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사이로 다카시 교수는 저서 ‘Desire Modernism’에서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서서 커피에 의해 각성한 의식이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 커피가 가진 ‘잠이 오지 않는 속성’은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고 진단했다. 사진 : Unsplash / Milo Miloezger
Coffee: A Global History의 저자 모리스 박사가 들려주는 ‘문제 많은’ 커피 이야기
기호품 위한 수천만 노예 희생... 호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커피 소비 크게 증가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사이로 다카시 교수는 저서 ‘Desire Modernism’(한국에서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으로 번역 출간됨)에서 오늘날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욕망’의 하나로 커피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서서 커피에 의해 각성한 의식이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 커피가 가진 ‘잠이 오지 않는 속성’은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알코올은 이성을 흐리게 하고 욕망을 자극한다. 중세의 성에 대한 관대함이나 개방적인 공기는 어쩌면 이 알코올 소비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커피처럼 각성 작용이 강한 음료는 프로테스탄트를 중심으로 유럽에 보급되었다.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보다 훨씬 금욕적이다. 그들은 알코올을 금하는 것으로 욕망에 눈 뜨지 못하도록 제어하려 했고, 커피를 마심으로써 의식을 각성 상태로 만들어 이성적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인 ‘커피하우스’를 만들어냈다. 커피하우스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의견교환과 정보교류가 이루어진다. 커피가 갖는 각성적인 의식 하에 사람과 정보가 모이고, 시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써의 생산적인 장소로 발전한다. 파리에서 커피하우스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토론의 장을 제공한 것도 그런 작용의 결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라고 기술했다.
커피나무의 열매. 이 열매의 껍질을 벗겨내면 작은 씨앗이 나오는데 이것이 커피 원두이며, 이를 로스팅한 뒤 여러 방법으로 커피를 만들어낸다. 사진 : Unsplash / Clint McKoy
사이로 교수가 현대사의 욕망 가운데 하나로 커피를 다루면서 언급한 이 일부분만 보더라도 커피가 어떻게 세계사를 움직여 왔고, 또 움직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 커피가 처음 소비되었을 때인 서기 850년 이후 이 커피나무의 작은 열매는 7개 대륙을 모두 횡단했다. 심지어 우주까지 여행했다.
런던 북쪽, 허트포드셔 카운티(county of Hertfordshire)에 자리한 허트포드셔대학교(University of Hertfordshire)의 조너선 모리스(Jonathan Morris) 교수는 얼마 전 ABC 라디오 ‘Late Night Live’ 방송에서 “이탈리아 최초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으로 보내졌을 때 그들이 가지고 간 것 중 하나는 특별히 설계된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지구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고, 사이로 교수의 설명처럼 어떻게 하여 전 세계인의 열렬한 취향을 사로잡았을까.
커피의 발견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티오피아의 칼디(Kaldi)라는 염소목동에 의해 커피 열매의 효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게 현재까지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사진은 목동 칼디가 커피 열매를 발견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 이미지 : Crema Coffee Garage 블로그에서 발췌
우연히 발견된 ‘유레카’의 순간
오늘날 지구촌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 것처럼 커피의 발견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커피 원두를 소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록된 증거(written evidence)는 없지만, 9세기 에티오피아의 칼디(Kaldi)라는 염소 목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지고(folklore) 있다.
이 전승은 이렇다. 한 덤불에 있는 붉은 열매를 따 먹은 염소들이 잠시 후 흥분한 듯 평소와 달리 펄쩍펄쩍 뒤는 모습이 칼디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열매는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열매를 맛본 그 또한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칼디는 지역 종교인에게 이 열매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칼디가 준 열매를 입에 넣어보았지만 별 맛을 느끼지 못해 근처의 불구덩이에 뱉어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이 붉은 열매가 불에 구워지면서 새로운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고, ‘맛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열매’로 여겼던 마음이 금세 바뀌었다.
칼디라는 목동에 의해 발견된 커피나무 열매는 그렇게, 까맣게 탄 씨앗을 끓는 물에 부어 커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Coffee: A Global History’라는 책을 낸 모리스 교수는 “하지만 칼디라는 염소 목동이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는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본거지(seedbed)라고 말해주지만 커피 소비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은 증거는 15세기 예멘(Yeme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모리스 교수의 말이다.
1750년대 브라질의 한 코피농장을 묘사한 그림. 노동자들이 커피 원두를 끌어 모으는 동안 감독자는 나무그늘에 앉아 일꾼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이미지 : Hulton Archive
그 무렵, 이슬람 종교인들은 각성작용을 하는 커피를 필요로 했고, 커피시장을 주도해나갔다. 모리스 교수는 “그리하여 ‘Horn of Africa’(아프리카 대륙 동쪽 끝 반도. 뿔 모양의 지형에서 유래된 말)에서 예멘으로 커피 무역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1450년경 수피교도(Sufis.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들은 종교의식의 일부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특히 그들의 의식이 밤에 열리기에 커피는 아주 유익했다.
물론 이 지역으로 커피가 전해지기 전, 각성 작용을 해 주는 차(tea)가 있었다. 밤 의식에서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종교인들은 아라비아 지역에서 나오는 ‘캇’(khat. 씹어 먹거나 차로 만들어 마시면 약의 효용이 있는 아라비아나 아프리카산 식물의 잎)을 이용했다. 하지만 캇 생산이 부족해지면서 커피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는 이제 종교의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교 목적으로 예멘의 이슬람 단체 사이에서 인기 있는 기호음료로 발전했다. 그리고 1540년대 예멘에서는 처음으로 커피나무가 상업용 작물로 재배됐다.
