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서쪽으로 190Km 떨어진 칼바도스 주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옹플뢰르. 지금은 작고 조용한 항구지만 한 때는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다.
15세기 백년전쟁 때는 요새화된 전쟁의 전초기지로, 그 후엔 신대륙을 찾아나서는 탐험가들의 전진기지였다. 지금은 그 모든 영화를 뒤로 한 채 한가로이 요트가 정박해 있고, 방문객들이 분주히 오가는 평화로운 항구도시가 되어 있다.
옹플뢰르는 해류의 영향으로 노르망디에서도 햇볕이 좋고 풍광이 아름다워 예나 지금이나 화가 음악가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인상파 화가 부댕과 종킨드의 집도 있고, 천재음악가로 꼽히는 에릭 사티의 생가도 있다.
옹플뢰르는 특히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한 도시였다. 거의 모든 인상파 화가들이 옹플뢰르를 화폭에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구만해도 모네를 비롯, 터너 코로 뒤피 드랭 쿠르베 등이 작품을 남겼다.
지극히 프랑스적인 예술혼이 가득 넘치는, 노르망디의 이 작은 항구도시에, 머나먼 동쪽나라 한국에서 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손차룡 화백이다.
10여년 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한국의 멋과 예술성을 곳곳에 퍼뜨리고 있는 그는 이미 이곳의 유명인사가 되어있다.
포구를 벗어나 아기자기한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안으로 들어서면 작가들의 아뜰리에와 갤러리가 즐비하다. 골목을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손차룡’ 이라는 본인의 이름을 내 건 파란색 페인트의 갤러리가 보인다.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알리고 싶어 하듯, 2층에는 작은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4층으로 된 큰 건물을 개조해 만든 1층 갤러리에는 손 화백의 화려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2층에는 사무실과 작업실, 3층 4층은 지인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방마다 테마와 색상, 인테리어를 다르게 하고, 부엌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놓아, 서 너 가족이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정성껏 만들어 놓았다.
평생 벗이 되어 그를 지켜 준 예술 혼
봄 햇살이 화사하게 들어오는 뒷켠 정원을 지나면 그의 작품들이 살아 숨쉬는 아뜰리에가 나타난다. 짧은 순간 동안 그의 예술세계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되는 공간이다.
10여년 째 옹플뢰르에서 작품 활동과 전시기획 등 예술문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온 손차룡 작가는 작품 속에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전통 동양화에서 최근의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작품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지만 다르면서도 하나의 줄기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동양철학 사상과 이곳에서 접한 서양미술의 영향이 절묘하게 섞여가는 과정들을 작품의 흐름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6년에 출생, 10살의 이른 나이 때부터 벌써 그림이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거의 50년 가까이 미술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타 도시에서 유학생활을 했기에 어린 나이에 찾아온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울 은신처를 찾아야 했고 자신의 재능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예술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수 차례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인정을 받았지만, 집안 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난관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겠지만, 가정생활과 예술활동을 병행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생활고, 미술계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의 갈등 등 그 험난한 굴레에서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2000년,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선택만이 남아 있던 절박한 상황에서 그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들었다. 우연치 않게 러시아에서 전시 할 기회가 주어진 것. 그의 새로운 비상을 가능케 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만으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신념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한국에서 철저히 무너졌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었던 그에게 이것은 새로운 도전이요 마지막 희망이었다.
러시아 전시를 마치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독일에서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만난 독일친구의 도움으로 독일행을 결심,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왔다. 환경과 문화도 다르고 말도 안통하는 낯선 곳이었지만,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부서질듯 온 몸으로 열정을 다해 예술혼을 불살랐고, 그곳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의 마음을 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 옹플뢰르에 정착하게 된 것도 독일에 머물던 시절에 만난 좋은 인연들 덕분이다.
