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 사용이 실질적인 교육 효과 측면에서는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확산되면서 호주 내 각 학교에서도 이의 사용을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디지털 의존 교육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가톨릭 재단 ‘St Pauls College’의 학생들.
OECD 평가... 각 학교, 랩톱 및 태블릿 반입 금지 방안도 거론
랩톱(laptop)이나 태블릿 등이 학교 교육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공립 및 사립, 가톨릭 재단의 학교들이 학교 내에서의 디지털 기기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지난 금요일(1일)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교육 부문 책임자인 안드레아 슐레이커(Andreas Schleicher) 이사는 최근 열린 국제교육포럼에서 각국 지도자들에게 “진보된 디지털 기술이 오늘날 학교에서의 실질적 교육에는 방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평가가 나온 뒤 시드니 명문 사립학교 중 하나인 ‘시드니 그래머’(Sydney Grammar)의 존 밸런스(John Vallance) 교장도 “노트북 컴퓨터(laptop)가 학교 수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전통적 교육 방식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가톨릭 재단 학교들 역시 ‘기술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 국가들이 오히려 읽기, 수학, 과학 분야의 학업 성취도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OECD의 보고 이후, 노트북 중심의 학습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호주 정부는 노동당 러드(Kevin Rudd)와 길라드(Julia Gillard) 전 수상의 디지털 교육 혁신에 부응, 가능한 많은 학생들의 가방 안에 노트북 컴퓨터를 넣어주기 위해 24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했다.
가톨릭 재단인 세인트 폴 칼리지(St Paul's Catholic College)의 마크 베이커(Mark Baker) 교장은 “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주식시장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전제한 뒤 “컴퓨터는 실제 필요 이상으로 판매되어 왔고 이를 통해 어떤 향상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증거도 없다”며 “노트북 컴퓨터를 배포하는 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 절연처리를 더하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맨리(Manly)에 있는 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을 LCD 스크린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위해 일주일에 하루,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불러냄으로써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17년째 재임하고 있는 이 학교 교장은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와의 인터뷰에서 “교육 회의에서, 교사가 학습용 공룡(공룡이 나오는 시청각 교육 프로그램)으로 낙인찍혔다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어떠할지 알겠는가”라며 디지털 의존 교육 부작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공립학교인 헌터스 힐 하이스쿨(Hunters Hill High)의 학부모들에 따르면, 이 학교 역시 기술 관련 문제들에 대해 학교 자체 결정을 허용하는 교육부 정책 방침에 따라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로 학습하고 과제는 집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등 기존의 노트북 기반 학습에서 점차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가 무한한 자료와 정보를 가져다주는 반면, 교육자들은 이것이 오히려 집중력 파괴의 원인이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인트 폴 칼리지의 마크 베이커 교장은 “이러한 문제는 이제 정점에 접어들었으며, 학생들은 (노트북사용이) 학습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교류를 위한 디지털 기기 사용에만 능숙해졌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옵터스사의 ‘Digital Thumbprint’ 프로그램이 1천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가 소셜 미디어 상에서 자신의 삶과 성취도를 다른 이들과 맹목적으로 비교한다는 응답이었다.
14살 이하의 세 아이를 가진 카트리나 챔버스(Katrina Chambers)씨는 “일상생활 중 잠시라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자 제품의 전원을 끄라고 지시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온라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말로 초조해하고 심지어 불안해하기까지 한다”는 그녀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외출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 다음날 아이들이 놓친 모든 것들로 가득 찬 ‘Snapchat’(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어플리케이션)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베이커 교장은 학교에서 교육이 균형을 잡기 위한 첫 관문으로 노트북 의존 수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교육분야 전문가들도 “만약 학생들이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열심히 생각해야만 한다”는 OECD 교육부문 쉴레이커 이사의 지적에 동감을 표하고 있다.
강세영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