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말의 폭염, 파미르 만년설을 녹이다. 



  ‘하록’마을은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처럼 좌우 산꼭대기에 빨래줄을 걸면 걸릴 정도로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그러나 주변경관은 스위스의 산골 마을을 연상시킬 만큼 예뻤다. 특히, 여행정보센터 앞은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과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있어서 마치 알프스의 한 마을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시간은 여행객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여행정보를 나눌 수 있는 만남과 대화가 있었다. 난 독일에서 온 노부부와 파미르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나도 백발이 성성해져서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파미르에는 이 노부부처럼 렌터카를 타고 온 경우도 있었지만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하이웨이를 여행할려는 이들이 많았다. 

  하록 마을의 파미르 여행정보센터는 바로 이들의 천국이었다. 난 아침 식사후 여행정보를 다시 한번 체크할 겸 센터를 방문했다. 영어를 무척 잘 하는 여직원이 친절히 맞아주었다.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해 상세히 안내를 해주었을 뿐 아니라 파미르 지도가지 선물로 주었다. 

  지도를 손에 쥐고 센터 문을 나서자 정보센터 마당에는 전날 길에서 만난 적인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파미르를 여행중인 독일인 예비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정보센터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무사이로 자세히 보니까 텐트가 한 동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로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은 이렇게 숙식을 해결하며 파미르를 여행한다고 했다. 

  드디어, 나는 하록마을 떠나 파미르 하이웨이를 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30분 을 못달렸을 때였다. 

  군대와 경찰 그리고 각종 중장비가 눈에 띄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사고가 난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가 보았다. 

  세상에.....

  파미르 하이웨이가 산사태로 인해 유실되어 뚝 끊어져 있는 게 아닌가! 

  도로복구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현지인이 길이 유실되어 위험하니까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의 폭염으로 파미르고원을 이루는 루시온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서 산사태가 났다고 했다. 이로 인해 도로유실은 물론이고 한 마을 전체가 흙더미에 묻혔고 그 흙더미로 강줄기가 막혀 그 상류가 호수로 변해버림으로써 윗 마을까지 물에 잠기는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다고 했지만 난 그 현장을 보고 싶어 그 작업반장과 함께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 곳은 한국의 국제뉴스에도 보도된  파미르 산사태의 현장이었다. 

  난 인공적인 절개면처럼 뚝 잘린 도로의 끝까지 갔다가  곧 군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 잠시 뒤 곧 도로복구를 위해 절벽을 깨는 폭발이 있으니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다이너마이트를 연결한 선을 뒤쪽으로 늘어뜨리고 있는 앳된 얼굴을 한 타직 군인과 군생활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는 나의 군생활 얘기를 듣더니 무척 놀라워했다. 자신들만이 파미르 오지에서 근무하며 고생하는 줄 로만 알았나 보다. 

   드디어 ‘꽝’하는 폭발음이 들리면 바위들이 강물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이러기를 두차례…  강물속으로 무수히 많은 바위덩어리를 넣어지만 불어난 강물은 성난 파도와 같이 바위덩어리를 집어 삼켜 버렸다.  현지인들은 폭염이 물러가고 강물의 수위가 내려가야지만 정상적인 복구작업이 가능할 것같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폭파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폭파가 끝나자 산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호기심에 따라 가보았다. 그들은 다음 폭약을 설치할 때까지 약 한시간동안 절벽에 난 폭 50센티도 안되는 길을 따라 밀가루와 홍차 등 생필품을 강 상류 마을로 옮겨갈 요량이었다. 

  어떤 이들은 양복을 잘 차려 입고 '하록'이나 두산베로 볼 일이 있어 나갈려는 사람같아 보였다. 

  그 장면은 마치 인간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산사태라는 재앙을 내린 신에 대해해 산비탈을 깍아서  다시 길을 만들어 냄으로써 신에게 저항하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가파른 비탈길을 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그 어떤 척박한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덩어리처럼 보였다. 난  절벽 저편에 물살이 약한 지점에 마련된 고무보트를 타고 가 끊어진 파미르 하이웨이를 거슬러 올라가 물에 잠긴 마을을 둘러보고  저녁 7시에 마지막 보트가 타고 다시  돌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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