프랑스와 한국 사이의 문화교류를 위한 홍보대사
평온한 인상과 적극적이고 매사에 밝은 그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한번이라도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금방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친화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친구가 되고 후원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옹플뢰르 시내를 그와 함께 거닐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불러 세우는 그의 친구들, 팬들과 만나게 된다. 심지어는 인근 교외에 식사를 하러 나가도 레스토랑 주인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할 정도였다. 지난 세월 동안 그가 옹플뢰르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동양인 화가 한 명 없는 서양예술가들의 원초적인 도시에 흘러들어 온 그는 처음에는 미운 오리새끼 같이 외면당하고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손 화백은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화가에 대한 선입견을 깨야만 했다.
처음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들을 먼저 그려나갔고, 그 속에서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동양적인 화풍을 접목시켜나갔다. 서양화풍에 익숙했던 노르망디의 풍경들이 그의 손에 의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왔다.
이를 통해 그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들과 다르지 않는, 예술을 사랑하는 동양의 한 작가로서 인식해 주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마음껏 선보여주고 있다. 그의 아뜰리에를 가보면 그의 최근 작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동과 서, 3차원의 세계를 오가는 다양한 작품들
초기에는 누드화를 즐겨 그렸으나 점차적으로 동양미를 물씬 풍기는, 붓과 먹의 사용이 잦아지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 시킨 산수화로 나타내기도 하고, 인상파적 혹은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사실주의적 유화 작품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을 가장 감동시키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는 먹물로 노르망디의 기암절벽과 자연 경관을 그린 시리즈물이다.
옹플뢰르에는 인상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틀에 박힌 표현 방식을 벗어나 뭔가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노르망디 풍경을 원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들이 갈망하는 부분을 손 화백이 일정부분 채워 준 것 같다.
최근에는 검은색과 밝은 원색이 공존하는 추상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굵은 붓으로 검은 페인트를 휘갈기기도 하고 두꺼운 물감을 방울방울 털어내며 떨어트리기도 한다. 붓터치를 이용한 힘찬 화면의 구성, 이것이 그의 작품의 묘미인데, 동양화에서 붓의 터치를 이용한 작품들을 이미 해 왔기에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2013년 2월에 파리의 중심 지역에 위치한 방돔 갤러리에서 열린 초대전에서 이 작품들을 선보이며 호평을 얻은 바 있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등장하는 한 가지 주제가 있는데 바로 별자리이다. 낮 풍경에도 별자리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3차원의 보이지 않는 공간 속의 별자리들까지 그의 눈에는 관찰된다.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하늘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어느 곳에든 넓은 하늘이 존재한다는 그의 동양철학과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그룹전을 통해서 옹플뢰르 작가들과 소통하고 있다. 옹플뢰르 작가 협회는 매년 옹플뢰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그룹전을 개최하는데, 옛 소금 저장고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갤러리로 변신한 Grenier à sel에서도 그의 가장 최근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손 화백은 아티스트만이 아닌 한국 미술의 전도사로서도 톡톡한 역할을 해 내고 있다. 2011년, 도빌 한국 작가 전시를 기획 참여했고, 작년 6월에는 옹플뢰르 시청에서 후원한 한국 작가전도 기획 전시했다. 태극기가 시청광장에 걸리고, 전시장에는 1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덕분에 옹플뢰르 작가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올 11월에는 대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옹플뢰르 작가들의 작품을 출품시키며 양국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옹플뢰르의 포구에 연등을 띄워 한국인의 정체성이 더욱 확연히 들어나는 행사들을 갖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옹플뢰르는, 프랑스에 첫발을 내딛을 때만해도 보잘것없는 미운오리새끼와도 같았던 그가 백조가 되어 새로운 비상을 가능케 한 땅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머지않은 훗날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그는 떠나가기 전에 프랑스에서도 후배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펼치게끔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또한 옹플뢰르에 재불작가들이 터를 잡는다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힘껏 돕겠고, 프랑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재불작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뜨거운 열정을 힘껏 응원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더욱 기대해 본다.
Atelier d'Art Son Cha-Yong
22 rue Cachin 14600 Honfleur
02 31 98 71 43 / 06 22 72 66 95
www.son-chayong.com
【한위클리 / 계예훈 artechri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