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의 기적 21] 피임약 개발 ‘유명세’로 찾게된 북한의 가족들
 

'8달러의 기적'은 미국 최초로 제3세대 경구 피임약 노개스티메이트를 발견·개발한 재미과학자 한도원(84) 박사의 일대기입니다. 북녘에서 보낸 소년기, 혈혈단신 탈출하여 남녘에서 보낸 청년기, 그리고 1955년 '8달러'로 시작한 미국 유학 생활 등에서 삶의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일생은 한 편의 잘 꾸며진 드라마와 유사합니다.

 

한 박사는 2002년 은퇴해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제공한 자료들과 구술을 토대로 기자가 스토리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1인칭으로 서술됩니다. (기자 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죤 맥과이어 박사와 내가 짝을 이뤄 발견.개발한 미국 최초의 경구 피임 호르몬제인 노개스티메이트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0년 5월 9일 미국 최초로 식약청(FDA)에 의해 경구 피임약의 시판이 허용된 이후 2년여만에 120만명의 여성들이 사용하게 되었으나, 당시 경구 피임약은 효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데다 부작용이 심하여 자주 소송에 휘말리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암암리에 제약회사들에게 부작용 없는 신약 개발을 독려하고 있었고, 맹렬한 기세로 사회 전반을 뒤흔들던 여성해방그룹을 비롯한 사회단체들도 신약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나와 맥과이어 박사가 1972년에 처음으로 개발한 노개스티메이트가 존슨앤존슨 독일 지사 연구팀들에 의해 먼저 독일 정부의 승인을 받고 유렵 각국으로 퍼져 나가자 미국 제약회사들에게 초비상이 걸렸다. 보통 신제품 약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3~4년은 보통이었는데, 피임약은 훨씬 긴 기간의 임상실험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고는 불발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미 시판이 허용된 제품들이 부작용이 많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나오면서 우리의 제품에 대해 강도 높은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식약청은 우리가 노개스티메이트를 처음 발견한지 17년만인 1989년에 이르러서야 신제품으로 시판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소위말하는 ‘제3세대 신약’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26년만이었다. 미국 경구 피임약은 그레고리 핑커스(Gregory Pincus)가 처음 발견.개발한 노신그론(Northingron)에 이어 2세대 노제스트렐(Norgestrel)이 초기 경구 피임약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우리가 발견.개발한 노개스티메이트가 제3세대 신약으로 탄생한 것이다. 제3대 신약이 나오면서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 경구 피임약의 별칭으로 불렸던 ‘더 필’(The Phill)은 아예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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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존슨앤존슨은 나와 맥과이어가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을 발견.개발한 공로로 회사 최고의 상인 '존슨 메달'을 수여했다. 오른쪽 사진은 메달을 받던 날 회사측에서 촬영해 준 사진. ⓒ 한도원
 

제약사 최고 권위의 상을 받다

노개스티메이트의 발견으로 맥과이어와 나는 이듬해인 1990년 존슨앤존슨이 수여하는 최고의 메달인 ‘존슨 메달’(Johnson Medal)을 받게 되었다. 나는 존슨 메달을 받기에 앞서 1973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아카데믹 연구성과가 뛰어난 과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필립 호프만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어워드’(Philip B. Hoffmann Research Scientist Award)를 받었다. 처음 그 상을 받던 날, 축하연에서 옆자리에 앉은 존슨앤존슨 회장이 나에게 “닥터 한, 연구가로는 최고의 상을 받았는데, 다음 목표는 뭐죠?”라며 물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존슨 메달이죠”라고 했는데, 17년이 흐른 후에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신약을 개발하여 큰 재정적 이득을 안겨준 과학자에게 주는 존슨 메달은 100년이 넘는 존슨앤존슨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과학자들만 받았을 정도로 영예로운 상이었다.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으로는 내기 처음 받는 상이었고, 회사측은 사내 회보를 통해 ‘노스 코리아에서 탈출한 16세 소년이 이룬 기적’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많은 동료들이 비로소 내가 북한에서 혈혈단신 탈출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고학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게되자 경이로운 표정으로 대했다. 존슨 메달을 받고 돌아온 그날, 사랑하는 아내에게 메달을 건네고는 허허로움을 달래고자 집밖에 나와 한참이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던 일이 떠오른다. “북녘 부모님들이 알았다면 얼나마 좋아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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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파트너인 존 맥과이어와 내가 승진한 소식을 소개한 존슨앤존슨 회사 사보. 맥과이어 박사와 나는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 한도원

 

산 넘어 산이라더니, 미국 식약청(FDA)으로부터 노개스티메이트의 실효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나 또하나의 거대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많은 제약회사들이 피임약 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존슨앤존슨과 쌍벽을 이루는 와이예스 제약회사(Wyeth Pharmathetical Company)가 있었다. 와이예스는 우리가 발견.개발한 노개스티메이트가 자기들이 개발한 신제품이 유사하다며 소위 말하는 ‘특허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일로 나는 우리측 변호사와 함께 워싱턴 디시의 법정을 수차례 들락거리며 와이에스 측과 길고 지루한 혈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 2년여 만에 노개스티메이트가 ‘독창적’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아냈고, 그 덕분에 존슨앤존슨은 100만불의 승소 배상금까지 챙겼다.

