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정원6]
연재중인 '아톰의 정원'은 김명곤 기자가 텃밭농사를 지으며 즉석에서 남기는 기록입니다. '아톰'은 김 기자의 별명이자 야생동물을 쫓기 위해 세워둔 허수아비 이름입니다. 종종 등장하는 사투리나 속어 등은 글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적습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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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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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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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오늘은 오랫만에 고구마 '보병 증대'의 열병 사열을 받았습니다. 땅으로만 박박 기는 이놈들은 참 충성파요 아낌없이 주는 놈들입니다.
작년 겨울 캐낸 고구마의 잔뿌리가 남아서 늦봄께 여린 순이 뾰죽이 대지를 비집고 나왔습니다. 제가 서울 갔다온 사이에 두덩을 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이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두어 달이 지나면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기가 뻐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는 식탁에 오를 겁니다.
고구마순을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낸 다음 껍질을 벗겨내고 기름을 둘러서 볶아내면 꼬들꼬들 야들야들 감칠맛이 그만입니다. 아하, 쌀가루 반죽에다 고구마순을 넣고 쑤어 만든 고구마순 탕... 그 맛은 아는 사람만 압니다. 거기에다 막 잡은 우렁이를 삶아 넣으면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은 맛이 나옵니다. (꿀꺽!)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어린시절에는 동무들과 함께 동네 야산에 올라가 머리통만한 돌멩이를 세워 만든 화덕에 양철판을 깔고 나뭇가지로 불을 지핀 후 얇게 썬 고구마로 '야끼모'를 만들어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늦가을, 물이 오를대로 오른 생고구마는 밤늦게 글을 쓰는 글쟁이의 좋은 간식거리이자 각성제이기도 합니다. 아작아작 씹다보면 잠이 확 달아나고 끊겼던 생각의 끈들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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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캐어내서 씻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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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추수감사절이 막 지나고 쇠스랑으로 이놈들을 파내는 맛이라니! 홍두깨만한 놈들이 여기저기서 튀쳐나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이 나오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9년전쯤 고구마 농사를 처음지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내 비가 많이 와서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보라색꽃을 마구 피워내던 놈들을 어쩌나 보려고 손도 안 대고 가만 놔두었습니다.
서울 다녀온 뒤에 거두려고 고구마순을 들쳐 냈는데 처음엔 조무래기들이 스멀스멀 튀쳐 나오더니 손을 뻗쳐 두렁을 파헤치니 괴물같기도하고 돼지같기도한 놈들이 불쑥불쑥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하하 아이고 아이고... 이게 왠 무식하게 생긴 놈들이란 말이냐!" 그러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솔바람이 비탈진 고구마밭을 타고 오르던 늦가을, 어머니와 고구마를 캐던 어린 시절 장면이 겹쳐져 찔끔거린 것입니다.
"고구마 캐고나면 기차타고 서울 외갓집 갈꺼다!"
어머니는 저의 고사리손 노동력까지 동원했던 터였습니다. 정신없이 고구마를 캐다가 잠시 허리를 펴면 야산 꼭대기 교회옆 비탈밭 아래로 한 눈에 들어오던 동네 산야가 눈에 선합니다. 미국땅 한 구석, 매년 고구마를 캘 때마다 그 시절 비탈밭 솔바람 냄세와 설레임이 떠올라 가슴을 적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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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변 고향동네. 왼쪽 산자락 끝 교회 옆에 고구마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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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는 "제발 그만좀 하시지! 그 시간과 노력이면 고구마 몇가마니 사다먹고도 남겠네요!"라며 은근 타박을 하곤 합니다. '도시여자'는 고구마 캐는 남자의 심정을 알 길이 없습니다.
고구마는 가을에 캐고 또 캐내어도 어딘가에 잔뿌리가 남아있다가 봄이오면 다시 싹을 냅니다. 줄기가 40센티미터 정도 자라면 꺾어내서 두렁에 묻기만하면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서 금새 밭두렁을 덮습니다. 고구마는 잎과 줄기와 뿌리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몸을 아낌없이 주고 또 주는 고구마의 일생... 수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이 겹쳐져 가슴이 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