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年 前 Statue of Liberty에 무슨 일이….그때는 獨逸人이었다.
뉴스로=韓 泰格 칼럼니스트 www.TedHan.com
우리가 살고 있는 미동부는 대서양(大西洋 Atlantic Ocean)에 접해 있다. 대서양에서 Hudson River를 따라 천혜(天惠)의 섬 Manhattan으로 북상(北上)하다 보면 Governors Island가 나오고 자유의 여신상(自由의 女神像)이 서있는 Liberty Island 그리고 1892년부터 1954년까지 1천2백만명의 애환(哀歡)이 깃들어 있는 이민국(移民局)이 있었던 Ellis Island가 보인다. 이 세 섬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New Jersey주(州)가 있는 대륙 쪽으로 ‘이름없는’ 섬 하나가 있다! 이름하여 Black Tom Island
1916년 7월30일(일) 야음(夜陰)을 틈타 두 독일 스파이가 소형보트에 다이너마이트를 가득 적재(積載)하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화약고(火藥庫)가 있는 Black Tom 섬으로 잠입(潛入)하고, 다른 한 명은 육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수상(殊狀)한 자를 검색(檢索)하던 Security Guard가 한 명도 없었다.
자정 지나(2:08:00) 사상 최대의 폭발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두 차례의 대형폭발은 맨해튼은 말할 것도 없고, 200마일(320 km) 떨어진 Maryland주 침실까지 들릴 정도였다. 현재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수치 지진 강도로 말하면 Richter 5.5에 해당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Johnson 17 바지(Barge)에서 폭발이 시작되어 부두(埠頭)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부두에는10만 파운드의 TNT와 2만5천개의 기폭(起爆)장치가 저장되어 있었다. 다운타운 Battery에서 42가 5th Avenue에 있는 도서관 건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물의 유리창은 박살났다. Brooklyn Bridge도 흔들렸고 PATH Train이 다니는 터널도 흔들렸다. 반경(半徑) 1 마일내 건물은 하늘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패닉이었고, 호텔 투숙객들은 맨발로, 파자마 차림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유리창을 깬 ‘약탈자(掠奪者)’들을 찾고 헤맸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남쪽 하늘은 화염(火焰)으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은 창고를 운영하던 Lehigh Valley Railroad Co.와 Johnson 17바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Johnson Lighterage and Storage Co.로 돌아갔지만,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이나 시국 (時局)을 읽는 사람들은 독일제국(獨逸帝國)의 소행(所行)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1914년 독일과 연합국사이에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勃發)하자, 1915년에는 Wallington에 있는 Anderson 화학공장과 Wayne 소재 DuPont 공장에서 대형화재가 발생, 미전역 무기고(武器庫)나 화약창(火藥倉)에서 42회나 대,소형 폭발사고가 줄지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인 영국과 불란서는 독일과 싸우기 위하여 미국의 무기와 탄약(彈藥), 탄환(彈丸)을 수입해 가고 있었다.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10만불 짜리 지폐 초상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당시 Woodrow Wilson(1856~1924) 28대 대통령(1913.3.4.~1921.3.4.) 행정부도 독일의 소행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Wilson 대통령의 차기(次期) 재출마를 위하여 임기 3년차에 발생한 이 엄청난 Black Tom 테러사건은 단순 사고(Incident)로 묻어버렸다. (A regrettable incident at a private railroad terminal). 사고에 비하여 희생자가 적은 탓(7명)도 있었지만, 앞서 말한 정치적 고려로 대통령이란 사람이 단순사고로 규정해 버리는 바람에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視野)에서, 기억에서 쉽게 사라져 갔다.
이 사건을 축소(縮小)하려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멀리’ 유럽에서 발생한 ‘미국과는 상관없는’ 전쟁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말해 미국은 중립(中立)의 입장을 고수하려 했다. 대중들은 쉽게 망각(忘却)하였지만, 전후(戰後) Lehigh Valley Railroad사는 독일을 상대로 $2천만 달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사건의 배후(背後)에 독일정부가 개입(介入)되었다는 것을 입증한 Lehigh Valley사는 23년이 경과된 1939년 국제재판소에서 승소(勝訴)한다. 그 해 세계 제 2차 대전이 일어났다. 독일정부는 1953년이 되어서야 배상(賠償)에 합의 하였다. 이자를 포함하여 $5천만 달러로 불어났다. 현가(現價)로 $4억5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배상은1979년에 완료(完了)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3년 만이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Roosevelt 대통령은 이 Black Tom Island 사건이 독일의 스파이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조사한 경험이 있는 John McCloy 검사(檢事)를 국무부 차관으로 임명하면서 Black Tom Island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 태평양전쟁 전쟁당사국인 일본에 조력(助力)할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일본출신 미국인 11만명을 Nebraska주 등 오지(奧地)에 수용소(Internment Camp)를 설치, 집단 이주시켰다.
Black Tom Island Terror는 New Jersey주 Bayonne에 살고 있던 독일계 Michael Kristoff가 조력했기 때문이다…
대형화재로 인해 날아간 파편(破片)은 자유의 여신상 가슴부분과 봉화(烽火)부분을 크게 손상시켰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관광객 출입이 금지되었다.
우리가 봉화가 있는 곳까지 오르지 못하는 것은 꼭 100년 전인 1916년 7월30일 독일제국 스파이 세명이 저지른 테러 탓이다!
Based on The Terror attack on N.J. that America forgot in The Record dated July 30, 2016
Translated by Ted Han on July 31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뉴욕일보 풍향계 참고: 1. Ottoman Empire의 分割 (2013년12월 30일 자) 2. Great Arab Revolt 100주년(2016년 6월 6일 자)
* 뉴스로 칼럼 '韓泰格의 架橋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