1992년 존슨앤존슨 본사는 우리가 개발한 노개스티메이트를 오르소 트리사이클린(Ortho Tri-Cyclen)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시판하기 시작했다.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의 위력은 예상보다 대단했다. 시중에 나오자 마자 가장 인기있는 경구 피임약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당장 미국 경구 피임약 시장을 평정해버렸다. 와이에스는 우리에게 패한 이후로 사세가 기울더니 어느날 문을 닫아 버렸고, 다른 몇몇 회사들도 기존의 약품을 폐기처분할 정도였다.

존슨존슨이 발행하는 잡지인 <월드와이드뉴스>(World Wide News)에 따르면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이 시판되기 시작한 지 채 10년도 지나기 전인 1990년대 말까지 경구 피임약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1천600만명으로 늘어났다. 1960년대 초에 비해 무려 13배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내가 은퇴하기 1년 전인 2001년 봄을 기준으로 15세에서 45세 사이의 미국 여성 10명 중 4명은 경구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사용했으며, 10명 중 8명은 한 번 이상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회사측의 또다른 조사에서는 2000년대 초 미국 여성의 75%, 전 세계의 6천500만명~7천만명의 여성들이 오르소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현재까지도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은 가장 많이 팔리는 경구 피임약이 되어 존슨앤존슨에 엄청난 소득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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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판되고 있는 다이얼식 오르소 트리사이클린(Ortho Tri-Cyclen) ⓒ 위키피디아 커먼스
 

내가 개발한 경구 피임약,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우리가 개발한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은 사용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효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거나 일부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전성에서도 대중적인 인정을 받았다. 존슨앤존슨측 오르소 맥네일(Ortho-Mcneil Survey) 보고서에 따르면, 경구 피임약 사용자들의 98%가 만족스럽다고 답했을 정도였다.

오르소 트리 사이클린이 여성들 사이에 일상품이 되면서 예상치 않은 부수효과도 나타나 우리를 고무시켰다. 오르소 트리 사이클린을 상용한 여성들이 얼굴의 여드름이 최료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보고가 속속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왠만한 증상의 여드름 등 피부염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미국 식약청은 오르소 트리 사이클린을 여드름 치료제로도 공식 인정했다. 피임약 연구 과정에서 내가 쏟아낸 논문들은 1980년대 말 연구과제 가운데 하나였던 어린이 성조발증 치료제인 히스트렐린(Histrelin)을 개발하는데에도 큰 역할을 했었다.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이 경구 피임약 시장을 석권한 이후 나의 생활은 엄청나게 바빠졌다. 그동안 소수의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인용되던 200여편의 내 논문들이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산부인과 전문의들과 피임약 연구가들에 의해 샅샅이 뒤적여 지기 시작하면서 내분비선학회, 산부인과학회, 제약연구가 세미나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여행을 해야 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내 단골 방문처가 되었다. 사실, 나는 노개스티메이트 발견 전인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빈번하게 해외 여행을 했었다. 내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해외 여행이 잦았던 이유가 있었다.

회사측과 동료들은 나의 연구가 아카데믹하게 진행되기를 원했으나 내 생각은 달랐다. 연구라는 것이 현장을 무시하고 책상이나 좁은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면 실용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탈북 이후로 나의 삶의 신조가 ‘무엇을 하든 타인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유익을 주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 탓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아카데믹 리서치를 인더스트리얼 리서치(Industrial Research)쪽으로 연결시킨 여러편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나의 피임 연구가 제약업계를 넘어서 외부 산업계에 많이 알려지자 이곳 저곳 국제 기관이나 정부 기관에서 초청하는 일이 많아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산업분야 리서치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던 터에 내가 맥과이어와 함께 발견.개발한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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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피임 관련 국제 워크숍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 한도원
 

독일, 영국,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 유럽국들은 물론, 크고 작은 남미 국가들, 일본, 대만, 싱가포르, 중국, 러시아에까지 불려 다녔다. 종종 초청장을 보냈던 국제 기구들까지 가세했는데, 국제개발기구(AID),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도 여러차례 초청하여 피임 관련 자문을 구했다. 식량 문제와 인구 조절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었던 때였는데, 이상하리만치 한국에서는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나는 존 맥과이어와 함께 울만스 산업화학 백과대사전(Ullman’s Encyclopedia of Industrial Chemistry)의 피임 섹션을 공동으로 집필하여 후배 피임 연구가들이 두고 두고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는 마퀴스 인명사전(Marquis Who's Who)에 오르는 영예를 맛보았다. 1990대초 나는 피임약 분야에서 ‘국제 인사’가 되어 있었고, 이로인해 오랫동안 가슴깊히 묻어 두었던 ‘소원’을 풀게 되었다.

