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실패와 부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대상으로 한 이준석 ‘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함으로써 국민의힘당(국힘당)이 대혼란에 빠졌다. 법원은 비대위를 발족한 근거가 되는 ‘비상상황’을 합당한 비상상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비상상황에는 불가항력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일의 시작과 경과 그리고 결과에서 이준석을 대표직에서 쫓아내겠다는 일관된 ‘뼈’만 고스란히 드러났을 뿐이다.

 

당초 이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그가 성비위 의혹으로 윤리위에 의해 6개월간 당원권이 정지되고 대행 체제가 들어서면서 잠복 상태로 들어갔다. 난데없이 대통령이 대표 대행에게 보낸 ‘내부총질’ 문자 파동 이후 최고의원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비상상황과 비대위가 등장한 것이다. 이 모든 비상한(?) 정치 행위는 누구의 의도를 따지기 전에 어쨌든 '이준석 축출'이라는 소실점으로 수렴했다. 대행 체제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비대위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어떤 잣대를 갖다 대도 결코 민주로운 정당 운영이 될 수 없다.

 

정상스러운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에 국힘당의 반응은 이상하기 그지없다. 판결의 취지를 무시하고 당헌, 당규를 개정해 새롭게 비대위를 구성하기 위한 갑론을박에 여념이 없다. ‘이준석 축출'만을 위해 꼼수와 무리수를 동원한 게 문제인데 여전히 같은 목표를 위해 아예 규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을 준수하지 못해 법원 판결로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도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첫째도 명분이요, 둘째도 명분이요, 셋째도 명분이다. 실리도 명분을 끝까지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과 자산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아무리 마뜩찮고 허물이 많아도 민심과 당심에 의해 선출된 30대 당 대표를 임기 전에 반드시 쫓아내야 할 어떠한 명분과 실리도 찾기 어렵다. ‘최고 존엄’에 대한 총질이 도를 넘었고 당의 단합을 해친다는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그것이 민주로운 절차로 선출된 대표를 몰아낼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무슨 불법 행위를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당하는 쪽이야 모욕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정치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다.

 

윤리위 징계에서부터 본격으로 시작한 ‘이준석 몰아내기’가 법원 판결 후에도 더욱 열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미 현재의 국힘은 ‘대표 이준석’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징계나 비대위 출범처럼 무도한 공격에 대한 대응이었으나 그의 가처분 신청과 판결은 국힘당 전체를 진짜 ‘집단무지성’ 비상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정당으로서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고 있어 이 대표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간혹 노무현처럼 자신을 희생해 대의를 살리는 정치인도 있으나 이 대표는 정면으로 싸워 어떡하든 명분과 승리를 함께 쥐려는 유형이다. 그의 승리와 명분이 국힘의 처절한 패배로 이어진다면 ‘대표 이준석’은 성공작이 아니라 실패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전에서는 이기더라도 항상 반쪽의 패배라는 찝찝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법원의 판결 이후 이준석이 보이는 행보에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무기 삼아 이번 사태를 윗선에서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 가장 적대로운 반응을 보인 보수의 심장 대구 경북을 찾았다. 칠곡의 조상 묘소를 찾아 무릎 꿇고 온 세상을 향해 자신이 보수의 미래요 적자요 뿌리라고 호소한 것이다. 비대위 추진 세력과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한편,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 낮고 젊은 민심의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석은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 것이다.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물론 명분이나 능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4년 8개월 이상 시퍼렇게 남아있는 대통령의 집권기간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피라미드의 최상위 꼭지점과 싸워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위에서는 이 싸움을 이길 힘을 찾을 수 없기에 이준석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는 것이다. ‘절대자’를 상대할 수 있는 ‘여의주’는 언제나 도도히 흐르는 민심과 당심의 바다에만 존재한다. 누가 먼저 이 지점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최종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준석은 정연한 논리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입지를 다져왔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노력했겠지만 아직은 그에게서 국가의 미래와 민생의 아픔을 해결하는 큰 정치에 대한 열망이 그리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준석이 현재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정치 거목으로 부활한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축복이 될 것이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릴 때에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시험하며, 몸을 힘들게 하고, 배를 곯게 하여 육신을 궁하게 하며, 온갖 유혹으로 그 행실에 혼란을 준다. 그러므로 마음이 움직이고 참을성이 생겨나며, 이로운 점이 많아져 못할 일이 없게 된다.” (맹자, 고자하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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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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