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언급되는 말이 있다. ‘입바른 소리’, ‘No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맞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그렇게 하다가는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다. 자리보전을 위해 손금이 사라지도록 처신하는 방법을 배우는 처세술이 뛰어나야 정글에서 살아남는다고 지레짐작하고 있다. 동료들을 밟고 줄서기를 잘해야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공식(?)은 암암리에 전파되고 알아서 배우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낯짝이 두꺼운 사람’을 혐오하면서도 그 방식을 좇아간다. ‘욕하면서 배우는 꼴’이다.

책문(策問).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나름대로 자신이 가진 이론을 현실에 반영해보려고 했던 통로다.

인재를 뽑는 마지막 과거시험 관문을 통과한 33인. 왕 앞에서 직접 시험을 치른다. 시대는 다르나 최고 지도자는 인재를 원한다. 닥친 현안들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나라 재상(宰相)은 왕을 보필하는 한편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바른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왕이 갖가지 정책 문제를 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들에게 아이디어를 구하는 일인 만큼 시대 정신을 올바로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책문은 임금이 묻고 신하가 답하는 일이다. 자신이 누릴 입신양명이나 당파를 초월해야 하고 이해관계에서 멀어져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책문은 정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제, 사회, 문화, 풍속, 역사, 외교, 국방, 철학, 자연과학, 종교 등 모든 영역이 포함된다. 뽑힌 이들은 물음에 정직하고 적확하게 그 답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모든 일은 국가 기강 확립이나 혼란한 사회를 수습하고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해서다.

책문에 임하는 이들은 당대 최고 지식인들로서 최고 지도자가 고민하는 일을 본인 문제처럼 인식하고 익힌 바를 시대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바른말로 인해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거침없이 생각하는 바를 내놓았다. 이를 대책(對策)이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최전선에 서 있었던 셈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지, 인재는 어떻게 구할 것인지,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술이 주는 폐해를 비롯 다소 의아한 질문, 섣달 그믐밤 서글픔이 무엇인지도 묻는다.

광해군이 묻는다.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대들 생각을 듣고 싶다’

이명한이 답한다. ‘장차 늙는 것도 모른 채 때가 되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니 마음에 무슨 유감이 있겠습니까? 삼가 대답합니다’

세종이 묻는다. ‘인재를 등용하고 양성하며 인재를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마다 마음을 다해 대답하도록 해라’

강희맹이 답한다. ‘임금이 어찌 세상에 인재가 없다고 단정하고서 딴 세상에서 구해서 쓸 수 있겠습니까? 서로 막히고 감정이 통하지 않으면 임금은 날로 고립되고 인재는 떠날 것입니다’

책문은 상당히 문제가 어렵고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물음에 숨겨진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지식은 대로는 지혜를 빌려 써야 할 때도 있다.

공직자들을 때로는 ‘정부미’라 부른다. 그들도 우리도. 묘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정(否定)이다. 생각한 바를 다 쏟아 놓는 진언(盡言)은 찾아보기 힘들고 낡아 빠지고 케케묵은 진언(陳言)만 허다한 시대에 책문이 가리키는 지점은 어디인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쳐라’ 하지 않았나? 자리를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선 자신이 어울리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손바닥만 비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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