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교수님,
당신께서 불현듯 세상을 떠나신 후, 저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긴 긴 파리 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리운 고향 땅에 정착하기 위해, 마지막 채비를 하시던 중에, 이런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져 황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함께 차 한 잔 마시며, 담소 나눌 시간 조차 주지 않고, 어찌 그리 총총히 떠나셨나요?
며칠 전 통화에서도, 비교적 건강한 목소리로, "우리 부부는 잘 지내고 있네. 집도 잘 정리되고 있는 중이니 걱정 말게나"
노령의 성치않은 몸으로 짐을 꾸리고 계시는 두 분의 안위가 걱정 되어, 찾아뵙겠다고 해도, "바쁠테니 오지말고 이제 곧 한국으로 귀국하니 그때 고성에서 보자고"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저를 걱정해 주시던,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날, 억지로라도 찾아 뵀어야 했는데, 그게 교수님과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생각하니, 뒤늦은 후회와 회한만이 밀려옵니다.
어제는 문득, 교수님 생가 뒷산의 대나무 숲에서 듣던, 꾀꼬리 소리가 귓전을 맴돌더군요.
대나무 숲, 소슬 바람을 가르며 들려오던, 그 청명하고 아름다운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짓던 두 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선조들이 묻혀 있는, 경남 고성 땅에 터를 잡으시고, 남은 여생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기 위해, 정성껏 가꾸었던 그 아름드리 청기와집과 꽃마당은, 이제 누구를 맞이해야 하는 걸까요?
몇 년 전, 그곳 사랑채에 머물며, 이른아침 당신과 함께 산책하며, 마을 어귀를 거닐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수목과 그루터기를 지나면, 교수님께서, 선친을 기리며 조성한, 작은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공원 한 가운데에는,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아래와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지요.
올바른 삶을 위하여...
행복은 검소함과 겸양에서,
근심은 탐욕에서,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죄는 참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효도는 백행의 근원이니 부모에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있고,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서로가, 신의를 바탕으로,
참는 사람이 승리하고 성공하며 행복하다는,
만고의 참된 진리를 명심하여,
옳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고,
후회없는 생활을 이어 간다면
우리는 이 세상, 영원히 번영하고 행복하리라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선친께서 남기신 "올바른 삶을 위하여..."라는 명문입니다.
정말이지, 선친의 유업대로, 당신께서는 한 평생을 검소하게 겸양의 마음으로, 진리와 신념으로, 묵묵히 티없이 사셨습니다.
무엇보다 당신께서는, 52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통하여,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불고 있는, 한국어 한류 열풍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랑스에서 한국어 발전의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조국에 대한 애정으로, 특별히, 독도 영유권 문제와, 동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 등 역사에 남을 명저, 여러권을 펴내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틈틈히, 프랑스에 첫 발을 내디딘 한국인을 비롯하여, 해방 전후의 재불한인들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 오셨고, 이를 토대로, 프랑스한인100년사를,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프랑스 한인사회의, 역서로 기록될 이 책은, 교수님의 오랜 연구 자료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일 것입니다.
이진명 교수님,
그동안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 열정에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숭고한 정신과 가르침은, 영원히 저희와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의 수 많은 업적들을 기리며, 당신의 삶 당신의 족적, 당신과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고 새기겠습니다.
이제,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그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소서.
- 프랑스존 이석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