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南大 金再起 敎授에 대한 公開質疑
뉴스로=韓泰格 칼럼니스트
지난 12일 저녁 재외한인사회연구소(소장 민병갑)주최로 뉴욕한인봉사센터(KCS)에서 재외한인사회 연구소 제 33차 정기 세미나가 개회되었다. 당일 세미나는 꾸바한인들의 독립운동과 후손들의 삶을 주제로 전남대학교(광주 소재) 김재기(金再起)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강연하였다.
그날 세미나는 의자가 모자를 정도로 만원(滿員)을 이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제의 대상국(對象國)이 지난 56년간 미국과의 단교(斷交)로 인하여 우리가 정보를 그리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곳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刺戟)시키지 않았나 싶다. 필자도 알지 못했던 미지(未地)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참석, 맨앞자리 중앙에 자리잡고 경청(傾聽)도 하였고, 몇가지 질문도 던졌다.
오늘 이 지면(紙面)질의는 그날 시간이 예정보다 지체(遲遞)된 관계로 다 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기 위한 것이다.
그날 저녁 김교수는 꾸바 한인들의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 이외에 1929년11월 3일에 발생한 광주(光州) 학생사건 이후, 해외동포들이 광주학생사건에 대하여 얼마마한 관심을 가지고 모금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여 지원하였는지 그 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발굴, 연구하는 일이었다.
1945년 이전 북미주지역 독립운동사 강연 중 갑짝스런 ‘광주’ 거론이 잠시 혼돈을 일으켰지만 곧 그의 설명으로 의문은 해소되었다. 광주학생사건-필자 학창시절 학생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되어 있어 알고는 있었으나 반세기도 훨씬 지난 후 제기된 ‘꾸바와 광주’ 어쩐지 생경(生硬)한 두 단어임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가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그의 학자적 접근 감사하며 나머지 그의 계속되는 강연에 귀 기울였다.
필자는 오늘 김교수께서 Powerpoint까지 준비하여 설명한 꾸바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맨 앞자리에서 들었던 필자가 혹시 잘못 듣고 이해한 것이 아닌가 싶어 확인코저 합니다.
1.꾸바는 다(多)인종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0년간 지배하여왔던 ‘정복자’ Spanish계와 혼혈족간의 인종차별이 없다. 민족평등정책을 실시, 민족문제는 없다. 2. 의술(醫術)이 선진화되어있고, 의료보험이 완벽(完璧)하여 120세 그룹까지 형성되어 있다. 3. 작금 미국이 한국에 THAAD배치를 결정한 것에 대한 주변국들의 강력반대와 1962년 꾸바 미사일 위기상황은 대비된다.
강연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위 강연이 전남대학교 학생들에게 전달될 것이기에 김교수의 진의(眞意)가 과연 어떠했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뉴욕, LA 그리고 플로리다에는 많은 꾸바 피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필자에게 들려주었던 실상과 김교수 강연내용과는 괴리(乖離)가 큽니다. 그리고 제3국으로부터 입수되었던 꾸바정보와도 큰 차이가 납니다.
김교수의 짧은 여정(旅程)에서 과연 꾸바를 얼마나 파악(把握)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외부에 알려진 꾸바는 Fidel Castro 형제의 장기 공산독재집권(長期共産獨裁執權)으로 인하여 파산(破産)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여기 필자가 몇 년전 신빙성(信憑性)있는 정통(正統)한 모처(某處)로부터 입수한 동영상을 통하여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상 캡쳐 동봉합니다. 전(全)국민이 의료보험혜택을 누리는 의료(醫療) 천국은 절대 아닙니다. 미국이 떠난 1960년에 머물고 있는 병들고 굶주린 동토(凍土)의 땅일 뿐입니다. 인종간 평등만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로는 만인평등(萬人平等)으로 제정하여 놓고 있을런지 모르나,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간의 장벽(障壁)과 차별(差別)은 그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똑 같은 경우입니다. 중남미 국가들, 500년 전 스페인 정복자들(Conquistadores) 즉 유럽출신들의 기득권(旣得權) 계승(繼承)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라도 해결할 수 없었던 사회문제입니다.
김교수는 ‘우리’의 묻혀진 역사를 발굴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보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한인후손들을 만나 귀한 자료를 찾고 그들에게 뜨거운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인후손들이 살아왔던 Cuba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Cuba를 이야기할 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 ‘1962년 꾸바미사일위기’를 거론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나, Cuba Missile 위기 바로 연이어, 작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THAAD를 Powerpoint에 기입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연구하는 학자의 자세가 아닐 듯 싶습니다. 우리가 아닌 타인(他人)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왜냐하면 Apple은 Apple과, Orange는 Orange와 비교되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1962년의 Cuba Missile과 2016년 한국에 배치될 THAAD는 Apple과 Orange를 비교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교단(敎壇)에서 다음 세대,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 공인(公人)이기에 질문하는 것입니다. 사망(死亡)신고를 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幻想)을 심어주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필자가 쓴 ‘꾸바’ 관련칼럼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뉴욕일보 풍향계 1. 名分과 實利 부제: Cuba와 Puerto Rico (2014. 8. 26.) 2. 한 시대의 終焉 부제: En Cuba No Falta Nada 地上樂園의 崩壞 (2015.1.13.) 3. 그들은 봄이 오는 날에 만났다. 부제: 봄이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016.3.28.)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韓泰格의 架橋세상’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