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미얀마 축구는 2013년 10월 FIFA 랭킹 162위의 약팀이다.
하지만 미얀마축구가 처음부터 약팀이었던 것은 아니다. 미얀마 축구대표팀은 1960년대부터 1970년 까지 아시아 축구강자였다. 1968년 제4회 아시안컵에서 준우승, 1966년과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두 차례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AFC U-19 대회에서 총 7번 우승한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었지만 정치적, 경제적 불안감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추락하였다. 그러나 축구열기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미얀마 국내 리그에서 만원관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식당에 가면 어렵지 않게 축구방송을 시청하는 미얀마사람들을 볼 수 있다. 미얀마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웬만한 식당은 축구경기를 시청하려는 사람들로 만석이고, TV가 있는 어느 곳이든 미얀마 대표팀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요란스럽다. 그리고 이 열기의 중심에는 미얀마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성화 감독이 있다. 사실 박성화감독이 선수생활을 하던 1970년대에는 대한민국 축구보다 미얀마 축구가 한 수 위였다.
당시 국내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드 였던 박성화 선수가 아시아 축구강자였던 미얀마대표팀 감독이 된 박성화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어떻게 미얀마 대표팀을 맡게 되었나
박성화 감독 : 김해용 대사님이 처음 부임 받을 때 미얀마 대통령께 인사차 갔다가 얘기가 나왔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미얀마 대통령이 미얀마 축구를 위해 감독을 추천을 해달라고 첫만남에서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그 자리에서 나를 추천하여 오게 되었다. 처음에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관심이 많았다. 사실 다른 해외 여러 팀에서의 제안은 관심이 밖이었지만 미얀마대표팀은 특별했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축구 시작할 때 미얀마가 대단했었고, 당시 한국 대표팀도 사상 최고였던 멤버였었고, 당시 미얀마 축구를 보면서 선수생활을 했었으니깐. 지금 미얀마 축구는 세계에서도 최하위권에 있는데, 과거에는 강자였던 팀이라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지도는 프로팀도 지도해보고 올림픽대표, 청소년대표, 고등학교도 지도해봤는데, 지도자로서 성적이 좋을 때도 행복하고 보람이 있지만 약한팀을 강하게 만든다던지 어린아이를 지도한다던지 그럴 때 더 큰 보람이 온다. 청소년들을 가르친 보람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나중에 커가는 모습을 보면 항상 관심 가게 된다. 우승 했을 때 기쁨은 그 잠깐 순간이지만 가장 큰 보람은 약한팀(선수)을 강하게 만드는데 있다. 미얀마는 잠재력과 가능성은 많은데 여러가지 사정으로(정치,경제) 바닥권으로 내려와있으니, 미얀마 팀을 맡아 옛날의 축구강자를 만들어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선수와 달리 미얀마선수를 가르치는 것이 많이 다를 텐데
다르다. 선수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한다. 미얀마가 아시아를 제패를 하고 난 후에 40년이 침체가 되었다. 40년동안에는 거의 중간에 국제무대에 등장도 못했다. 미얀마에 와서 선수들을 보니깐 초등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었다. 40년동안 침체 되어 있다 보니 40년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를 했기 때문에 기본기가 전혀 없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기 때문에 즐기면서 스스로 배워 선수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팀이 없다. 프로선수나 대표선수들은 대부분 늦게 발굴이 된다. 아주 기본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 지도하는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데 기초가 잡히지 않으면 발전에 제안이 있다. 혼자 즐기며 하던 습관 때문에 발전이 없었다. 변칙적인 것은 국내축구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땐 맥을 추지를 못한다.
현재까지의 성적은
큰 대회를 3번 했다. 첫 번째는 AFC 지역예선전인데 말레이시아, 베트남, 대만 등 모든 팀을 다 이기고 한국이 미얀마에 왔을 때 비겼다. 4승 1무로 한국과 동율인데 골득실에서 한국이 앞서 미얀마가 2위로 올라가있다. 말레이시아는 30년만에 처음 이겼고, 태국은 36년만에 처음 이겼다. 내년 1월에 치뤄질 파이널에 동남아국가중 유일하게 미얀마만 올라가 있다. 파이널에서도 한국과 똑 같은 조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스즈키컵 예선전에서는 1위를 통과를 했고, 본선 8개국대회에서는 성적이 좀 나쁘게 나왔다.
세 번째 첼린져컵에서는 예선전 1위를 했다. 본선은 내년 3월에 몰디브에서 있다.
선수생활 할 때 미얀마 팀과 경기해본 적은 있나
해봤다. 74년도 아시아 청소년 대회를 했다. 2-1로 이겼었다. 그때는 74년도였는데 미얀마가 73년도까지 잘했었다. 71,72,73년도에 미얀마가 우승을 했다. 미얀마가 74년도부터 침체되었기 때문에 내가 대표팀생활을 할 때에는 미얀마에게 한번도 져 본적이 없다. 운이 좋았다.(웃음)
언제까지 미얀마대표팀을 맡으시는지? (재계약 문제는)
금년 12월 Sea Game까지이다. 재계약문제는 미얀마 축구협회와 하는 것이 아니다. 포스코(대우인터내셔널)와 협의가 되어야 한다. 미얀마 경제사정으로 외국지도자가 올 수 가 없다. 모두 대우인터네셔널에서 지원을 한다. 그래서 더 소신껏 더 잘 하려고 한다.
포스코(대우인터내셔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3 Sea Game이 미얀마에서 열리는데 목표는
우승이다. 미얀마 국민들이 자존심이 아주 강하다. 특히 축구의 대한 자존심은 더 강하다. 동남아시아 11개국에서 7, 8위권에 있지만 시합 할 때는 국민들이 7,8위권으로 인정을 안 한다. 워낙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기 때문에 Sea Game에 미얀마 국민들의 사기가 달려있다. 나는 성적이 나쁘면 떠나면 그만이지만, 내가 국민들 사기를 꺾어 놓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 부담이 많이 되는 건 사실이다.
미얀마팀을 가르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
보르네이에서 초청 경기를 할 때다. 한참 시합을 하는데 양곤유나이티드 선수를 보내 달라는 거다. 내가 왜 보내냐 물어보니 자기팀 시합 해야 한다고 보내야 한단다. 아니 지금 예선전 다 이기고 준결승 올라와 있는데 자기팀 시합한다고 보내란다. 그래서 보냈다. 준결승 직전에 또 다른팀에서 보내라고 하더라. 국제시합 하고 있는데 선수 보내 달라는건 처음 겪었다.
응원하고 있는 교민 및 국민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
한국감독이기 때문에 성적에 따라 한국사람의 이미지가 달라질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서 한국이미지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만큼 더 열심히 지도하고 있으니, 미얀마축구대표팀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