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오늘의 삶’이 소중한 이유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오늘은 내일이면 어제가 되고, 내일은 또 오늘이 되고 어제가 된다. 지나간 시간들을 아쉬워 하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오늘의 삶’을 극구 강조하는 지인이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정말 기막힌 사연을 한번 들어 보겠느냐"며 얘기를 시작했다.

30년 동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서 돈이 필요하다며 자기 집을 팔아 일주일 후에 클로징을 하면 돌려주겠으니 며칠만 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족처럼 지냈던 오랜 친구라서 전혀 의심치 않고 평소 세탁소에서 옷 수선을 하면서 조금씩 모아 두었던 노후 자금을 전부 빌려주었다.

클로징 날짜가 되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더 이상 서비스 하지 않는 번호라는 날벼락 같은 메시지가 들려왔다. 어제도 통화했는데 그럴리가 없었다. 귀를 의심하고 몇 번을 걸었으나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친구 집을 찾아갔지만 여자는 이미 잠적해 버린 후였다.

돈이 없어진 것, 믿었던 친구가 철저히 배신한 것, 멍청하게 당한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삶은 엉망이 되었다. 어떻게 그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머릿속은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처럼 처참했다. 곰씹고 또 씹어도 숨막히는 분노와 허탈감이 좀처럼 삭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져 버렸다.

두문불출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의 세월이 지나자 몸은 쇠잔해지고 허탈감은 풍선처럼 터질듯 더욱 부풀어갔다. 편안한 노후를 꿈꾸며 그런대로 잘 살아오던 한 인생이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한술씩 뜨던 식음도 전폐했다. 그러던 중 자꾸만 잠이와서 며칠을 죽은 듯 잠을 잤는 데 어떤 꿈을 꾸었단다.

멀리 강 건너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고 갈 기운이 없다며 손사레를 치면 또 건너 오라고 소리를 쳤다. 계속 손사레를 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혼미한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방이었다. 그리고 며칠째 연락이 없는 자신을 염려한 한 친구가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을 알게 됐다.

순간 그는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것을 알았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날 그는 자신을 학대했던 이전의 삶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뒤져 반찬을 만들어 몇 달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 단체에서 일하는 분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그는 더 이상 아픈 과거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매일 아침을 설렘으로 맞았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 마치 하얀 도화지와 같고 하루의 행복을 그 속에 그려가는 기쁨을 느낀다며 과거의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보면 뭐니 뭐니 해도 부유함을 꼽을 것이다. 정말 돈은 좋다. 돈은 사람을 정말 폼나게 살게 해준다. 좋은 차, 좋은 집, 멋진 옷, 미식, 휴가, 여행 등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것들은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떤이는 명예를 꼽을 것이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분명 귀한 것이다.

그러나 부유함은 그것을 누리는 객체가 있을 때 의미있다. 명예도 마찬가지이다. 설사 묘비에 쓰여질 만한 명예라도 세월이 가면 비바람에 깎여나가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자신이 이 땅에 없고서야 부와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현재 우리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이 땅에서 값진 것이다.

어떤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돈을 열심히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망치고, 망친 몸을 회복하려고 번 돈을 다 소비합니다"

‘장사도 안되고, 몸은 아프고, 자식들은 속 썩이고, 빚에 눌려 있는데 어떻게 내 삶을 귀히 여긴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도무지 웃을 일 조차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삶의 진면목이다. 이것을 수렁으로 만드냐 아니면 딛고 일어서는냐는 결국 자신이 결정하게 된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따라 낙담 혹은 희망을 안게 된다.

나의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사고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을 방치하는 때가 더 많다. 어린 시절은 철없이 지나고, 청년 시절은 꿈을 꾸기 바쁘고, 무엇인가 조금 알 것 같은 장년 시절은 일만 하다가 지나가 버린다.

그러다 문득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낯설 때가 있다. 풍성하던 머리숱은 사막에서 근근히 자생하는 식물처럼 등성듬성해서 빚으로 빗어 내릴 것도 없다. 팽팽했던 얼굴에는 그랜드캐년 협곡처럼 굵고 가는 주름들이 들어앉아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실망하지 말자. 무슨 일을 당해도 현재의 고단한 상황을 딛고 일어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주어진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귀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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