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한가족’ 아름다운 세상 함께 살자!
뉴스로=강명구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카트만두의 박타푸르 왕궁을 출발한지 꼭 일주일 만에 300km를 거침없이 달려 ‘평화와 빛의 사도’인 고타마 싯타르타의 탄생지 룸비니에 도착했다. 300km의 먼지 가득한 길은 부처님이 걸었던 고행(苦行) 길처럼 우리에게 작은 구법(求法)의 길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달리면서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가슴에 되새겼다.
이 길은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 1700여 년간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원류(源流)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네팔 남동부 테라이 평원은 히말라야 산맥의 기운이 잦아드는 곳에 위치한다. 그곳의 룸비니에서 기원 전 623년 부처님이 탄생하였다. 그 시대 룸비니는 보리수나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15세기까지 순례 성지였다가 역사 속에 묻힌 도시가 되었다. 15세기 이후 이 지역이 잊혀진 도시가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 1895년 독일인 고고학자 포이러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진다.
석가모니는 과연 인류의 위대한 신인가? 대 사상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시대를 거역하는 반항아였을까? 붓다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깨달음으로 종교의식과 제물을 부정하였지만 종교는 종교 자체의 권위와 세력을 키웠을 뿐이다. 태어나면서 금수저와 흙수저를 들고 태어나는 카스트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인도와 네팔은 아직도 그 고통 속에 있으며 인류는 더욱 더 탐욕스러워지고 전쟁과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룸비니에는 지구촌공생회의 이사장으로 있는 월주스님이 미리 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이 자리에서 진오스님은 탁발마라톤으로 모금한 천만 원을 지구촌공생회에 전달하였다. 진오스님은 ‘아름다운 세상 함께 살자!’란 표어를 내걸고 ‘꿈을이루는사람들’이란 비영리재단을 운영하시기도 하다. 이 기금은 지난해 발생한 강진(強震)으로 피해를 입은 신두팔촉 지역의 초등학교 건립기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신두팔촉 지역은 카투만두에서 북동쪽으로 100km 떨어진 산간 오지(奧地) 지역이다. 작년 두 차례의 지진으로 5,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623개의 학교의 약 90%가 붕괴되었다고 한다.
구도의 길은 찬란한 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덮어 싼 먼지 같은 감정인 탐진치(貪塵恥) 다 씻어내고 본래의 맑은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당구의 쓰리쿠션과 같은 것이다. 단순한 보통의 사람은 바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쉽고 편한 직구를 치지만 자리이타는 쓰리쿠션을 돌려서 자기의 크나큰 기쁨을 내 안의 기쁨은 하늘의 상급을 받은 것이니 그 어떤 이익보다도 결실이 크다. 그러니 쓰리쿠션 당구를 고수들이 치듯이 자리이타도 삶의 고수들이나 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아름다운 세상 함께 살자!’란 진오스님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한울안 한가족’이란 인식은 오늘을 살아가는데 가장 유효하고 효율적인 깨달음이요 기술이며 중요한 정부시책이 되어야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은 부처님도 이루지 못한 것이지만 보시(布施)를 베풀어 뜻을 고르는 일이 결국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누고 소통하면 좋은 세상 가는 길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와 세상은 고정불변하고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상하다고 설법하셨다.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매순간 생멸 변화하기 때문에 연기적(緣起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는 인연법의 가르침은 특별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탐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탐욕을 궁극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고 좌절된 탐욕은 분노를 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자본가가 있으므로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가 있으므로 자본가가 있다는 인식은 중요하다. 노동자의 일자리가 안정되고 수익이 많아 소비를 늘리면 자본가는 더욱 자본을 늘릴 수 있다는 인식이 아쉽다. 앞으로의 사회는 더욱 사람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 자동 생산에 의지할 터이니 자본의 분배는 더욱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마라톤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룸비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마야데비 사원을 찾았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에 세워진 사원이다. 부처님이 태어난 곳을 기리는 사원양식이 힌두교 사원양식인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불교도보다 힌두교도들이 더 많은 것도 놀라웠다. 힌두교는 다신교라 부처님도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의 존경받는 신이고 예수님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원 밖에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이 그 옛날 부처님이 태어나신 보리수 나무를 연상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에도 경배(敬拜)를 하는 것이 예사롭지는 않다.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은 불교를 국교로 하고 룸비니에 네 개의 석주(石柱)를 세웠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북인도의 지방 종교이던 불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전파한 일이다. 그는 스리랑카, 미얀마,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등 유럽과 아시아에 불교 포교사를 파견하였다. 사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지고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진 대지로부터 성스러운 기운이 발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다.
마야데비 사원을 중심으로 네팔은 국제사원구역을 조성하였다. 힌두왕국이었던 마헨드라 왕이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우탄트에게 룸비니 개발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이곳이 가난한 네팔의 희망이 될 관광자원의 가치를 안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을까. 이곳을 각 나라에게 99년 간 무료로 임대를 해주고 각국 고유의 불교 사찰을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일본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우리나라도 대성석가사란 사찰을 30년이 넘도록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프랑스 사찰도 있고 독일 사찰도 있는데 다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눈에 세계 사찰 양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룸비니의 국제사원구역 중 잠을 자고 공양(供養)을 할 수 있는 곳은 대성석가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우리는 대성 석가사에서 여장(旅裝)을 풀었다. 우리는 진오스님 덕분에 스님들이 묵는 요사채에서 편안하게 잘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몇 명 더 머물고 있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는 이재용이란 학생은 여기가 가격이 싸고 조용해 며칠 더 묵어갈 것이란다. 온가족이 직장을 휴직하고 아직도 미혼인 과년한 아들과 딸을 대동하고 몇 달째 가족여행을 온 어머니가 참 멋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헤아리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온 삶, 어쩌다 한번이라도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가족의 가치를 지키고 싶은 때는 분명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뿐이지 행동에 옮기지 못할 뿐이다. 우린 이들과 함께 중국사찰을 돌아보고 근처의 중국음식점을 찾아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멋진 식사를 했다. 인연에 따라 지낸 시간과 공간이 바뀌었다.
대성 석가사의 규모는 큰데 시멘트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쉬웠다. 단청도 네팔현지인들이 입히고 있었는데 우리 고유의 단아하면서도 깊은 빛깔과 거리가 있다. 사찰에 가면 사찰에서 나오는 경건함이라든가 신비스러운 기를 느낄 수 있는데 시멘트 사찰에서는 전혀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다. 산사에 가면 산 속 깊은 곳에서 몇 백 년을 자란 금강송 기둥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좋았다. 건축양식에 전혀 문외한인 여행자에게 오랜 세월 부처님의 성지에서 한국 불교의 얼굴 역할을 할 시멘트 사찰의 모습이 불편하다. 뉴욕의 원각사나 한마음선원이 한국에서 자재를 공수하고 대목장(大木匠)을 모셔와 우리 전통양식으로 지으면서 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신비감을 조성하는 모습과 대조적이어서 더욱 그렇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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