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빅토리아 여왕 시절 19세기 대영제국의 인구와 땅은 전 세계 4분의 1이나 되었다. 영국 본토에선 해가 지더라도 영국 반대편 식민지에선 해가 뜨고 있었다. 영어가 사실상 국제공용어가 된 것도 이때 부터였다.
당시 대영제국에는 독특한 휴가제도가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고위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번씩 한달 휴가를 주는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한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가 그것이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끌던 군주가 국가 주요정책으로써 독서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보다 무려 400년전인 15세기에 독서휴가제도를 실시한 군주와 나라가 있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조선의 세종대왕이다.
“직무 때문에 독서에 힘쓸 겨를이 없으니, 이제부터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글을 읽어 성과를 나타내라.” ‘책 읽을(讀書) 겨를(暇)을 하사(賜)했다’고 해서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했다.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 등 사육신 중 4명과 신숙주·이석형 등이 세종시절 사가독서출신들이다. 영조때까지 300 여년동안 총 48차례 320명이 혜택을 받았다. 독서휴가기간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독서휴가제는 정조때 규장각이 설치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됐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8일 발표한 2023년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서 인구는 48.5%로 나타났다. 10년전인 2013년 62.4%에 비해 13.9%가 줄어든 결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 독서실태 결과 역시 비슷하다. 2021년 발표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이었다. 2013년의 71.4% 대비 23.9% 포인트, 9.2권 대비 4.7권이 감소한 결과이다. 이는 성인의 절반 이상이 책을 읽지 않으며, 읽는 사람도 두달에 한 권을 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에서 2017년 발표한 국가별 1인당 월간성인독서량 조사결과는 더욱 부끄럽다.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비해 우리나라는 한 권도 되지않는 0.8권으로 최하위권인 166위를 기록했다.
대중교통에서는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만 책 읽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동네 책방이 사라지고 대형서점도 매출이 주는 대신 대학가에는 술집들만 즐비한 지 오래이다. 국회에서는 2022년 62 여억원, 2023년 약 59 여억원이었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예산이 올해는 아예 삭감되었다.
빌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 습관이다”고 말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밥먹듯이 해야 한다. 우리 아이의 미래는 아빠와 엄마의 독서에 달려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책을 읽는 가정이 많이 늘어나고, 책을 선물로 주고받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UN에서 정한 영어의 날과 스페인어의 날은 같은 4월 23일이면서 배경도 일맥상통한다.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탄생일과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을 각각 기린 것이다. 러시아어의 날 역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쉬킨의 탄생일을 기린 6월 6일이다. 자국의 언어를 대표하는 날을 자국이 배출한 문학가를 기리는 날로 정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 덕분에 세계 최저의 문맹율과 세계최초의 독서휴가제 국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저의 독서율을 갖고 있다는건 참으로 낯뜨거운 일이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컬처시대를 맞아
한국어가 유엔 공용어로 지정되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야할 절호의 시기이다. 동시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이나 10월9일 한글날을 한국어의 날로 만들어야한다. 그 첫걸음은 독서를 통한 문학적 소양 함양과 문화적 소통과 확산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지만,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나르(Pascal Quinard)는 독서를 '마법의 양탄자'에 비유했다. 디즈니영화 <알라딘>에서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궁궐을 떠나 하늘을 함께 날며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이고 가슴벅차다. 한해의 끝자락을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가슴설레는 세계로 날아가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