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 예술품 박람회 중 하나인 올해 ‘Melbourne Art Festival’에서는 이전보다 많은 작품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호주 예술품 시장이 경기침체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었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올해 MAF 관람객과 갤러리스트들. 사진 : Melbourne Art Fair
미술품 거래 총액 1천440만 달러, 2022년 아트페어 대비 매출 37% 증가했지만...
기존 수집가들의 예술품 투자 ‘변화’ 감지... 소규모 갤러리들, 매출 하락으로 고전
‘멜번 아트페어’(Melbourne Art Fair. MAF)는 30년 넘게 호주 문화 칼렌다의 주요 행사 중 하나로 표시되어 왔다. 이 연례 이벤트는 현대미술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플랫폼을 마련하여 호주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홍보하며, 각 지역 저명한 갤러리 소속 예술가들의 상징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예술품 박람회라 할 수 있다.
올해 MAF가 지난 2월 22일 ‘Melbourne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개막해 4일간 진행됐다. 지난해의 치솟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 상승으로 호주의 대다수 가구가 심한 재정 압박에 놓인 상황이지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호주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중 하나인 올해 MAF에서 경제상황 또는 경기침체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는 호주 미술시장이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올해에도 MAF에서는 고전적인 구상 작품에서 금으로 장식된 도자기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수천 달러에서 10만 달러 이상에 이르는 작가들의 예술품이 판매됐다.
MAF 측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2022년 행사에 비해 올해 매출은 37%가 증가한 1,440만 달러를 기록했다. MAF의 마리 디 파스콸레(Maree Di Pasquale) 감독은 “전시작품 모두 판매된 쇼케이스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MAF의 이 같은 성과에 대해 갤러리스트 우슐라 설리번(Ursula Sullivan)씨에 따르면 고급 현대 예술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은 경제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계층이다. 인플레이션 상승이나 높은 이자율로 재정적 타격을 받는 이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다른 갤러리스트 소티리스 소티리우(Sotiris Sotiriou)씨는 국내 바이어뿐 아니라 해외 수집가들로부터 꾸준한 수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해 멜번 최대 카지노인 ‘Crown Melbourne’의 화려한 불빛(불황을 모르는)을 제외하면 호주 미술시장이 이전처럼 지속적으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는 게 다수 관계자들의 말이다.
사실, 작은 규모의 갤러리에서는 미술품 거래가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고가의 예술품 판매자들조차도 미술 시장의 ‘불안’, 그리고 ‘보다 보수적 구매 습관으로의 회귀’(미술품 구입에 더욱 신중해진)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호주 미술품 판매
시장조사-분석회사 ‘IBISWorld’의 앤드류 레도프스키크(Andrew Ledovskikh) 애널리스트는 “팬데믹 사태 첫 해에는 예기치 않게 미술품 판매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전염병 대유행의 제한조치 상황에서 재정을 비축한 중산층 소비자들이 5,000달러에서 2만 달러 범위의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을 보았다”는 그는 “많은 이들이 온라인 경매를 통해 입찰, 구매했다”고 덧붙였다.
호주 교외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하워드 아클리(Howard Arkley) 작가의 작품 판매를 대행하는 갤러리스트 칼리 롤프(Kalli Rolfe)씨는 올해 MAF에서 고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미술품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150만 달러로 추정된다. 사진 : ABC 뉴스
이어 그는 ‘Beeple’로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의 NFT art가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화 6,900만 달러(호주화 약 1억 달러)에 거래됐던 것을 언급하면서 중산층이 접근할 수 있었던, 블록체인과 연결된 NFT(Non-Fungible Token) 열풍이 이번 10년(2020년대)의 초기, 전 세계 미술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 5월 이전까지 장기간 이어진 사상 최저의 기준금리는 부유층에게 고가의 예술품 구매를 장려했다. 주로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플랫폼으로, 투자자가 제조사나 증권발행사 자체가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주식이나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서 호주 원주민 미술품을 거래하는 딜란 데이빗슨(D'Lan Davidson)씨는 은행에 자금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한 스위스 고객이 있었던 것을 회상하면서 “이자율이 마이너스로 하락했을 당시, 그는 은행에서 거액을 인출해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도프스키크 분석가는 2022년경 인플레이션 수치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상위 부유층은 소유한 자금의 구매력에 대비해 ‘inflation hedge’(화폐구매력이 감소하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투자)로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높은 인플레이션)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국채보다는 예술품에 투자하도록 장려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술품 시장은
그렇다면 현재 호주 미술품 시장은 어떠할까. 올해 MAF에서 예술품 판매가 호조를 보였지만 작은 규모의 갤러리 관계자들은 구매자 열정이 식었음을 체험하고 있다.
갤러리스트 칼리 롤프(Kalli Rolfe)씨는 고인이 된 호주 작가 하워드 아클리(Howard Arkley)씨의 작품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아클리씨는 매우 다채로운 교외지역(suburb)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작가였다.
롤프씨는 올해 MAF에서 아클리 작가의 마지막 캔버스로 추정되는 한 작품을 공개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족이 25년 동안 창고에 보관했다가 MAF를 앞두고 포장을 뜯어낸 것이었다.
