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사 스님, 도심

 

글 이지은 진행/사진 이덕일

 

랭리에 있는 서광사로 향하는 차 앞창의 성애를 제거하기 위해 잠시 조금 연 차 창문 사이로 싸늘한 겨울 바람이 들어왔다.얼른 닫았다. ‘밴쿠버의 겨울이 이렇게 추웠나?’싶다. 밴쿠버에 아름다운 절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이 곳 저곳 절을 돌아봤다. 잠시 내가 캐나다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이곳은 바로 고향 이었다. 고국의 산에 있는 사찰을 보는듯하였다. 나의 종교하고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좀 머리를 식히려면 절을 찾았던 기억이 났다. 이상하게도 스님들과 얘기를 하고 나면 정신이 맑아 졌으니까. 아마 밴쿠버의 젊은이들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대웅전은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다. (지하 100평, 지상 목조 50평으로 원래 작게 지었지만, 넓은 6만평 공간에 운동장 같은 잔디밭 끝에 있어 더욱 작게 보인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철저히 한국의 전통 목조사찰 건축양식을 따라 못하나 쓰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화려한 단청과 화엄경 내용의 벽화 그리고 통도사 동원스님이 그린 후불탱화, 신중탱화로 대웅전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한국의 어느 사찰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환하게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이 한 도심 스님은 “시원 하지요?” 하시고 우리는 “춥습니다. 스님.” 하였다. 그가 권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온 몸이 녹아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냥 형식적인 인터뷰 말고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으니 갖고 간 인터뷰할 질문을 적은 노트도 펼치지도 않은 채 그저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방은 아주 단조롭다. 바람에 간혹 절로 열리는 문으론 맞바람이 쳐 겨울엔 춥지 않을까 생각하였다.그리고 승려 복 한 벌이 깨끗이 접혀 한 켠에 걸려 있고 병풍 앞 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 가는 곳마다 버리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서는 짐이 많아지는 우리의 삶의 무게에 비해 단촐한 그의 살림이 너무 부러웠다.

 

 “차 맛이 좋습니다.” 그가 건네는 차는 ‘황차’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녹차는 끊인 물 식혀서 차로 마시는 반면, 황차는 반발효차로, 녹차를 마시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비해 황차는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 마실 수 있다고 한다. 황색의 차는 녹차보다 떫은 맛이 덜하고 색도 아주 곱다. 그가 그러하다. 그와의 얘기는 녹차처럼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황차처럼 쉽다 그러면서도 곱고 향기롭다. “옛날에는 절을 찾았을 때 스님이 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하지만 도심스님은 언제나 뵐 수 있었어요. 그래서 좋아요.” 한 불자의 말이다. 그래서인지 비록 캐나다에 있지만 관광은 고작 업무 차 자동차로 캘거리의 서래사를 방문하다가 들른 밴프가 전부라고 한다. “관광이요? 땅이 넓으니 손을 보아야 할 곳도 많아 생각보다 일이 많아요. 떠날 수가 없어요. 여기에선 내가 힘을 좀 씁니다.” 웃으면서 스스로를 “머슴”이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 내내 트랙터를 몰고 호박을 가꾸는 일을 비롯해 서광사에 달린 농장 돌보는 일을 거의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여기에서 농사지은 무공해 채소로 무공해 김치 반찬을 판매하고 있다. 교민 사회에 은밀히 소문이나 이젠 일요일 법회 후의 공짜 식사 (공양이라고 한다)와 무공해 반찬을 사기 위한 관광객(?)도 꽤 된다. “이젠 다양한 농기구를 다루는 데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이민자들은 직업이 있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옆에 있지 않으니 웬만한 것은 당신 혼자 해결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몸은 더 고달프지만 한국을 그리워하고 외국 땅에 와서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람을 찾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큰 그림에서는 그저 자신도 인간의 삶이며, 작은 그림에서 보면 조금 특별한 삶이라고 한다. 외로움, 고독, 유혹에 대한 여러 가지 어려움은 불교의 수행자인 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늘 따르는 것이어서 인간이라면 지혜롭고 강하게 이겨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단 그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누가 시켜서 가는 길이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조용히 앉아 나의 머리를 만지면서 지금 나는 수행 중이라는 다짐을 하며 이겨 나갑니다. 승려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수행을 길을 가고 있는 중이지요.” 도심스님이 말한 자기 절제는 비단 수행자의 길만이 아니라 모든 일반인들에게도 평생 씨름해야 할 과제인지도 모른다. 우린 종교를 택하고 그는 고행의 길을 택했으리라.

 

“한국에 대한 향수로 몸은 밴쿠버에 있지만 마음은 늘 허공에 있는 듯 떠 있는 독고 노인들을 위해 노인의 집을 세우는 것과 한국에서 오는 어학연수생들을 위한 수련회를 여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명상의 길을 만들어 누구이든 한국의 정서를 느끼고 맨발로 황토를 걷고 자갈로 된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리게 해 주고 싶다고 한다. 이 행사는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명상의 체험장으로 발전 시킬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닫혀 있는 마음속의 응어리를 토해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은 진실을 얘기할 진정한 상대(나)를 찾는 일 이 아닐까 한다. 한 말이 와전되어 곤란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고 얘기하고 싶을 땐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상대이니 말이다.

 

그는 민들레를 유독 좋아한다고 한다. 민들레는 어떤 곳이든지 자신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꾸밀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란다. 그의 앞에 놓인 밴쿠버의 여정을 민들레에 비유하여 시를 지었다.

 

동방의 남쪽 코리아

영축산 언저리 천년고찰

고즈넉한 담장 밑에서

범종 소리를 들으며 해탈을 노래하던 민들레 홀씨 하나

하늬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두둥실 몸을 띄우더니

아역만리 서방의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밴쿠버의

너른 땅 낮은 곳에 찰지게 뿌리내려

이 땅의 봄을 위해

힘찬 발아를 꿈꾸려 하네

그 작은 씨앗 속에 다부지게 숨어있는 것은

가나 다라 마바사

가갸 거겨 고교 구규

때로는 빛이 되고

때로는 함성이 되어

툭하고 터질 그날이 오면

작은 꽃등 하나 환하게 불 밝혀

수 천 수 만의 꽃등이

함께 열리는 서방의 등불이 되리라.

 

그가 밴쿠버의 서광사에 오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서 스님의 방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왔다.

아까 느꼈던 추위는 없어지고 시원하기만 하였다. “시원합니다, 스님. 그렇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