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이계선 칼럼니스트
우리집 원베드룸 아파트는 전자제품으로 만원이다. 거실에는 TV 스테레오라디오 전화기 전기치료의자 전기방석 전기장판 전기청소기 전기면도기가 널려있고 벽에는 전자시계가 걸려있다. 주방에는 전기밥솥 커피포트 전자렌지 가스렌지 냉장고 세탁기로 가득 차 있다. 침실에는 달랑 컴퓨터 한데 뿐이지만 이게 수풍수력발전소처럼 전력송출이 여간 많은게 아니다. 컴퓨터에 매달려있는 시간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24시간을 이놈들 전자제품속에 갇혀 지낸다. 한 시간짜리 TV연속극을 본후 인터넷에 매달린다. TV와 컴퓨터에 세시간을 시달리고 나면 눈은 침침하고 머리는 지근지근. 전기고문을 당한 죄수처럼 골치아프다.
아내가 먼저 일어선다.
“여보 우리, 자연이 숨 쉬고 있는 밖으로 나가 머리를 식혀요.”
아파트를 나와 남으로 10분을 걸으면 무공해대자연 대서양바다가 있다.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다. 북쪽 1분거리에 돌섬농장이 있기 때문이다. “에덴” “아리랑” 합쳐 봐야 손바닥 만한 40평짜리 조각밭이지만 자연의 요소들이 모두 모여 있다.
스무가지가 넘는 작물들이 무공해산소를 뿜어내며 푸르게 자란다. 백두산 소나무처럼 울울창창(鬱鬱蒼蒼) 꼿꼿하게 뻗어 올라간 도라지이랑. 조금 있으면 백도라지 하얀꽃이 장관을 이룰것이다. 한키 넘게 자라 올라 서로 엉켜 붙은채 하늘을 가리우고 있는 더덕넝쿨은 영낙없는 아마존정글이다. 근처만 가도 더덕향기가 진동한다.
인간 세상에서는 악인은 감옥에 잡아가둬 격리시킨다. 자연세계는 악(惡)도 공존한다. 돌섬농장에는 작물만 있는게 아니다. 달걀껍질을 비료로 뿌렸더니 그걸 훔처 먹겠다고 쥐와 다람쥐가 몰래 드나든다. 쥐들을 잡아먹겠다고 고양이가 출몰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나무위로는 독있는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뱀이 기어나와 아내가 기절초풍을 했다. 손바닥만한 조각농장에 대자연의 우주가 모두 모여 지낸다. 대자연(大自然)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북쪽울타리 밑으로 자마이카만(灣)이 흐르고 있어 경치마저 그럴듯하다. 내가 앞장서 발벗고 들어갔다.
“여보, 자연이 모여있는 밭으로 들어가 자연과 즐기면서 자연과 하나가 됩시다.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신선(神仙)이 되는거요. 자연과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자연인(自然人)이 돼야지. 아프리카의 자연인 나체족처럼 홀라당 벗을수야 없지만 TV에 나오는 산속의 자연인처럼 맨발로 들어가자구.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발바닥으로 땅의 기운을 받으면 자연치료(Healing Nature)가 될거요.”
신기하다. 흙과 모래가 섞인 밭이랑을 맨발로 밟을때 마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흥분을 느낀다. 여인의 속살을 접촉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시인 최영미는 TV를 보면서 ‘나는 TV와 섹스한다’고 흥분했다지! 난 흙과 섹스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맨발로 흙을 밟고 다니면 신선이 된 기분 이니까.
맨발로 일하고 있으니 나비와 새들이 몰려와 춤추고 노래한다. 묘하다. 그 놈들도 들어주는 청중이 있어야 신바람이 나는 모양이다. 새들도 아름다운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빨강, 아내는 파랑을 입고 나온다. 에덴농장 울타리에는 네그루의 은사시나무가 모여있다. 늙어서 기울어지고 가지가 많이 잘려나갔지만 그래서 더 멋지다. 가슴이 핑크빛인 로빈, 오렌지색깔의 오리올스가 은사시 높은 가지에 앉아 이중창을 노래한다. 그러면 크고 작고 검고 하얀 잡새들이 날라와 교향악을 합창한다. 맨발로 서성거리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심신이 상쾌해졌다.
“여보, 들어가서 TV중계하는 양키즈 야구봅시다.”
우리가 밭을 좋아하는건 자연사랑 때문이다. 흙의 아들로 자란 나보다 도시출신인 아내가 더 자연을 좋아한다. 목회초년병 시절 아내는 병아리 스무마리를 키워 손님대접을 했다. 부산에서는 꿩 한쌍을 길렀다. 꿩알 스무개를 부화장에 맡겼더니 14마리가 알을 까고 나왔다. 서울로 옮겨서는 사업(?)을 확장. 안방에는 만리장성처럼 어항을 길게 설치하여 열대어 토종어가 휘졌고 다녔다. 기화요초로 가득채운 옆방. 화분위에 있는 열개의 새집에서는 카나리아 앵무새 구관조가 노래 연습중이다.
이민와보니 미국은 집마다 화단이요 거리마다 숲이요 동네마다 공원이다. 자연을 집안에 가두려 들지 않는다. 자연학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하, 이게 자연보호요 진짜 자연사랑이라구나..’
그때부터 우리집에는 화분이나 새장이 없다. 누가 방문할 때 화분을 갖고 오면 3일만 보고 이웃에게 줘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새한마리, 그것도 참새새끼를 갖고 왔다.
“큰딸 진명이가 길을 가다가 길 잃은 참새새끼를 발견했대요. 잘 날지도 못해 짐승이나 차에 치어 죽을것 같아 불쌍해서 가져왔어요. 엄마가 키워서 날려보내 달라고...”
전에도 그랬다. 마음이 여린 진명이는 버려진 새새끼를 보면 열심히 주워다 엄마에게 맡겼다. 아내는 흥부처럼 정성껏 키워 날려 보냈다. 철새들은 기르기가 쉽다. 텃새들은 강제로 입을 벌려도 먹기를 거부하고 텃세를 부린다. 참새는 텃새중에도 고집이 쎈 독종이다.
그런데 이번에 주워온 아기참새는 천하의 순둥이다. 달걀노른자를 주면 노란주둥이로 콕콕 쪼아 먹는다. 휘파람을 불면 날아와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따스한 걸 좋아하여 따스한 내 체온을 엄마새의 가슴으로 아는 모양이다. 우리부부는 아기참새를 순둥이라 불렀다.
“순둥이가 흥부의 제비처럼 효자노릇을 할것 같소. 잘 길러서 대박한번 터트려 봅시다.”
그런데 일주일만에 순둥이가 죽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임종한 바로 그 주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기참새가 숨을 거두고 있었다. 정을 주고 떠나가니 미물이라도 슬프다. 오늘도 걸어서 교회를 가는데 어디서 짹짹째 참새소리 들려온다.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인간은 죽어서 영원으로 돌아가고 참새는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보다.’
▲ 잠든거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기참새
* 뉴스로 칼럼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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