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makers’...호주 여자축구 팬들의 응원 푯말처럼 대표팀인 ‘마틸다’(Matildas)는 올해 FIFA 여자축구 월드컵을 계기로 여자축구에 대한 호주인의 사회, 문화적 이슈와 관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진 : Fox 스포츠 채널 중계 화면 캡쳐
여자축구 발전의 새로운 계기 만들어... 3-4위전 시청률, 호주 TV 역대 최다 기록
2032 브리즈번 올림픽 앞두고 주요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성공적 개최 능력’ 재입증
‘2023 FIFA 여자월드컵 대회’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뉴질랜드와 공동 개최한 올해 대회(7월20일-8월 20일)에서 호주 여자축구 대표팀인 ‘마틸다’(Matildas)는 준결승에 오르며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마틸다가 거둔 이전의 최고 성적은 2007년 월드컵으로 대회 8강, 종합 6위였다. 지구촌 최대 축구대전인 올해 월드컵에서, 마틸다는 ‘대회 4강’이라는 기록을 세운 호주 최초의 축구팀이 됐다. 당분간 이 기록을 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자팀인 ‘사커루’(Socceroos)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며 종합 11위에 자리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본선 경기부터 승승장구하며 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자 했던 호주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8월 19일 3-4위 전에서 스웨덴에 아쉽게 패배) 올해 AU-NZ 여자월드컵은, 호주 여자축구는 물론 호주 스포츠계에서 많은 의미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베번 쉴즈(Bevan Shields) 편집국장은 결승전이 끝난 지난 8월 20일, 칼럼을 통해 올해 FIFA 여자월드컵에서 마틸다가 보여준 성공은 내년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호주팀에 큰 희망을 주었으며 또한 호주 여자축구 및 스포츠 이벤트 측면에서도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진단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먼저, FIFA 여자월드컵으로는 첫 공동개최였던 올해 대회에서 호주 축구팬들의 관심과 맞물려 마틸다의 활약은 새 천년의 첫 해였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열리게 되는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을 앞두고 호주가 주요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했다.
빅토리아 주(Victoria) 다니엘 앤드류스(Daniel Andrews) 주 총리가 2026년 커먼웰스 대회(Commonwealth Games. 영국 연방 국가가 참여하는 스포츠 대회) 개최를 충격적으로 취소한 것이 전 세계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FIFA 여자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 및 마틸다의 활약은 상당한 성과이자 ‘호주의 글로벌 명성’을 높인 계기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쉴즈 편집국장은 두 차례의 주요 국제 스포츠 이벤트(2000 시드니 올림픽과 이번 FIFA 여자월드컵)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호주의 자존감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호주가 첫 올림픽을 개최한 것은 1956년 멜번(Melbourne) 대회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년간의 긴축 끝에 열린 이 국제 행사는 호주 및 호주의 스포츠 기량에 대한 전례 없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고, 호주를 국제사회로 안내했다. 그리고 이번 FIFA 여자월드컵 및 마틸다에 쏟아진 선의(goodwill)는 호주 여자축구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슈 및 인식(attitude)의 시험대로, 이 종목을 호주 스포츠 주류에서의 대성공(big-time)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호주는 본선 3경기, 8강과 4강전 및 3-4위전을 치렀다. 각 경기 동안 마틸다는 경기당 평균 700만 명 이상의 TV 시청자를 끌어 모았으며 영국과의 준결승에서는 1,150만 명이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봤다. 이는 호주 역대 최고 시청자 수이다. 사진은 영국과의 준결승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 사진 : Fox 스포츠 채널 중계 화면 캡쳐
사실 호주 여자축구 선수들이 호주의 문장(crest)을 유니폼에 부착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해낸 첫 마틸다는 1988년 ‘파일럿 여자 월드컵’(pilot Women’s World Cup)으로 알려진,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라는 명칭의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열린 이 행사는 FIFA의 공식 첫 국제대회이자 호주 여자축구가 참가한 첫 FIFA 국제 경기였다(한국신문 7월 21일 자 기사 참조).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호주는 여자 축구에 대한 인적 자원이 부족했고(얕은 선수층) 국제대회에 대한 대비는 물론 호주여자축구협회(Australian Women’s Soccer Association)의 지원도 거의 없었다. 당시 선수들은 경기를 위한 항공료, 개인장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선수들 입장에서 한 번 경기를 치르는 데 몇 주치의 급여가 지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1988년 첫 국제대회 이후 12년 뒤 마틸다는 여자축구 프로그램 자금마련을 위해 ‘누드 달력’을 제작, 판매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저변인구가 적었던 여자축구에서 연방정부의 지원 부족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선수를 상상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올해 대회 주장인 샘 커(Samantha Kerr)는 영국과의 준결승전을 마친 뒤 풀뿌리 축구 발전을 위해 정부 차원의 더 많은 자금을 대담하게 요구했고,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정부는 여자 스포츠 시설 및 장비 개선을 위해 2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호주 여자축구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슈 및 대중의 생각, 즉 마틸다에 대한 많은 애정은 경기 관람에서도 나타난다. 마틸다들이 치른 경기장은 연속 매진이었고, 영국과 치른 준결승은 호주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이 시청한 경기였다. 마틸다 경기(본선 3경기, 8강전 및 4강전, 3-4위 전) 중계 TV의 평균 시청자는 713만 명,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툰 영국과의 경기 시청자는 무려 1,115만 명에 달했다.
올해 FIFA 여자월드컵에서 마틸다 경기의 평균 TV 시청자 수는 지난 2003년 남자 럭비 월드컵 결승의 400만 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이전까지 스포츠 경기 최고 시청자를 기록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최고 스타였던 호주 육상 캐시 프리먼(Cathy Freeman) 선수가 200미터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으로, 당시 800만 명이 해당 경기를 시청했다. 마틸다의 경기는, 비록 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동메달을 다투었던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의 3-4위 전(대 스웨덴)에도 300만 명 넘는 이들이 시청했다.
프랑스와의 8강전, 연장전에 이은 승부차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환호하는 호주 선수들. 사진 : Fox 스포츠 채널 중계 화면 캡쳐
쉴즈 편집국장은 “분명 마틸다의 신체적, 정신적 강인함은 대다수 호주인들로 하여금 이전에 여자축구에 대해 가졌던 인식을 바꾸게 만들었다”며 “이번 대회에서의 성공은 내년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고 언급했다.
물론 호주 여자축구의 올림픽 본선진출 경로가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팬데믹 사태로 한 해 늦게 치러진 2021 도쿄 대회에서 마틸다는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는 올림픽 4회 출전 가운데 최고 성적이었다. 내년 파리 올림픽 출전에는 아시아 지역 경쟁을 넘어야 한다. 오는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해 2024 파리 올림픽 여자축구 토너먼트 12개 팀 가운데 아시아를 대표하는 2개 팀에 마틸다가 포함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쉴즈 편집국장은 “다만 이는 이후의 일이며 지금은 축하할 일이 많다”면서 “마틸다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여자축구에 대한 호주인들의 인식을 바꾸었고 그들 자신은 물론 호주 여자축구를 전 세계 축구 지도(football map internationally)에 올려놓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들은 ‘마틸다 효과’(the Matilda effect)라는 문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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