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금성은 평생 한 번 방문해 볼 만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의 전 대통령께서 중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을 했을 때 많은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는 보도가 지면을 채웠지만 별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대통령의 경호실장과 주치의가 대통령을 남겨둔 채로 역사적인 유적지를 관광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직책상 경호실장과 주치의는 대통령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주임무를 약간 소홀히 하면서 관광을 한 곳이 바로 자금성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자금성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겠지요.
자금성은 ‘포비든 시티(Forbidden City)’라고 불리우며 72 핵타 넓이에 건축된 방대한 궁전입니다. 140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년이 지난 1420년에 완공을 한 이 거대한 궁전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외인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도록 10 메타 높이의 담이 쌓여져 있고 50메타 폭의 인공 하천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금성을 말할 때 가장 유명한 특징은 여러 궁전 주변에 나열된 9999 1/2 개의 방일 것입니다. 황제가 거느린 수천 명의 궁녀들이 기거한 방들입니다. 황제가 믿은바에 의하면 신으로 모시는 옥황상제가 만개의 방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개의 방을 갖는다는 것이 옥황상제에게 무례가 된다고 해서 반칸을 줄인 9999 1/2 개의 방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제의 왕도 궁녀를 3천명을 거느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3000명의 궁녀만 하더라도 황제가 하루에 한 궁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려면 미지막 궁녀는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황후가 황제와 동침할 우선권이 있으므로 웬만한 궁녀는 일생에 한번 정도 황제와 잠자리를 함께 할 수도 있고 어떤 궁녀는 일생토록 그런 기회를 갖지도 못하고 늙고 마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황제는 그런 궁녀들의 인권을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궁 안에서 시중을 드는 모든 남종들은 궁녀들과 사랑을 나눌 수 없도록 거세를 하여 환관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척 잔인한 황제들이었습니다.
여러 궁전의 주변에는 돌로 조각된 수백 개의 용의 머리가 있는데 비가 오면 그 용의 입으로 빗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곳에 갔었을 때는 날이 맑아서 그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궁전과 궁문은 이름이 적혀있는데 한문과 만주 글로 적혀있습니다. 청나라의 황제들은 다 만주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황제만이 붉은 색깔을 사용할 수가 있었고 일반 시민은 그 색깔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붉음을 금한다고 해서 자금성이라고 한다고 하나 궁안의 어느 곳에도 자금성이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단지 고궁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자금성에 가면 꼭 듣게 되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황제는 아들들이 많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황제의 후계자를 선택하여 몇 번째 아들이라고 적어 황제의 용상 위쪽에 있는 액자 뒤에 감춰놓았다고 합니다. 황제가 서거를 하면 왕자들과 신하들이 그 숨겨 놓은 종이를 꺼내 보고 지정된 서열의 왕자가 황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황제는 14번째의 왕자를 선택해 놓고 서거를 했다 합니다. 정권욕이 매우 컸던 네 번째 왕자는 그 비밀을 알고 밤에 황제가 다른 곳에서 잠든 틈을 타서 그 액자 뒤에 숨긴 14 라는 숫자에서 1 자를 지워 버렸다고 합니다. 그랬으니 액자 뒤에서 나온 숫자는 당연히 4 자이었고 그는 황제가 되었다 합니다. 그래도 신하들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 즉위를 한 황제는 그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하들을 모두 불러 술상을 차렸다 합니다 그 술에 독을 타서 비밀을 알고 있는 신하들을 다 죽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신하의 딸 하나가 무술을 닦고 정보를 수집하여 화제가 남방에서 휴양을 하려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세한 정보에 입각하여 황제의 침실에 잠입을 하여 황제의 목을 베어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제가 어렴풋이 알기로는 그 황제가 건용황제였습니다. 그 황제의 장례는 손으로 만든 머리를 달고 치렀다고 하며 원수를 갚은 그 딸과 건용황제의 머리는 영영 찾지를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금성 안에는 수십 개의 방화수 통이 있습니다. 큰 가마솥 같은 용기에 물을 담아두고 겨울에는 얼지 않도록 밑에 불을 땠다고 합니다. 그 방화수 통의 외부는 금으로 입혀 놓았는데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을 침입했을 때 그 방화수 통은 너무 무거워서 가져가지는 못하고 입혀 놓은 금만 긁어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런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서 지금도 금빛 도금을 외면에 해 놓고 긁힌 자국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금성에 얽힌 이야기와 전설은 많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꼭 한번 가보시라고 독자 여러분께 권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