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의 시대여, 이제는 가라
[한국전쟁 66주년 3] 하늬 꽃샘 추위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어머니의 검정고무신
밖에 나갔다 어둑어둑해서 돌아온 어머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고는 "에이참, 억울해라!"를 연발하며 툇마루에 털썩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어디서 가져 왔는지 흰 가루가 히끗히끗 묻어 있는 새 고무신 한 켤레를 마루 한 쪽 구석에 던져 놓았다.
궁금해 하던 식구들에게 어머니가 그날 저녁을 먹는둥 마는 둥 털어 놓은 무용담은 이러했다.
아침에 마당을 쓸고 막 동네 고샅으로 나서려던 차에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자 하나가 대문을 기웃거리더니 동네길을 이리저리 캐묻고는 강둑 하구쪽으로 급히 가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번개처럼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그길로 시오리도 넘는 지서로 내달렸다.
숨가쁘게 지서에 도착한 어머니는 수상한 남자의 인상 착의로부터 시작해서 말투, 걸음걸이까지 빠뜨리지 않고 이르고는 빨리 가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재촉했다. 경찰들은 어머니를 찝차에 태우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 당시에는 "수상한 자 신고하여 애국하고 상금타자"는 등속의 포스터가 담벼락과 전봇대 등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특히 해변을 끼고 있는 '위험지역'이었던 우리 마을에서는 종종 '사랑방 좌담회' 같은 것이 열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순경 아저씨로부터 '간첩 식별하는 법'을 익히곤 했던 터였다.
평상시 눈썰미가 매섭다는 말을 들어 온 어머니는 천재일우의 기회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먼 거리를 마구 내달린 것이다. 결국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그 수상한 남자는 붙잡혔는데, 조사 결과 그는 '모의간첩'이었다.
어머니는 지서장으로부터 '정말 대단한 아줌마'라는 칭송을 잔뜩 듣고 표창장과 함께 포상이라며 생고무 냄새가 물씬 나는 검정고무신 한켤레를 받아들고 왔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가 애석해 하던 모습에 가슴이 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검정고무신이 황금 고무신으로 변하는 '잭팟게임'의 꿈을 꾸며 살았다. 더구나 이 꿈은 동전을 넣어 터뜨려 일확천금을 하겠다는 노름꾼의 잭팟놀이 처럼 죄책스러운것이 아니라, '애국'이라는 명분까지 있었으니 그 누군들 마다 했겠는가.
▲ 검정고무신. |
간첩죄로 둔갑한 반정부 활동
훨씬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 같은 하수(下手)는 오다가다 재수 좋게 이 잭팟을 터뜨릴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던데 비해, 이 일에 도가 튼 상수(上手)들은 대형 잭팟을 마음대로 조작해 터뜨려 일확천금을 해 대고 있었다. 이 마법의 잭팟은 파괴력이 엄청나 잘 터뜨리면 출세 가도를 달리게 만들었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잭팟놀이의 제물로 '선택'되어 걸려드는 사람은 그 자신은 물론 삼족이 멸망하게 되었다.
중고 시절 나의 통학 구역 단짝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고향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며 동료 교사 몇명과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이들이 당시 읽었던 책이라야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당국이 이들을 간첩죄로 옭아맨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평소 의기투합하여 술자리에서 분노를 토하던 이들은 전두환 시절 없어진 4.19 기념일에 막걸리 10병과 오징어를 들고 동네 뒷산의 소나무 밑에서 '광주 사태'의 진상을 얘기하며 술을 따라 놓고 묵념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지간한 시골동네의 산 정상에 따라 붙곤 했던 '장군봉'의 '다섯그루의 소나무 밑에서 모임을 가졌다' 하여 이름도 어마어마한 '오송회 간첩사건'으로 수사당국이 발표했단다.
동료 교사들과 함께 '간첩죄'로 걸려든 내 친구는 고문 받고 옥살이를 하다 반병신이 되어 풀려 나왔다. 그의 아내는 만삭이 된 채 옥바라지를 하다 가문의 멸족을 우려한 친정 식구들에 의해 '귀가조치'되어 이혼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기 까지 했다. 당시 함께 구속됐던 그의 시인 친구는 풀려난 얼마 후 고문 후유증으로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리다 끝내 사망했다.
사실 우리 땅에 '00회 간첩단 사건' '00당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은 간첩 사건에 걸려 들었다 희생 당한 사람이 그 얼마런가!
70년대 '의식화의 원흉'으로 찍혀 살던 리영희 교수는 잭팟놀음의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산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수업 중 강의실 밖에 안경 쓴 사람이 어슬렁 거리면 정보부 요원으로 착각해 다짜고짜 뛰어나가 멱살을 잡고 "네이놈 여기가 어디라고!"라고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그는 사실적 자료와 과학적 분석을 통한 저작 활동으로 잭팟게임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폭로하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아 왔고, 이로 인해 감방을 안방 드나들 듯 했다.
이제 그만 '잭팟놀음'을 끝내야 한다
어찌 보면 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사는 잭팟 터뜨리기로 점철된 역사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잭팟을 얼마나 요령껏 조작해 적기에 터뜨리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은 정권의 쟁취 과정에서 부터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 잿팟놀음을 조작해 무수한 '사상자'를 냈다.
1980년 '5·18 광주'는 이 잭팟놀음의 극치를 이룬 것에 다름 아니다.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처음부터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에 의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교육을 받고 광주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시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일념으로 작전을 전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잭팟놀음이 수십년간 계속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 등을 지배하면서 일반 세상과 사물을 균형있게 바라 보는 우리의 인식 체계를 망가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리영희 교수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잭팟놀음은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집단적인 "인식정지증"이라는 질환을 앓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아무개는 빨갱이다!"라고 한 번 소리치면 모든 사람이 일제히 입을 모아 "그래 맞다, 아무개는 빨갱이다!"라고 복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 대중은 확인이나 검증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는 집단 매카시즘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목젖 돋우어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여러분은 속고 있소, 여러분은 환자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종종 들리기는 했으나, 지나가는 기차 보고 멀리서 개짓는 소리로 여길 정도로 모두는 그럭저럭 잭팟놀이 구경을 즐기며 재미나케 살았다.
여기에 지난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모두가 너무 오랫동안 '질환의 시대'를 살았음을 깨닫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렇다. 55년 만의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우리 서로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는 이 맛대가리 없는 잭팟놀음을 그만 두자'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2000년 6월 15일 그날의 선언은 우리 땅에서 숱하게 벌어져온 잭팟놀음에 파토를 놔 버리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 게임'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후로 수년 동안 수만명이 '잠입 탈출'하여 '고무-찬양'을 늘어 놓고 '금품수수'를 자행하면서 '통신 회합' 등을 가지는 시대를 살았다. "아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구나"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땅은 너무 오랫동안 잭팟놀음에 맛을 들여 왔는가 보다. 아직도 '사상이 의심스러운'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잭팟놀음이 번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이들은 도대체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월남 난민들도 고국을 드나들고, 쿠바도 이제 미국과 수교하게 된 마당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해체되기 시작한 지가 30년도 넘는데 우리 땅에서만은 아직도 빨갱이 타령이 계속되고 있다.
아아, 안될 말이다. 지금이야 하늬 꽃샘 추위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듯해도 민족 화해와 분단 극복을 향한 새 역사의 당찬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봄날이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역사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무리들의 반민족적 반역사적 작태에 상을 내리기는커녕 심판을 하게 될 것이다.
'검정 고무신'의 시대여, 이제는 가라.
<관련기사>
1. http://www.okja.org/saseol/31769
2. http://www.okja.org/saseol/31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