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호주의 공화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지지하는 호주의 대표적 그룹인 ‘Australian Republic Movement’는 최근 한 미디어를 통해 캠페인 전개를 주도할 것임을 밝혔다. 사진은 군주를 상징하는 왕관. 사진 / UK Parliament
‘Australian Republic Movement’ 주도... “‘불가피하게’ 공화제 될 것” 분석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와 애도 기간이 끝나면서 호주 공화제 운동 그룹이 국가운영 시스템 변화를 위한 본격적인 캠페인을 예고했다. 공화제 로비단체가 호주를 왕정(monarchy)에서 분리시키려는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를 위해 활동해 온 ‘Australian Republic Movement’의 샌디 바이어(Sandy Biar) 최고경영자는 최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애도 기간을 정중히 지켜왔다”면서 그 기간이 끝남에 따라 “이제부터는 우리(호주)가 우리 국가원수를 선출하는 캠페인 전개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연방 노동당 정부는 이미 집권 첫 임기 중에는 ‘공화국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배제했지만 다음 임기, 즉 2025년 선거에서 승리, 연속하여 정부를 이어갈 경우 이를 시행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총리는 여왕의 국장 기간, ABC 방송에서 “지난 선거(5월 연방 총선) 이전, 나는 임기 동안(노동당 집권 가정 하에) 우리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며 “그것은 우리 헌법에서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도서민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었다.
총리가 언급한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도서민 인정’은 이들의 오랜 요구였다. 이는 연방의회에 이들의 의견을 전달할 대표 기구(‘Indigenous Voice to Parliament’)를 의미하는 것으로, 의회에 이 기구를 마련하려면 헌법이 수정되어야 하고, 알바니스 총리는 이를 위한 국민투표 시행이 먼저임을 언급했던 것이다.
호주의 국가 원수,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알바니스 총리의 이 같은 방침은, 공화제 로비 그룹의 캠페인이 최소 3년을 남겨두었음을 뜻한다. 바이아 CEO는 “(공화제 전환 후)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커뮤니티에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국민투표에 붙일 제안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인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보인 애정은 대단한 편이었다. 반면 여왕의 뒤를 이은 찰스 3세 국왕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게 일반적 의견이며, 이것이 공화제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위 계승 순위가 가장 높은 왕실의 가족들. 사진 : Facebook / The British Monarchy
이 운동은 현재 호주 국가 원수인 찰스 3세 국왕을 대체하는 새 지도자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가장 가능성 있는 절차는 연방, 주 및 테러토리 의회가 후보를 지명하고, 호주 유권자들이 이 후보들 가운데 새 국가 원수를 선출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아직 공화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압도적 욕구를 보이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망 이후 실시된 가장 최근의 ‘Guardian Essential’ 여론조사에서는 공화국 지지가 43%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진행된 ‘Resolve’ 조사 결과는 46%가 공화제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Roy Morgan Research’의 SMS 조사에서는 호주인 60%가 군주제 유지를 옹호했으며 40%만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공화국으로의 전환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조사는 모두 여왕 서거가 발표되고 국장이 진행되는 와중에 실시된 것이다. 바이아 CEO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에 대한 대중매체의 보도, 전 세계적으로 슬픔과 애도를 표하는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이 조사 결과로 인해 공화제 전환 운동그룹은 낙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조사 결과는 군주제를 옹호하는 최고 수위가 될 것”이라며 “진정한 시험은 앞으로 몇 년 내 우리가 균형 잡힌 국가적 대화를 시작할 때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여왕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남긴다”
다양한 주제의 호주 역사서를 저술한 작가로 호주와 왕정과의 관계를 다룬 ‘Australia and The Monarchy’를 선보인 바 있는 데이빗 힐(David Hill)씨는 “현재 전 세계가 여왕과 작별을 고한 지금, 호주는 ‘불가피하게’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왕 서거 후 실시된 'Roy Morgan'의 SMS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호주인들의 공화제 지지는 40%, 군주제를 옹호하는 비율은 60%였다. 하지만 공화제 운동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치도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Source: Roy Morgan
그는 “호주인들이 찰스 왕의 어머니를 따뜻하게 대했던 것과 달리 찰스 왕을 그렇게 대한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며 “찰스 왕은 어머니의 후광을 받으려 하겠지만 공화국으로 가려는 호주인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호주인들이 너무 많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 체제가 바뀌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단지 호주인들이 국가 원수를 임명하는 것을 보고 싶어할 뿐”이라는 것이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역사학자인 안젤라 울라코트(Angela Woollacott) 교수도 기다리는 것, 즉 구체적인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공화제 캠페인의 대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에 같은 의견을 보였다.
아울러 그녀는 하워드 정부 당시 치러진 국민투표(1999년)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울라코트 교수는 “당시 공화제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는 대통령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나뉘어져 실패했을 뿐”이라며 국민들의 결정을 묻기(국민투표) 전에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사실 1999년 국민투표에서는 대통령 선출에 대해 ‘연방의회 3분의 2의 동의에 의한 대통령 임명’이라는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일부 공화제 운동가들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기를 원했고, 이 분열은 공화제 전환을 무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화제 전환을 추진하는 대표적 로비그룹 ‘Australian Republic Movement’의 샌디 바이어(Sandy Biar. 사진) 최고경영자. 그는 시간을 갖고 공화제 국민투표 의제를 위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Australian Republic Movement
울라코트 교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바로 당시 순간을 반영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치는 바뀔 것이고 더 많은 비율이 공화제를 지지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굳이 변경할 필요가 있나...”
그런 한편 전 자유당 소속 상원의원이자 군주제를 지지하는 ‘Australian Monarchist League’의 에릭 아베츠(Eric Abetz) 의장은 “변화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의 총독(governor-general. 군주를 대신하는)은 스스로 법을 만들 수 없으며, 이는 의회를 통과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그는 “이것이 입헌군주제의 장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베츠 의장은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상위 10개 민주 국가들 가운데 7개 국이 입헌군주 국가”라면서 “우리(호주)가 가진 멋진 시스템의 장점은 더 많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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