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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현금 사용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RBA)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거래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했다. 사진 : Sydney Morning Herald 뉴스 동영상 화면 캡쳐

 

각국, 투명성 이유로 현금사용 단계적 폐지... 호주, 2019년 이후 50% 감소

 

호주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의 요정’(tooth fairy. 밤에 어린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 빠진 이를 놓아두면 이것을 가져가고, 대신 동전을 놓아둔다는 상상 속의 존재)을 제외하면 현금 거래는 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호주 중앙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 RBA)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거래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금사용 감소 추세는 스마트폰을 탭하여(tapping) 결제할 수 있는 기능이 부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멜번 소재 RMIT대학교(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Blockchain Innovation Hub’ 소장인 크리스 버그(Chris Berg) 부교수는 최근 ABC 방송 전국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심지어 신용카드나 직불카드(debit card) 사용마저 다소 구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그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시작된 첫 2년여, 온라인 쇼핑이 급증한 가운데 현금지급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다시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RBA 데이터는 호주인 7%만이 현금사용 비율이 매우 높은 이들(high cash users. 대면거래의 80% 이상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들)이다. 이 또한 2019년 이래 50%가 감소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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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A의 2019년 연례보고서는 “현금 없는 사회 전환은 디지털 경제로의 접근이 어려운 이들에게 불리함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시드니의 한 쇼핑센터. 사진 : Sydney Morning Herald 뉴스 동영상 화면 캡쳐

   

현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편의성, 투명성, 안정성이 향상된다. 버그 부교수는 “많은 정책입안자들은 아마도 현금의 종말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일인 것처럼 이야기할 것이지만 이 같은 이점과 달리 완전한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는 경우 사회 일부 계층이 배제될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즉 현금 없는 사회가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한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소외계층-위험에 처한

커뮤니티 ‘불이익’

 

현금으로부터의 전환은 장애인,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먼 외딴 지역 거주민 등 소외계층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층에서는 여전히 현금 사용이 많아, 거의 5명 중 1명은 전적으로 현금거래를 하고 있다.

RBA 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호주인은 각자의 은행계좌에 접근할 수 있지만 호주 인구 가운데 소수는 그렇지 않다. 종종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unbanked) 이들로 묘사되는 이 그룹은 서류미비 근로자 또는 해외에서 호주에 막 도착한 이주민 등이 ‘금융 신분’이 없는 기타 사람들이다.

버그 부교수는 “현금이 없으면 정말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금 없는 경제’(cash-free economy)를 채택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에서는 소외된 지역사회의 재정적 배제에 대한 우려로 인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에 반발이 생겨났다. 특히 많은 은행 지점이 현금처리 시설을 완전히 없앴을 때 더욱 그러했다.

많은 이들은 이제 스웨덴이 교체하기 어려운 현금 인프라를 너무 일찍 제거하고, 현금 이외 사용에 취약한 이들을 남겨두는 등 지나치게 과격한 조치를 취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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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과 비현금(cash and cashlessness)의 인류학’을 연구하는 매콰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 크리스 바산쿠마르(Chris Vasantkumar) 박사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사실상 금융 시스템 일부를 사유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 Unsplash / Nathan Dumlao

   

현금은 또 다른 온라인 금융서비스와 카드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학대 피해자들에게 생명선이 될 수 있다. 24시간 가정폭력 지원 서비스 기구인 ‘1800RESPECT’ 대변인은 “가족-가정폭력, 성폭력을 겪는 이들이 현금에 접근하면 신중한 구매나 지불을 할 수 있어 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은행 거래를 감시 또는 추적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홍수나 산불 등 긴급 상황에서는 현금이 아주 유용하다. 전기는 물론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2022년 리스모어(Lismore) 홍수 당시 전자결제 시스템이 다운되어 홍수 피해자들은 물, 식량, 연료와 같은 필수 품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 일이 있다. 이 같은 긴급사태로 5개 지역신용조합은 정전이 지속된 지역사회에 현금이 가득한 ATM 기기를 헬리콥터로 긴급 수송해 설치한 바 있다.

 

사생활 보호 위해

현금사용 고집하기도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등 규제당국은 투명성을 주요 이유로 현금사용의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금과 비현금(cash and cashlessness)의 인류학’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매콰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 크리스 바산쿠마르(Chris Vasantkumar) 박사는 “금융 투명성은 양날의 검”이라며 “누군가의 투명성은 다른 사람의 감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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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호주에는 약 20억 장의 지폐가 유통된다. 금액으로는 1천 억 달러가 넘는다. 현금거래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이처럼 많은 양의 지폐가 시중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를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안전장치(security blanket)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게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사진 : ABC 방송이 방영한 NSW Police Force 동영상 캡쳐

   

버그 부교수는 경제의 특정 부분은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기에 현금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 산업”이라며 “(고객은) 사생활 노출을 꺼리기에 현금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금의 역할 변화

 

‘비현금 거래’와 관련한 RBA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 이상이 현금에 접근하거나 거래상의 불편 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어떤 이들에게 현금은 가치 있는 지불 방법이라기보다 ‘보안’을 의미하는 가치저장 수단에 더 가깝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주식시장 붕괴를 두려워한 은행 고객들이 자금 인출을 시작함에 따라 현금이 부족했던 사례가 있다.

바산쿠마르 박사는 “우리가 물품을 사고파는 데 사용하는 현금의 양은 (팬데믹 사태 이후) 계속 감소했다”며 “하지만 전 세계에 있는 현금의 양은 급격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를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안전장치(security blanket)로 여겼다”는 것이다.

RBA 연례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지폐(banknote)가 이를 뒷받침한다. 현금거래는 감소했지만 유통되는 현금은 증가한 것이다. RBA에 따르면 현재 호주에는 20억 장 이상의 지폐가 시중에 있으며, 그 가치는 1,020억 달러 이상이다. 이는 호주인구 1인당 현금으로 약 4,000달러에 해당된다.

바산쿠마르 박사는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는 금융 포용과 현금의 지속적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고자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호주만 봐도, 여전히 현금이 존재하지만 현금을 ‘보유’하는 데 만족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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