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정원 7] '뱀 잡는 남자'이기를 포기한 이유
▲ 잔디밭에서 보도로 올라가고 있는 가든 스네이크. |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며칠 전 대파 두렁에 난 잡초를 뽑다가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섰습니다. 두렁 바깥쪽 울타리에서 1미터도 훨씬 넘을 듯한 까만 뱀이 나와 목을 세우고 스르럭 스르럭 잔디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플로리다에서 가장 흔한 '가든 스네이크'(garden sneak)입니다.
종종 경험하는 것인데도, 아직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플로리다에서 오래 살다보니 먼 발치에서 목을 세우고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뱀은 그저 '동물원 패팅 뱀'으로 여길 정도는 되었지만, 갑자기 나타나는 뱀 녀석은 여전히 간을 쫄아들게 합니다. 어쨋거나 사람들에게 뱀은 여전히 징그럽고 교활한 존재입니다.
뭐 '뱀같이 지혜로워라!'는 말도 있지만, 그 조차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모두가 싫어하는 동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나, 어떤 집단을 가리켜 그냥 '뱀 같은 놈(들)' 심지어는 '사탄'이라며 증오심을 발하고 상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추위가 오래 가는 북쪽 동네 미시간에서 처음 플로리다로 이사를 왔을 때 놀랐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집앞은 물론이고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 옆에서도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앞마당에 둥그렇게 가꾸는 오너먼트 트리의 움품 패인 곳에도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호수를 끼고 있는 골프장 주변 수풀 속에도, 텃밭 부근에도 뱀은 드글거립니다.
어떤 때는 옆집 경계선과 1미터 넓이로 나 있는 '공동경비구역'에 서 너 마리의 뱀이 서로 엉켜서 뭔가 모의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장면도 보았습니다. 정말 끔찍한 것은, 수영장에 뱀이 들어와서 수영을 하는 장면입니다. 어느날 수영하다 무심코 헤엄을 치고 있는 뱀을 발견한다면, 지레 놀라서 익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밖에도 플로리다에서는 뱀에 얽힌 '괴담'이 많습니다. 어느 분은 지붕 둘레에 설치한 물받이(gutter)에 쌓인 나뭇잎을 청소하다 '물컹' 잡히는 것이 있어서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고 보니 통통하게 살이 오른 뱀이었다고 합니다. 급히 외출하다 깜박 잊고 열어놓고 나간 미닫이 뒷문 사이로 뱀이 들어와 있었다거나, 한밤중 화장실 가려다 침대 부근에서 히끗히끗 움직이는 뱀을 발견하고 까무라칠 뻔했다는 얘기까지… 괴담은 끝이 없습니다.
뱀을 막기 위해서는 흔히 '백반'이라고도 불리는 하얀색 나프탈린을 뿌리면 어느정도 효과가 있지만, 늘상 나타나는 뱀을 막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그닥 해롭지 않은 가든 스네이크가 대부분이라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혹 물리면 물린 부분을 우선 빨아내고 동여맨 채로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죠.
어쨌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분들은 플로리다에 뱀이 많아서 이사 오기를 꺼리기도 한다는데요, 이런 분들에게 흔히 권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고, 갈 곳 많고 놀 곳 많은 플로리다에서 살려면 뱀하고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네요!" 그렇겠지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는데요, 뱀과 '동무하며' 지내는 수밖에요.
저도 처음에는 뱀만 보면 일단 도망했다가 재빨리 삽이나 몽둥이를 들고 나와서 사정없이 후려치곤 했습니다. '뱀잡는 여자'를 쓴 한혜영 시인은 "여자나이 몇 살이면 뱀을 때려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라며 "뱀 한 마리 잡는 사이에 부쩍 늙어버린" 자신을 자탄했지만, 저는 제 앞에 축 늘어져 있는 뱀을 노려보며 '젊음'을 대견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때부터 저는 '뱀 잡는 남자'이기를 포기했습니다. 놓치기 일쑤여서 아예 자주 '패스, 패스,!'하다 보니 어느때부터는 '관조'하게 된 겁니다. 더구나 해를 끼치지 않는 뱀들이라면, 굳이 세상에서 가장 독하다는 '인간의 독기'를 품고 죽이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멀찍이 쳐다보며 "아이고, 어여 가라, 어여 가!" 그러며 여유를 부리곤 합니다.
딴은, 조물주가 처음 만물을 창조했을 때에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이좋게 살도록 했던 것인데, 뱀과 인간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화의 질서가 깨지면서부터는 '천적' 관계가 되어서 죽자사자 서로를 '퇴치'하겠다고 나선 것일 테지요.
아, 어떤 선견자는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끄떡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리되면 밭두렁에 나타난 가든 스네이크 정도를 보고 지레 놀라는 일은 없겠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뱀과 함께 살아가는 것, 제법 의미있는 체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