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반전이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는 등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원칙적으로 정부와 대통령은 지지율의 변동에 일희일비 하지 않아야 한다.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휘둘리면 국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윤 정부는 일단 이런 원칙을 접어두고, 무조건 지지율을 올리는 데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워낙 취약한 권력기반을 갖고 있어 국민의 지지 말고는 국정 운영의 동력이 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초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존재는 일종의 천형이다. 국회해산권이 없어 이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 곧장 절름발이 정부가 된다. 입법이 필요한 어떠한 개혁도 불가하며 심지어 국회가 정부 시책을 막기 위해 대항입법을 시도할 수도 있다. 법률안 거부권이 있지만 거야 앞에서는 약간 따끔한 딱총에 불과하다. 이들과의 상생 가능성은 이미 정부 출범 전 ‘검수완박’ 입법에 의해 물 건너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이 민주당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사법부, 행정부, 정부 기관, 언론사 등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해서 일부 경찰이 집단행동을 한 것처럼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회권력이 사실상 뒷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오히려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전염병, 전쟁, 인플레이션, 고금리, 고유가, 식량 에너지 대란, 공급망 교란, 기후이변 등 사상 유례가 없는 초복합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고 있어 특별한 묘수가 없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안이 가중될 위험성이 큰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민심은 크게 보아 반문, 반민주당 정서에 기반한 정권교체 열망으로 볼 수 있다. 비록 0.74%라는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렸지만, 어쨌든 다수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윤대통령을 당선시킴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실책을 바로잡기를 원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소야대 상황으로 이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권교체는 아직 미완의 상태에 있다. 정치 일정상 2024년 총선에서 국회권력까지 교체된다면 명실상부한 정권교체의 완성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3월 대선은 전반전이고 총선은 후반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현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초반기이면서 동시에 대선 후반전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대선이 내용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지지율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을 생각해보라. 매주마다 요동치는 지지율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절치부심했던가. 단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온갖 정책 아이디어를 내고 우스꽝스러운 연출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검수완박’ 때부터 대선 후반전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검수완박’은 대선 패배로 패색이 짙은 지선을 확실하게 포기하고 다음 총선과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노림수이다. 겉으로는 자당 대통령과 대선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무리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이끌 새 정부의 권력기반을 헝클어뜨리는 의도를 품고 있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확실히 장악 가능한 검찰의 이빨과 발톱을 제거함으로써 최소한 다음 총선까지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할 심산인 것이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이 대표가 되면 곧바로 윤정부의 실정을 물고 늘어지면서 대정부 강경 투쟁에 나설 것이다. 이를 통해 이재명 의원을 향한 사법 리스크에 대처하고 하루속히 다음 총선 정국으로 이행하려고 할 것이다. 검찰은 ‘검수완박’과 거야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고, 경찰은 대통령과도 맞짱을 뜰 태세인데다 정부의 지지율까지 폭락하고 있어, 야당의 의도대로 굴러갈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총선 정국이 펼쳐지면 그때부터는 사법 리스크는 가라앉고 선거 결과에 따라 재부상이 어려울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은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졌잘싸’라고 말할 정도로 선전했다. 국민들은 양 진영으로 갈라져 자기 후보가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지지한다는 사실이 검증됐다. 이것이 민주당에게 대선에서 패한 이재명을 중심으로 다시 똘똘 뭉칠 수 있는 자신감을 준 것 같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 승리를 거둔다면 이재명 대표는 ‘넥스트 프레지던트’ 위상을 가진 독보적인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감히 사법 리스크 따위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 후반기를 식물정권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숨만 쉬면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전반전에 겨우 반 골 차이로 이기다가 후반전에 한 골 먹고 경기 전체를 내주는 격이나 마찬가지이다.

 

현 정국을 대선 후반전으로 이해한다면, 대통령실과 장관 그리고 당직 등 모든 인사와 정책 등에 관한 결정을 선거 승리라는 지상 목표로 수렴해야 한다.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인사와 정책은 그 자체로 국익과 민생에 부합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쓰고 싶은 사람이라도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버리고, 그 반대라면 불편해도 중용해야 한다. 정치적 생명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에 임하는 데 이런저런 사적 고려가 끼어들면 공멸뿐이다.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어설픈 초보 집권 모드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승리 경험이 있는 선거 캠프 모드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다음 총선까지는 민주당의 동의가 없으면 제대로 된 개혁 추진은 어렵다. 정권의 프라임 타임을 총선 승리 이후 1~1.5년으로 설정하고 그때까지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내실 있는 준비에 치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국과 인사검증관리단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수반인 행정부 내의 조직 개편을 두고도 온갖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정도로 권력 장악력이 약한 상태에서 굳이 이를 추진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민정수석실을 부활하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은 받겠지만, 경찰국과 인사검증단을 둘러싼 막대한 소모와 정쟁을 감안하면 차라리 이를 감수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검찰 출신인 대통령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도 민정을 확대 개편해서 정부 조직을 틀어쥐면서 국정을 장악하는 게 용이하다. 평소 신뢰하는 검사들도 다른 생경한 부처로 억지로 보내는 대신 차라리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등용한다면 흠잡을 수 없는 인사가 될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힘의 당권 다툼 역시 대선 후반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과 체제라는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후반전이 남아 있는데도 논공행상이나 권력투쟁을 벌이는 인물과 세력은 우선적으로 척결해야 한다.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극심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치고 박고 싸워도 표가 나오는 싸움을 해야 하고, 두 손을 잡고 얼싸안고 화합을 해도 표가 나오는 화합을 해야 한다. 지난 몇주 동안 우수수 표 떨어지는 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선 승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권력은 정치인의 눈에는 들보처럼 크고 단단해 보여도 국민의 눈에는 이리저리 정함 없이 흩날리는 티끌이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자라도 도도한 민심의 바다에 떠다니는 일엽편주의 키 하나를 잡은 것에 불과하니 어찌 두려운 마음으로 국민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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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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