제자리 수준을 보인 임금 성장이 임대 스트레스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시드니대학교 도시계획 전문가 니콜 거란(Nicole Gurran. 사진) 교수. 그녀는 “정부가 취약 계층의 생활비 부담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임대료 지원액을 인상하는 것이 논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사진 : Nicole Gurran(http://nicolegurran.com)
정부 지원책, 크게 부족
세입자를 돕기 위한 정부의 주요 조치는 매년 50억 달러의 임대료 지원이다. 이는 연급 수급자, 실업자, 청년 수당(Youth Allowance) 수혜자 등 정부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며 1인 가구의 경우 한 주에 약 73달러, 소비자 물가지수(CPI)에 따라 연 2회 인상된다.
필립스 교수는 정부가 세입자에게 즉각적인 생활비 부담을 완화해주고자 한다면 임대료 지원을 높이는 것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임대료 지원을 늘리는 것은 연방정부가 세입자의 주택구입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우면서 또한 가장 합리적 방안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드니대학교 도시계획 전문가 니콜 거란(Nicole Gurran) 교수 또한 그 동안 임대료 지원액이 너무 적었다고 지적했다.
거란 교수는 정부 수치를 인용, “임대보조금을 받는 이들 가운데 최소 30%는 이 혜택에도 불구하고 임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정부가 취약 계층의 생활비 부담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임대료 지원액을 인상하는 것이 논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문제 개선 의지,
얼마나 진지한가...
최근 몇 년 동안 주택과 관련한 정치적 논쟁은 대부분 치솟는 가격과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려는 첫 주택구입자의 장애물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지난 2019년 연방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노동당은 주택구입 가능성을 개선하고자 부동산 투자자를 위한 세금감면 제도(negative gearing. 부동산 투자자가 이로 인해 손실을 보았을 경우 개인 세금에서 공제해 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가장 최근, 연방정부는 첫 주택구입자 지원책으로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받기 위한 최소 보증금(20%)을 낮추어주는 ‘Deposit-Guarantee Scheme’에 집중했고, 의회는 의회대로 ‘주택구입 가능성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을 알아보고자 오랜 시간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필립스 교수는 주택구입자에 대한 초점이 잘못 맞추어졌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호주인들이 주택과 주택가격에 집착하게 되었다”며 “실제로 주택구입 가능성 주제는 사람들이 주택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소득 세입자에 대한 것이거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란 교수 또한 정치인들이 주택구입자와 세입자를 위한 여건 개선에 얼마나 진지했는지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택구입 가능성을 개선하고자 한다는 모든 계획에 대해 실제로는(속마음은) 집권여당이나 야당 정치인 모두 주택가격이 조정되거나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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