“양강도 후창군 사람, 한도원을 찾습니다”

1990년 어느날로 기억된다. 독일에서 열린 학회 세미나에서 막 집에 돌아오니 왠 편지 봉투가 책상 앞에 올려져 있었다. 무심코 봉투를 뜯어본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허깨비를 보는 듯도 하고 꿈을 꾸는 듯도 했다. 봉투 속에는 16절지 반절 크기의 광고문 한장이 달랑 들어 있었다. 그런데 광고문 오른쪽 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 한장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교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이었다. 한 동안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1946년 어느날, 경복고 입학기념으로 떡장사를 하던 을지로 어딘가에서 사진을 찍었고, 간단한 안부편지와 함께 사진을 동봉하여 인편으로 북한의 부모님께 보냈었다. 그리고는 그 편지와 사진이 부모님께 전해졌는지 조차 알 길이 없어 한동안 답답해 했었다. 이후로는 극한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에 압도되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43년이 지난 어느날,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멀고 먼 미국땅 한켠에서 색 바랜 사진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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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제3세대 경구 피임 호르몬제'로 일컬어진 노개스티메이트를 발견하여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덕분으로 나는 43년만에 북한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나의 가족은 북한을 방문한 캐나다 동포를 통해 나를 찾는 광고를 캐나다 동포 신문에 냈다. 광고에 붙여진 교복 사진은 내가 1947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한도원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사진 왼편에 고딕체로 “사람을 찾습니다” 라는 글귀가 들어왔다. 그 아래로 누군가 타이프로 친 듯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한도원
양강도 후창군 사람
연령…59세

나직하게 바로 아래 적힌 사연을 읽자니 이번엔 목이 막혔다.

“오빠! 어머니 아버지가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기다립니다. 부모님께 효성하려면 꼭 기회보아 오시기 바랍니다. 신의주시 풍서동 16반 한정자 보냅니다.”

넷째 동생의 편지였다. 그 아래로 단을 바꿔 다시 이어졌다.

“맏오빠! 날이가고 세월이 흐를쑤록 단 하루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맏아들, 맏형, 맏오빠로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을 잊지 않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꼭 상봉의 그날만을 기다립니다. 1989년 4월 17일 누이동생.”

편지 내용 바로 아래로는 “찾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아버지와 형제들의 이름과 직업까지 적혀 있었다. 긴 여행 끝이었으나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귓속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왱왱거렸다.

“사람을 찾습니다. 한도원 양강도 후창군 사람… 오빠! 어머니 아버지가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기다립니다....”

편지는 마치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빨리 좀 오라’는 투로 읽혀져 밤새 가슴을 맺히게 했다.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니 북한의 가족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캐나다에서 발행되고 있는 한인신문 <뉴 코리아 타임>(New Korea Time)에 나를 찾는 광고를 냈고, 신문사에서 나의 거주지를 수소문하여 알아낸 다음 광고문을 오려서 보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나는 며칠 후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는 우선 토론토에 있는 <뉴 코리아 타임>이라는 한인 신문사에 찾아가서는 광고를 낸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아 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물어 물어 봉투에 적혀 있는 주소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니 미리 연락을 받은 동포 노인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물 한잔을 청하고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노인은 몇 개월 전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북한의 고향을 방문했는데, 애석하게도 동생은 사망했고, 동생의 아들 즉 조카가 고향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조카의 부인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자신의 친 오빠가 43년 전에 단신 월남했는데 찾을 길이 없다며 “우리 오빠가 틀림없이 미국에 살고 있는 거 같으니 한 번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다.

기가 막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북한의 가족들은 내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고, 어머니는 늘 “도원이는 살아 있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특히 어느날 북한의 노동신문 1면에 ‘해외에서 조국을 빛내고 있는 동포들’ 50인을 거명하면서 “조국에 돌아와 봉사해 달라”는 내용의 기사가 오른 것을 보고는 “세상 천지에 ‘한도원’이라는 이름은 하나 밖에 없어! 우리 도원이는 틀림없이 살아 있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유명세’ 덕분에 부모님께서 나의 생사를 확신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귀가길에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의 기수를 그대로 북한으로 돌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트랩을 오르고 내리면서도 온통 북한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찼다. 43년 전, 초저녁 어스름의 후창강가에서 “방학하면 돌아 오겠다”고 어머니에게 한 약속을 어떻게든 지켜 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회가 찾아 왔다. (자료 정리 및 스토리 구성 : 김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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