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는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몰락
가히 '공영방송 잔혹사'로 기록될 날이다. 5월 9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말 한 번의 실수(?)로 사임하고, 사임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 눈치만 본 길영환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김 전 국장의 발언은 그의 해명대로 왜곡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는 가족들과 국민들의 KBS를 향한 분노는 단순히 발언의 진위 여부에 있지 않다.
4월 16일 사고 발생 당일부터 24일간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가 보인 보도 행위의 맥락, 그리고 대한민국 언론을 향한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KBS에 대한 분노는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오죽하면 젊은 기자들이 '반성문'을 작성하면서 회사 차원의 자성을 촉구했겠는가. 38, 39, 40기 기자들은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토론) 결과물을 9시 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한다. 침몰하는 KBS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KBS를 비난하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KBS에 질문을 던지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비난과 질문의 내용은 한결같다. 뭐했느냐고. 세월호 침몰을 두고 재난방송 KBS가 한 게 무엇이냐고.
그런데 반응이 가관이다. KBS 간부들은 '사원증에 잉크도 안 마른 것들'이라며 막내 기자들을 비난했다.
KBS 보도국장은 자신의 망언을 두고 "진실이 오도됐다"고 밝힌 뒤 사임했다. 사임하면서 보도국장은 "KBS 사장이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폭로했다.
조직 내 구성원들의 반성문을 두고 '철없는 것들'이라고 재단해 버리고, 현재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폭로당하는 있는 공영방송에게 과연 시청료 인상을 요구할 용기가 감히 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시청료는 2500원이다. 이를 400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이 지난 2월28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후 국회로 넘겨졌다. 지난 8일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소집한 국회 미래방송과학통신위원회는 KBS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했다.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침울하고 비통한 가운데 여권이 단독으로 상정한 것을 두고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을 통해 드러난 KBS의 자세는 그야말로 참담하다. 오죽했으면 심적·육체적으로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유족들이 KBS를 직접 찾았을까. 항의방문 했을 때 당사자인 보도국장과 사장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모습에서 국민보다 권력의 눈치만 보는 KBS의 현재를 그대로 느끼고 있다.
다시 KBS에 공영방송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있기는 한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영방송의 의미를 보면 "공공 기업체나 공공 기관에서 운영하는 방송"으로 풀이한다. 이어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시청료 등을 주된 재원으로 하며 오직 공공의 복지를 위한 방송"이라고 결론 내린다.
'오직 공공의 복지'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방송의 시작과 끝을 '국민'에 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KBS는 이런 기본 정의조차 모르고 있다.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풍긴다.
정치권에는 KBS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KBS 출신 국회의원은 물론 박근혜정부의 대변인도 KBS 출신이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대변인으로 갔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오직 공공의 복지'만을 향해 달려가야 할 KBS가 '오직 권력을 향해' 손 벌리는 모습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들끓는 여론조차 외면하고 '몇몇 불순 세력'에 의한 왜곡된 생각이라고 판단한다면 더 이상 KBS의 미래는 없다. KBS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수신료 인상, 공정 방송의 시작입니다"라는 문구를 내보내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와 인상을 생각하기 이전에 지금 KBS가 어디에 서 있는지, 먼저 치열하게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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