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책은 늙을수록 소중한 친구

(올랜도) 송석춘 = 아들 딸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대다수 한국사람들이 책 구입비와 책 읽는 시간을 아낀다는 것이다. 미국땅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책을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나는 만 20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책을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산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블루칼라 직업을 가졌던 나는 굳이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군상들을 대하면서 삶의 용기를 얻으려고 책을 대했다.

열심히 육체 노동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도움이 되는 책을 잘 선택해야 책이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너무 다른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져서 책을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내가 조금 젊었을 때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멀리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 날이 많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일손을 놓은 지 10여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스님의 글을 탐독하고 있다.

미국땅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일에 있어서 얼마나 냉정한 사람들인가 느꼈을 것이다. 대신 상사에게 조금도 아부나 아첨할 필요가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 미국 사회이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굽히고 살면 그의 이민생활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삶은 항시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일찍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모았고 많이 읽었다.

‘책을 읽어야 나도 살고 국가도 산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거창한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부자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가난한 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이런 저런 책들을 통해 조금 알고 살면 삶을 안정시키는데 도움 된다.

나는 오늘 어느 나이 많으신 분에게 책을 가져다 드리고 다 읽으신 책을 회수해 왔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들이 다른 분들에게 부담없이 읽혀지는 것이 좋을 뿐이다.

책 배달로 조금 먼 길을 운전해야 하지만 할멈도 좋은 일 한다며 말리지 않는다. 더 많은 노인들이 책을 즐겨 읽고 많이 읽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땅에 사는 동포들은 각자 이민의 이유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 3대를 내다보고 뿌리를 내리라고 했는데, 이민 1세대는 조급하지 말고 여유롭게 책을 읽는 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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