강제 노동에 동원된 노예들,
커피 관련 어두운 역사의 한 면
모리스 교수에 따르면 중동으로 전해진 커피는 이후 인도 무역을 통해 유럽에 도착했다. 그는 “네덜란드인들은 실제로 인도의 말라바(Malabar)에서 재배되는 커피를 발견했다. 아마도 이슬람 순례자들이 그곳으로 밀반입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6세기 중반, 예멘에서 시작돼 커피가 점차 폭넓게 확산되던 비슷한 시기인 1570년대, 유럽에서도 커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이들은 커피를 약제상에서 의약 목적으로 사용했다. 유럽인들은 1650년대까지 커피를 일반적인 기호음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호주에서의 커피 소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진 : Unsplash / kayleigh harrington
그리고 약 100년 뒤인 1760년대, 네덜란드 농장 식민지인 남아메리카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수리남(Suriname)에 커피나무가 심어지면서 카리브해 일대는 커피 생산의 세계적 중심지로 변모했다.
사실 수리남을 시작으로 인근 및 남아메리카 각 지역으로 커피 생산이 확장된 배경에는 암울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리스 교수에 따르면 “이 모든 커피 생산은 정말로 잔인한 상황에서 노예가 된 이들에 의해 수행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약 1,2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대륙, 주로 카리브해 지역에 노예로 끌려온 것으로 추정한다”는 그는 “얼마나 많은 수가 사탕수수 농장에 배치됐고 또 얼마나 많은 노예가 커피농장에서 일해야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강제로 노예가 되어야 했던 이들이 커피 생산을 담당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커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배경에 노예 노동자들의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호주에서 시작된 플랫 화이트 커피는 이제 ‘Aussie flat whit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카페의 메뉴판에 등장하고 있다. 사진 : coffeebros.com
호주에서 커피가 부상한 시기는
카리브해에 커피 농장이 만들어지고 얼마 후인 1788년, 영국 죄수 호송선인 제1함대(First Fleet)가 호주로 들어올 때 영국 관리들은 커피 열매와 나무를 반입했다. 하지만 카리브해 지역과 다른 기후 여건으로 호주에서는 커피나무가 번성하지 못했고 영국 정착민들은 여전히 전통적 기호음료인 홍차를 즐겼다.
호주의 각 주 식민지가 연방 국가를 구성했던 1901년까지만 해도 호주에서의 커피 소비는 차(tea)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리고 호주에서 커피 수요가 촉발된 것은 1942년부터 호주로 유입된 약 100만 명의 미군 병사들에 의해서였다. 모리스 박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때 병사들이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깨어 있게 유지했고, 당시부터 폭넓게 확산됐다.
미군들이 호주에 머무는 동안 이들은 현지인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고, 각 가정에서는 이들을 접대하고자 커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민자들이 대거 호주로 유입되면서 커피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그 즈음, 그야말로 ‘호주에서의 커피 혁명’이라 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보다 손쉽게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들여온 것이다. 특히 멜번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커피 기계로 인해 멜번에서는 커피 소비가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커피가 각 대륙으로 확산될 즈음, 각 제국은 식민지 국가에서 노동력을 강제 동원(노예로), 커피농장에 배치했다. 사진은 에티오피아의 한 커피농장에서 커피나무 열매를 가려내는 근로자들. 커피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Pixabay / ningxin23minor
멜번대학교 역사학자 앤드류 메이(Andrew May) 교수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도입은 단조로운 과거와 세계화 사이의 중요한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많은 호주인들에게 향수로 기억되고 있다”(The introduction of espresso coffee is nostalgically remembered by many as a key watershed between a drab past and a cosmopolitan present)고 평가하기도 했다.
각국 애호가 입맛 사로잡은
호주산 ‘플랫화이트’
모리스 교수는 “오늘날 호주의 커피 문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호주에서 만들어낸 플랫화이트(flat white)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플랫화이트 커피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당시 젖소의 먹이 변화로 인해 일반적인 방식으로 우유 거품을 낼 수 없기 되면서 각 카페에서는 카푸치노 대신 플랫화이트 커피만 가능하다는 ‘No Cappuccinos only Flat Whites’라는 표지판을 게시하면서부터이다.
그렇게 호주만의 새로운 커피 제품이 만들어졌고, 플랫화이트는 새로운 커피 종류로 호주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전 세계 카페의 메뉴에 등장(‘Aussie flat white’라는 이름으로)하고 있다.
오늘날 커피는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는 기호음료이다. 사진 : Unsplash / Avery Evans
시드니를 기반으로 한 커피 원두 도매회사이자 커피 로스터인 아론 커닝엄(Aaron Cunningham)씨는 “오늘날 호주는 플랫화이트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특별한 커피를 수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는 커피 열매의 기원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산이다. “거기에는 나로 하여금 특별한 커피와 사랑에 빠지게 했던 모든 것, 즉 꽃향기, 좋은 구연산, 복잡한 산도(acid), 멋진 과일향이 고루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가상승으로 커피 가격 또한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그 가격표에 움츠러들기보다는 좋은 커피를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지 소비자들이 기억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커피를 재배하고 손으로 열매를 채취한 뒤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햇볕에 말려 원두를 만들어내는 현장 근로자들의 힘든 노동 과정을 알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닝엄씨는 특히 “그 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받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커피가 어디에서 공급되고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에 대한 커피 산업계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커피 농장, 농부, 커피 노동자 및 지역사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신문 2020년 1월 17일 자 ‘전 세계는 지금 호주의 커피 문화에 매료되고 있다- Aussie flat white 커피, 지구촌 곳곳의 소도시 카페 메뉴에도 등장’ 기사에서 호주 커피의 역사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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