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드는 한 중국 친구가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10분짜리 단편 영화로 만들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중국의 한 지방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한 남자. 두 시간을 기다렸던 터라 아주 반갑게 44번 버스에 오른다. 버스 운전사는 20대의 앳되고 예쁘장한 여자다. 운전사 신분증에는 다른 여자 사진이 찍혀있어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자리를 찾아 앉으라는 운전사의 말을 듣고 자리에 앉은 남자는 잠시 후 졸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두 남자의 손 신호를 받고 멈춘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칼을 꺼낸 남자들은 돈을 꺼내라고 승객들을 위협한다. 버스를 꽉 채운 승객들의 대부분은 남자들이다. 돈을 안 꺼내는 한 승객을 주먹과 발길질로 파워를 과시한 두 명의 강도들은 그대로 달아나려 하다가, 버스 운전사를 본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운전사를 버스에서 끌어내려, 갓길로 끌고 간다. 버스 운전사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친다.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한 남자 승객이 움찔했지만, 옆에 앉은 여자 승객이 그를 잡아당긴다. 두 시간 기다렸다 탔던 남자가 승객들을 향해 소리 지른다.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느냐고, 왜 도와줄 생각을 안 하느냐고... 하면서 혼자 강도들을 쫓아간다. 그래도 버스에 있는 많은 승객은 버스 차창에 붙어서는 구경만 할 뿐이다. 강도가 휘두르는 칼을 맞아 쓰러진 남자 앞에서 버스 운전사는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도망치는 강도들...
졸지에 강도에다 강간까지 당한 여자 버스 운전사는 비틀거리면 버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승객들을 천천히 째려본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는 승객들을 보며 여자 버스 운전사는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쓰윽 닦으며 운전석에 앉는다. 상처를 입은 남자가 버스로 힘겹게 걸어와서는 물었다.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버스에 오르려는데, 버스 운전사가 내리라 명령한다. 남자는 영문을 몰라 묻는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나만 당신을 살리겠다고 하다가 다치기까지 했는데 왜 버스를 못 타게 하냐고... 여자는 남자 승객의 가방을 차창 밖으로 냅다 던지면서 다시 한 번 “내려”라고 소리친다. 그리곤 버스를 운전해 남자만 휑하니 남겨둔 채 떠난다. 남자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버스가 떠난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면서. 겨우 지나가는 차를 한 대 얻어탄 남자는 한 참을 가다가 경찰차에 의해서 잠시 멈춰진 차에서 내린다. 경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고 현장에서, 남자는 한 경찰이 무전으로 상사에게 보고하는 소리를 듣는다.
“44번 버스 승객과 버스 운전사 전원 사망입니다”
특별한 장치도 없고, 영상미도 없고, 배우들도 이름 없는 배우들이고, 언뜻 보면 마치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짧은 꽁트 같은 느낌의 단편영화이다. 하지만 이 단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 강하다. 강해서 눈을 찔끔 가리게 한다.
외면하고 싶은 일들, 그냥 지나쳐 갔으면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최근 들은 말 중에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바로“이기적이다”라는 말. 농담삼아 주고받기도 했고 한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할 때 건네기도 했던, 이“이기적”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박힌다.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생각과 행동 때문에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 ‘세월호’라는 참사가 일어났고, 그 세월호 같은 일들이 사실은 비일비재하게 우리 일상에서도 일어난다는 진실이 가슴 아프다.
차라리 모르는 이들의 이기적 행동은 그냥 모르는 척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이 필요할 때는 열심히 찾다가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손을 내밀면 “나 몰라라”하는 이기적 행동들에는 어쩔 수 없는 치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로부터의 외면과 이기적 행동들은 너무나도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에 혼자 떨어져서 오로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면, 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들이 인생이다.
10분짜리 단편 영화의 장면에서 여자 버스 운전자가 강간을 당하기 전, 아니 강도들이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빼앗을 때 몇십 명의 승객들이 힘을 합쳐, 아니 몇 십명도 필요 없다. 이기적이지 않은 두 세 명의 승객들이라도 힘을 합쳐, 두 명의 강도를 물리쳤더라면 어떠했을까...? 영화는 상상의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도 있다. 위에 이야기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44번 버스를 탄 승객들이 전원 사망했지만,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44번 버스’라는 단편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건 기적일까? 운명일까? 선행의 보상일까?
강해연 / 이유극단(EU Theatre) 감독으로 그 동안 ‘탈 in 탈’ ‘리허설 10분 전’ 등 여러 편의 뮤지컬을 연출했으며 ‘추억을 찍다’(2010년), ‘Seoul-Saigon-Sydney’(2011년), ‘K-pop Concert’(2012년), ‘아줌마 시대’ 등의 연극과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