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실버스타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은 많은 이들 사랑을 받은 책이다.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또 어떻고. 우리에게 나무는 이모저모 남아있는 기억 혹은 추억이라는 ‘메모리칩’이다.
지인 중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 곁에 서성이다 보면 형언치 못할 향내가 난다. 만들어진 작품이야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 하지만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매만지는 과정이 너무 경건하다.
예를 들면 작업 속도를 더디게 하는 옹이를 만나면 짜증을 낼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천천히 오래도록 보듬고 닦고 윤기를 낸다. 상처 있는 것에 대한 예의다. 나무를 매만지는 이들 손에는 수없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스티그마, 흔히 낙인(烙印), 화인(火印)이라지만 나에겐 성흔(聖痕)으로 느껴진다.
강원도 홍천에서 ‘내촌목공소’를 운영하는 김민식 선생이 쓴 ‘나무의 시간’. 그는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무를 사기 위해 400만 km를 길 위에서 보냈지만 어디에서 만났건 나무는 사람과 맞닿아있는 역사임을 알려준다.
숭례문 기둥이나 광화문 현판이 어이없게 갈라지고 목공예를 하는 젊은이가 오동나무는 싸구려 목재라는 기가 차는 인터뷰를 TV에서 본 후 글을 쓸 결심을 했다는 목재 상담 고문(顧問). 나무를 사랑하는, 나무를 이용하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나무가 지닌 이야기는 귀 기울일 만하다.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어느 장을 열더라도 상관없다.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와 연결되고 톨스토이 소설 부활에서는 자작나무,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에서는 라임 나무를 만난다. 소설가 나도향 단편 소설 ‘뽕’에서는 한 맺힌 여인이 만난 뽕나무에 얽힌 삶을 재해석한다. 우리는 이 소설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에로물’로만 읽어왔다. 특히 영화화되었을 때.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 이 책을 읽노라면 ‘건축학 예술론’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신을 목수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인류사 주춧돌인 나무와 한 몸임을 깨닫게 한다.
가수 이문세 씨가 부른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 생각난다.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떠 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려 내가 사랑한 이야기. 우 우 여위어 가는 가로수…’ 쓸쓸하면서도 그리움이 묻어나는 노래다. 흥을 깨서 미안하지만 건조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가로수는 유용성만 따져도 가치가 크다. 도심 과속을 줄여주며 자동차가 배출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감소시킨다. 가로수와 숲이 조성된 지역 여름철 에너지 냉방용 비용은 아스팔트 도심 지역에 비해 15~35% 절감된다. 이를 증명한 도시가 대구다. 여름철에 가장 덥기로 소문난 곳이어서 ‘대프리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구는 제외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도심 속 가로수를 가장 많이 심은 지역이 대구다.
말 나온 김에 재미있는 내용을 두 가지만 더 소개한다.
소나무과인 전나무는 독일 민요에 등장한다. ‘오 탄넨바움’이다. 우리는 이 노래를 잘 알고 있으며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냥 ‘오 탄넨바움’하고 부른다. ‘전나무야 전나무야 언제나 푸른 그 빛’해야 맞다. 또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린덴바움.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보리수도 아니다. 어감이 좋지 않아 보리수로 바꿔 불렀지만 정확하게는 피나무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피나무~’하면 무섭잖아. 보리수에 대한 해석은 장황해서 책을 읽으면 되겠다. 영국 일기 작가 존 에블린은 ‘나무가 없는 것보다 황금이 없는 것이 낫다’고 했다. 나무와 인간은 오랜 역사를 함께했다. 나무가 살지 못하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는 저자 말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영국 맨체스터 한 목재 가공회사 홀에는 ‘A Person who came from Nazareth Seeks for joiner’라고 쓰여있다. ‘나사렛에서 오신 목수를 구한다’는 말이다. 나무를 잘 다루는 목수. 그는 사람과 나무 사이를 연결하고 소통시키며 결국에는 평화를 짓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