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아이(Mom & I)’에서 메일이 왔다. 뉴욕교포를 상대로 뉴저지에서 발행하는 월간 패밀리 잡지다.
“원고 감사합니다. 원고료를 보내드리고져 하오니 성함과 주소를 알려주세요.”
“교포상대라서 적자운영일텐데 웬 원고료입니까?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정중히 사양메일을 보냈는데 막무가내로 되돌아온 답장.
“저희 잡지사의 규정입니다. 받으셔야합니다.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헤이즐넛 커피에 보스턴 크림을 맘껏 즐기실수 있을거예요.”
주소를 적어 보냈더니 며칠후 ‘맘앤아이’ 4월호가 왔다. 시가 있는 사진첩같은 고급월간지였다. 광고도안이 아름다워 문안까지 읽게 한다. 전에는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요즘은 광고가 나오면 더 달려든다. 광고야말로 최고의 작품이 됐기 때문이다. ‘맘앤아이’가 그렇다. 예쁜 월간 ‘맘앤아이’ 책 갈피속에 체크가 들어있었다. 문필생활 28년만에 처음 받아보는 원고료.
‘나도 이제 원고료를 받는 작가가 됐구나!’
60불짜리 체크가 들어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생때도 원고료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처음이다. 아름다운 원고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쓸까?’
교회 가는 날, 주보에 끼어있는 헌금봉투에 60불을 넣었다. 아내가 물었다.
“당신, 원고료 전액을 몽땅 하나님께 바치려고 그래요?”
“아니야. 헌금봉투가 작고 예뻐서 60불을 넣기에 알맞아서 그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보다 더 아름답게 써야지.”
수요일이 오자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비키에게 갔다. 수요일마다 테라피를 받는 유명한 맛사지미녀 비키말이다. 미녀에게 봉투를 주려는게 아니다. 맛사지를 끝내고 옆에 있는 20가 던킨집으로 갔다. 거지에게 1불을 꺼내줬더니 할렐루야다.
“갓 불래스 할렐루야!”
“해이즐넛 레귤러 스몰커피 한잔에 스몰 도너츠볼 2개를 주세요”
도너츠아가씨가 의아해한다. 올적마다 보스턴크림 도너츠를 주문하던 내가 참새알만한 스몰도너츠 2개로 바꿨기 때문이다. 보스턴크림은 1불50전. 참새알은 2개에 50전. 참새알 2개에 해질너트커피를 마시면 3불이 2불로 내려간다. 아름다운 원고료로 더오래 커피를 즐기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대신 놀부처럼 혼자 마셔야한다.
지난주일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둘째 딸 은범이가 교회성가대원이 됐기 때문이다. 15명의 찬양대에 끼어 “Sing A Joyful Song"을 합창했다. 딸은 Joyful Song을 즐겁게 노래하는데 애비는 바보처럼 울고 있었다. 둘째 딸 은범이가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오던 우울증(憂鬱症)을 털어버리고 3년 만에 무대(?)에 오른 것이다. 3년이 이민 30년만큼 힘들었다. 그 애는 모든 걸 싫어했다. 직장도 사랑도 사는것도...교회는 더 싫어했다. 날마다 지옥이요 죽고 싶다는게 노래였다. 그러다 드디어 출애급(出埃及)에 성공하여 성가대에 합류한것이다. 미국교회목사님은 특별광고를 하고 교인들은 달려들어 축복해줬다. 딸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아빠, 창세기와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어요. Daily bread를 묵상하면서요.”
‘새롭고 멋진 성경을 사줘야지. 하나님, 은범이에게 사줄 성경책 값을 보내주세요.’
부부일신(夫婦一身)이지만 난 아내보다 하나님에게 용돈을 달라는게 더 편하다.
2시간후 후에 전화가 왔다.
“등촌, 뉴저지의 장산입니다. 보고 싶으니 내일 후러싱 금강산으로 나오세요”
장산은 20년전 아스토리아의 오토샵에서 처음 만났다. 원두밭에서 참외를 따는 시골타입이라서 고향형제를 만난듯 반가웠다. 맨해튼에서 “아주래”라는 델리그로서리를 하고 있단다. 깡통가게(그로서리)로 알고 찾아가 보니 매일 4-5천명이 드나드는 대형델리식당이었다. 그는 교포제일의 재력가였다. 자녀들은 최고분야에 올라있다. 부부가 60대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10년 넘게 풀코스를 달린 인생마라토너다. 외국어대학에 발전기금으로 15만불을 내놓기도한 멋쟁이신사다.
그런데 이런 장산이 나만 만나면 시골 촌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함께 베어마운틴 새벽등산을 오르기도 했다. 어린애들처럼 맨해튼의 빌딩그림자를 찾아다니면서 숨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사는 돌섬의 시영아파트를 고향시골집처럼 좋아했다.
장산(이상철)내외가 후러싱식당 금강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20년이 넘었지요. 등촌이 우리들 관계를 글로 써서 발표하다 보니 우리의 지난날들이 작품처럼 아름다웠어요. 손님들이 신문에 난 등촌의 글 ‘아주래를 아시나요?’ 을 읽고 찾아와 ‘여기가 아주래입니까? 신문에 난 글을 읽고 찾아왔습니다’ 할때는 우리가 작품의 주인공이 된것처럼 행복했어요.“
장산은 학예회에서 주연을 한 소년처럼 즐거워했다. 부인 유옥림여사도 회상했다. “한번은 식당으로 손님이 찾아와 ‘아주래옆에 유명한 공원이 있다는데 어딥니까?’ 하는 거예요. 이목사님이 쓴 ‘200평짜리 공원’을 읽고 왔답니다”
장산은 1200불을 내놨다. 속이 울컥했다.
‘장산이 또 아름다운 원고료를 내놓는구나!’
원고료는 한번 받는다. 그러나 장산은 성탄절이나 새해가 될 때마다, 만날적마다 원고료를 낸다. 그것도 아주 비싼 일류작가에 준하는 원고료를.
난 미국 이민 28년동안 1000편의 칼럼을 썼다. 라디오 TV에 나가고 여러권의 책을 펴냈다. 그러나 한번도 원고료를 받은적이 없다. (편집책임을 저야하는 자서전 말고는). 출판회를 세 번 했지만 회비가 없었다. 난 작가가 아니라 독자투고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저자는’이 아니라 ‘나는’이다.
그래도 손해를 본적이 없다. 장산형처럼 아름다운 원고료를 보내주는 손길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호를 몰래 불러본다. 長山 一空 如山 山雨 貞林 冬草....
글=이계선 '뉴스로' 칼럼니스트
*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목회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하고 있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에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원고료를 보내준 '맘앤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