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했다

 

땅밑 주차 자리에 차를 댈 때면 옆집 차가 눈에 거슬리곤 했다. 자리는 좁은데 꼭 자기 차를 내 쪽으로 바짝 붙여 세웠기 때문이다. 차문을 열면 사람 하나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반면 자기 차 옆 공간은 그만큼 편하고 널찍했다. 옆 차의 바퀴가 아예 하얀 주차선을 삐쳐 나와 내 자리까지 넘어 들어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옆 차는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4WD라서 위압감마저 들었다. 혹 내 차가 아담한 크기라 무시를 당하나 싶어 불쾌했다. 지나치게 가까이 댔다 싶으면 얼른 사진을 찍어 두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언제 만나게 되면 증거 사진을 들이대며 단단히 따질 셈이었다. 서로 시간대가 달라서인지 한번은 부딪힐 법한데 그런 일이 없었다. 낮과 밤이 되풀이되는 동안 옆집 차주를 향한 불평과 불만이 쌓였다.

 

“이 따위로 차를 세우다가 몰상식이 넘치다 못해 홍수가 날 지경이 아닌가? 이웃의 사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악당이 아닌가? 양쪽이 있는데 하필이면 왜 내 쪽으로만 가깝게 세우는 거지? 나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나?”

 

별의별 생각으로 괴로웠다.

 

얼마 전 차를 세우는데 문제의 옆자리에 여느 때와 달리 검은색 작은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옆으로 중국계로 보이는 젊은 부부 한 쌍과 할아버지 한 명이 모여 무언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커다란 4WD가 아니라 옆집에 손님이 왔나 보다 했다. 어쨌든 자리가 넉넉해 주차하는 것이 한결 쉬웠다. 승강기를 타러 걸어가는데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소형차로 바꿔 공간에 여유가 있을 겁니다. 큰 차는 다른 데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었다. 드디어 일년 가까이 원망의 대상이었던 그 차주를 마주한 것이다. 더 이상 4WD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기쁨이 솟았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지난 세월의 아픔이 돋아나 한 마디 아니할 수 없었다. 그 남자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차를 가운데에 세울 수는 없었나요? 내 쪽으로 과도하게 가까워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몰상식한 인물이 아닌가? 혹시 큰 싸움이 벌어질까 저어해 최대한 절제와 냉철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남자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미안합니다.”

 

엥? 고약한 성품의 소유자라 여겼는데 선선하게 사과를 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사정을 설명했다.

 

“갓난아기를 차에게 꺼내려면 공간이 더 있어야 해 할 수 없이 한 쪽에 좁게 주차를 했습니다. 이제 아내에게 작은 차를 사주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순간 뽕망치로 얻어맞은 듯 뒤통수가 멍멍했다. 전혀 가늠하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차 안에는 태어난 지 여덞 달이라는 아기가 타고 있었다. 남자는 아내가 운전이 서툴다면서 주차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 주면서 익히게 하는 참이라고 했다.

 

그동안 땅밑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옆 차 주인을 미워하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 적어도 백 번은 훌쩍 넘을 것이다. 당사자로부터 갓난아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나 그의 사정과 처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생겨나는 감정에 마구 마음을 맡기고 불평과 불만과 미움을 입으로 쏟아낸 것이다. 그토록 짜증나게 한 사람을 만나 진상을 듣고 나니 순식간에 나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언제 그런 미움이 있었나 싶게 오히려 그들 가족에 대해 따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기가 정말 귀엽고 예쁩니다.”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한 후 다시 승강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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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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