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을 안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320여 의약품에 대해 스크립트 하나로 두 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안이 새 회계연도 예산계획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 방안은 독립 자문기구인 ‘Pharmaceutical Benefits Advisory Committee’(PBAC)에서 작성한 것으로, PBAC는 5년 전에도 140개 품목을 대상으로 이 같은 권고안을 제시했으나 당시 자유-국민 연립 정부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320여 만성질환 의약품 대상, 스크립트 하나로 두 배 구입... 약사들, 강하게 반발
오는 5월 둘째 주 화요일 공개할 새 회계연도 예산계획에서 생활비 경감을 제공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스크립트 하나로 이전보다 두 배의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달 마지막 주, 마크 버틀러(Mark Butler) 보건부 장관은 심장병, 콜레스테롤, 만성 장염(Crohn’s disease),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320개 이상 약품에 대해 구입할 수 있는 약품의 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약사와 의사 사이의 오랜 의약품 영역 분쟁을 촉발시켰다. 약사들은 이 같은 변화가 약품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약국 운영이 곤경에 처하고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320여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은 연간 약품 구입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 해당 목록에 있는 약품은= 이번 정부 계획의 해당 약품 목록은 독립 자문기구인 ‘Pharmaceutical Benefits Advisory Committee’(PBAC)에서 작성한 것이다. 5년 전인 지난 2018년, PBAC는 140개 이상의 약품에 대해 환자들이 스크립트 리필을 1개월에서 2개월로 늘릴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당시 자유-국민 연립 정부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PBAC는 이를 확대해 320여 약품을 포함하도록 권장 대상을 확대했으며,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 업데이트 된 조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즉 누군가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의약품이 이 목록에 있다면, 약국에서 한 달 분량이 아니라 두 달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하나의 스크립트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한 달 분량의 의약품을 구입하는 데 30달러를 지불했다면 이제 2개월 분량을 같은 가격에 가질 수 있게 된 것으로, 연간으로 보면 360달러 대신 180달러로 약품구입비가 줄어드는 셈이다.
목록에 있는 의약품에는 알로글립틴(alogliptin), 디파글리플로진(dapagliflozin)과 같은 제2형 당뇨 치료에 사용되는 여러 약품, 극심한 여드름에 대한 항생제인 독시사이클린(doxycycline), 심장 관련 베타 차단제인 카베딜롤(carvedilol) 및 프로프라놀롤 하이드로클로라이드(propranolol hydrochloride), 고 콜레스테롤(high cholesterol)을 위한 에제티미브(ezetimibe)가 포함된다.
그런 한편 두 배 분량의 약품에 대한 스크립트 결정은 여전히 의사에게 있다.
▲ 혜택 대상= 제2형 당뇨, 우울증, 위산 역류, 궤양성 대장염, 심부전, 고 콜레스테롤, 천식, 류머티스 관절염 등 다양한 만성질환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런 질병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의약품 비용을 덜 지출할 뿐 아니라 의사 방문도 덜 하게 되므로 이의 비용 또한 절약하게 된다. 또한 의사는 6개월이 아니라 한 번에 12개월 분량을 처방할 수 있다.
그 동안 호주 왕립의사회인 ‘Royal Australasian College of Physicians’(RACP)와 호주 의료협의회(Australian Medical Association. AMA)는 이 같은 변화를 추진해 왔다. 이는 업무가 많은 GP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필수 의약품을 구입해야 하는 이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여주게 될 것이라는 게 의료단체의 의견이다.
▲ 시행 시기= 정부는 이 변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첫 번째는 올해 9월 1일부터이다. 다음 단계는 내년 3월 1일부터, 최단 단계는 2024년 9월 1일부터 시작된다.
각 시행 단계마다 약 100개의 의약품이 지정되며, 정부는 조만간 이 약품을 어떻게 각 단계에 적용할 것인지를 공개할 예정이다.
연방 보건부 마크 버틀러(Mark Butler. 사진) 장관. 이번 정부 조치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의약품 공급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Twitter / Mark Butler MP
▲ 의약품 공급 문제 발생 우려= 약국 조합은 정부의 결정이 이미 압력을 받고 있는 약품 공급망에 더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또한 해당 질병을 안고 있는 이들이 약품을 과다하게 비축하거나 심지어 과다 복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버틀러 장관은 “현재 사용 중인 325개 의약품 가운데 7개 약품만이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며 약사들의 이 같은 주장을 ‘공포 캠페인’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장관은 “이 계획은 일정 기간 동안 300개 의약품의 공급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약사들이 일정을 변경할 수 있도록 올해와 내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 계획을 준비하도록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Medicines Australia’는 향후 몇 달 동안 공급문제 발생에 대처하고자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약사들이 반발하는 이유= 만성질환을 안고 있는 각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필수 의약품을 제공해 약사들 입장에서 이들을 더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키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약국의 수입 감소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만약 이런 문제로 약국이 문을 닫게 된다면 이는 약국 운영자만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에 큰 불편을 주게 된다.
현재 약국은 의약품이 판매될 때마다 연방정부로부터 조제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정부의 의약품 개혁에 따라 이 수수료가 줄어들게 됨에 따라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부 약국에서는 소득 감소로 직원을 덜 고용하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크 버틀러 보건장관은 이번 개혁에 따라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4년간 조제비로 12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임을 인정하면서 “이 부분은 지역 약국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