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태 이후 공립병원의 환자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개인의료보험을 통해 병원 보장을 받으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는 전염병 대유행 기간 동안 회원 수가 급증, 지난 5년 전의 감소세에서 완전히 역전됐다. 사진 : Pixabay / fernandozhiminaicela
APRA 데이터... 9월 분기 현재 병원보험 가입 45%, 일반보험 비율 55% 달해
팬데믹 사태로 드러난 공공 의료 시스템 압박, 길어진 수술대기 명단 등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듯 높은 생활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개인건강보험(private health insurance)에 가입하는 호주인이 늘고 있다.
호주 금융감독기관인 ‘Australian Prudential Regulatory Authority’(APRA)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 예산에 부담이 가해지는 상황에서도 개인보험 가입회원 수는 13분기 연속 증가했다.
올 9월 분기를 기준으로 호주인의 45%가 병원진료 보험(hospital insurance)에, 55%는 치과-안과-물리치료 등 일반보험에 가입된 상태로, 이는 5년여 만에 가장 높은 회원 비율이다.
개인보험 업계 최고 단체인 ‘Private Health Australia’의 레이첼 데이빗(Rachel David) 최고경영자는 COVID 전염병 대유행 기간 동안 개인보험 가입자 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면서 그 이전의 감소세는 완전히 역전됐다고 말했다. “이전의 높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이 같은 성장 궤적을 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최근 몇 년 사이, 개인보험 가입자가 늘어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단체가 의뢰한 업계 연구에 따르면 공공보건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가입자 수 증가를 주도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팬데믹 사태로 선택적 수술은 엄청난 대기자를 만들었으며, 전염병 사태가 완화되면서 대기시간이 단축되기는 했지만 회복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NSW 및 빅토리아(Victoria) 주 공공병원 시스템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대기자가 명단에 남아 있다.
지난 5년 사이 개인의료보험 가입자 및 병원 보장을 받은 이들의 수 및 비율을 보여주는 그래프. Source: APRA
데이빗 CEO는 “공립병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필요시 최상의 진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다”며 “(개인보험 회원 증가는) 선택적 수술 대기자 증가, 응급차량 이용의 어려움, 그 결과 열악해진 응급 진료로 인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임산부 돌봄처럼 수요가 탄력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에서도 개인보험 가입은 강세를 보이는데, 이는 높은 비용으로 한때는 인기가 하락했었지만 이제는 가입자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인 자녀를 대신해 보험에 가입하는 부모(지난해 30세 미만 연령도 ‘가족 패키지’에 추가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새 규정에 따라)도 개인보험 성장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올 9월까지 지난 12개월 동안 개인보험을 통해 병원 이용이 가장 급증한 계층은 20-29세 연령층으로, 이 그룹의 보험가입자는 5.4%가 증가했다.
데이빗 CEO는 개입보험 회원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 두 가지 인구통계학적 요인으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는 직장 여성의 더 높아진 소득,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숙련 이민자 유입을 꼽았다.
보험사 ‘Medibank’의 데이빗 코츠카(David Koczkar) 최고경영자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생활비 위기가 고객(자사 회원)의 문제이지만 이들은 개인의료보험을 계속 갖기 위해 다른 영역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계속해 자신의 건강과 웰빙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공공의료 시스템의 계속된 과제는 개인보험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면서 “고객은 건강 보장을 중단하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외식, 휴가 등 선택적 지출 영역을 줄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험사 ‘nib’의 마크 피츠본(Mark Fitzgibbon) 대표도 지난 8월 자사의 연간 실적 발표 이후 유사한 논평을 한 바 있다. “공공의료 시스템 악화로 개인의료보험 참여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지난 5년 사이 개인의료보험 가입자 및 일반 치료(치과, 안과, 물리치료 등)를 받은 이들의 수 및 비율을 보여주는 그래프. Source: APRA
다국적 투자은행 ‘Morgan Stanley’의 션 라만(Sean Laaman) 분석가는 “호주의 경우 개인의료보험 가입자는 기록적인 수를 보이며 1,200만 명 이상이 개인보험을 통해 보장을 받았다”면서 “개인보험 회원 자격은 오래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호주인들에게 건강 자문을 제공하는 호주 최고의 민간 의료자문 단체 ‘Consumers Health Forum’의 엘리자베스 데보니(Elizabeth Deveny) 박사는 “공립병원의 많은 선택적 수술 대기자 명단이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보험 보장을 유지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개인의료보험은 결코 저렴하지 않으며 생활비 위기로 보험료가 인하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녀는 “사람들이 개인병원과 공립병원 시스템을 오가는 가운데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의 연속성을 잃을 우려가 있으며, 이런 추세가 의료 분야의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데보니 박사는 “어찌됐든 사람들은 호주에 훌륭한 공공의료 시스템이 있고 개인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특히 응급상황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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