지난 8년 사이 호주 작가 및 원주민 작가의 예술품이 경매를 통해 거래된 매출. 단위 : 100만 달러. Source: The Australian Art Sales Digest
롤프씨는 “그 작품을 보는 순간, 이는 대중들에게 소개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작품에 압도당했고 개인적으로 매우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작품도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또한 그녀가 보기에, 이 작품은 아클리 작가가 견지해 온 교외 풍경의 절정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탄과 달리 지난 2월 25일 MAF가 막을 내릴 때까지 이 작품은 판매되지 않았다. 현재 롤프씨는 이 작품에 흥미를 느낀 일부 예비 구매자들과 150만 달러 판매를 놓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내가 대표하는 미술품은 호주 예술품 시장의 상위에 있는 작품들”이라며 “때문에 쉽게 구매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갤러리스트 우슐라 설리번씨는 고가의 작품 매매가 낙관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구매자의) 망설임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제 사람들은 안전하게 자금을 투자하고 싶어 한다”는 그는 “실적이 있는(투자 가치가 입증된 작품) 작가를 사고자 한다”고 말했다.
호주의 미술품 판매 추세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상황은 경매 보고서에서 나온다. 이 시장은 현재 갤러리들이 주도하는 1차 미술시장(primary art market)에서 신작을 판매하는 것보다 2차 시장(secondary market)에서 작품을 재판매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경매를 통한 판매는 전체 미술품 시장의 20%만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업계 일부에서는 이 부문이 실제로 구매 추세를 반영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 및 뉴질랜드 미술 시장 데이터를 제공하는 ‘Australian Art Sales Digest’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3년) 예술품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 총액은 1억4,000만 달러 이상으로, 2022년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또한 2017년 이후 가장 강력한 결과 중 하나였다.
이는 견고한 수치이지만 IBISWorld의 레도노프스키크 분석가는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중산층 가계 재정에도 타격을 주면서 지난해 경매 데이터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경매사들이 압박을 느꼈다고 토로하는 지점은 시장 하단에 있다. 또한 이 데이터를 보면 가장 많이 거래되는 아티스트는 브레트 위틀리(Brett Whiteley), 시드니 놀란(Sidney Nolan) 작가로, 이들 모두 작고한 호주 예술계의 상징적인 작가들이다.
경매에서의 작품판매 실적 상위 10위 안에는 한 명의 여성 작가, 한 면의 원주민 작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원주민 작가가 에밀리 캄 크누와레이(Emily Kam Kngwarray)씨이다.
2023년도 호주에서 판매된 상위 10명의 미술작가 및 판매액. 단위 100만 달러. Source: The Australian Art Sales Digest
원주민 작품을 거래하는 갤러리스트 딜란 데이빗슨씨는, 노던 테러토리(Northern Territory) 중부의 작은 원주민 공동체 ‘Utopia’ 출신으로 1999년 고인이 된 이 작가의 작품도 맡고 있다. 그에 따르면 캄 크누와레이씨의 미술은 뒤늦게 인정받았으며 현재 작품가격이 오르고 있다.
데이빗슨씨는 자신의 미술품 거래에 대해 “우리는 2차 시장에서 큰 성장을 이루었다”며 “특히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지난해(2023년)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보다 내년에는 이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작은 규모의 갤러리가 느끼는
현재의 예술품 시장
올해 미술품 시장은 (현재까지는) 전년도에 비해 다소 활기를 띠는 편이다. 이번 MAF에서는 소규모 갤러리들도 많은 작품 판매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멜번을 기반으로, 지역 예술가 마틸다 데이비스(Matilda Davis)씨의 하이퍼 컬러 유화 작품을 판매하는 ‘Futures’도 그 중 하나이다.
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자라 시글코우(Zara Sigglekow)씨는 “작년 초반은 상당히 어려웠다”며 “지난해 하반기로 오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MAF가 샴페인을 터뜨린 것과는 달리,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예술품을 다루는 소규모 갤러리들은 여전히 경기침체를 크게 느끼고 있다. 멜번 소재 ‘Outre Gallery’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이 갤러리의 마틴 매킨토시(Martin McIntosh) 대표는 “예술품 수집가들은 여전히 구매를 이어가고 있지만 1년여 전에 비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올해 MAF에 선보인 Matilda Davis씨의 ‘Cosmic latte’. 그녀의 작품 판매를 담당하는 ‘Futures gallery’는 아트페어에서 선보인 대부분 작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Futures gallery
많은 갤러리스트들은 미술품 판매 동향이 딜러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또 작업실 임대료를 감당하고자 소소한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판매하는 수많은 예술가들과도 관련이 있다.
‘Backwoods gallery’를 운영하는 톰 그로브스(Tom Groves) 대표는 “지난 12개월 동안 갤러리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수집가들의 구입 작품 가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예술품 구매를 이어오던 수집가들이 고가의 작품보다는 중저가 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또한 이런 예술품이 정기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품 투자자가 되고자 하는 중견 규모의 갤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주는 한 금융회사는 지난해 예술품 시장이 침체됐다는 것에 동의했다. ‘Art Money’ 사의 폴 베커(Paul Becker)씨는 “현재 ‘최고’ 반열에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항상 예외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뒤 “시장은 바닥을 쳤고 올해는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예술품 매매는 점차 강력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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