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성세와 인해전술
뉴스로=등촌 칼럼니스트
목회은퇴 후 5년만에 한국교회에 가봤다. 그 동안 교회를 안 다닌건 아니다. 럿셀교회라는 미국교회에 다녔다. 한국교회목회40년, 미국교회출석 5년. 안 나간 5년동안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한국교회에 갈일이 생겼다.
“은미집사가 나가는 한인교회에서 오는 주일 5시에 권사취임식을 한데요. 5년동안 미국교회만 다녔으니 이참에 한국교회 구경 좀 가보자구요.”
라과디아공항 근처에 한인교회가 있었다. 2천석규모. 뉴욕에는 2천석짜리 대형한인교회가 네 개나 있다. 내가 다니는 미국교회는 5백석짜리다. 그런데 뉴욕역사보존기념건물이다. 2천석이니 당연히 역사유산기념물로 남겠지? 차를 몰고 들어가 보니 라스베가스의 호텔같은 분위기다. 교인을 실어 나르는 여러대의 교회버스들. 호루라기를 불어대면서 뛰어다니는 주차 안내자들.
실제로 엘머스트의 어느 교회는 부흥되자 교회를 술장사꾼에게 팔아넘기고 넓은데로 나갔다. 팔린 교회에 남미스타일의 대형술집이 들어와 성업중이다. 역사의 숨결이 남아있지 않은 교회는 아무리 많이 모여도 유행가 1절로 끝나게 마련이다.
예배시간이 되자 20명의 찬양팀이 나와 복음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옛날 전도관수법이다. 남대문교회 박태선집사는 김치선목사 부흥회를 따라다니면서 30분간 찬송인도를 했다. 손벽을 치면서 “이기쁜 소식을 온세상 전하세”를 부르면 성령불이 내리고 앉은뱅이들이 일어났다.
나도 잘나가던 시절 그랬다. 텍사스에서 만난 이용주목사.
“제가 고등학교때 이목사님이 저희 교회 오셔서 부흥회를 하셨습니다. 설교전에 강대상을 치면서 ‘이기쁜 소식을’ 찬양하는데 목사님손바닥에서 파랗고 하얀불이 슉슉 나오는 거예요. 그때 고꾸라져 신학교에 가서 미국유학까지 왔지요.”
권사가 된 형수의 간증.
“형님따라 억지로 끌려 다니는데 지겨웠지. 40일기도 끝낸 도련님이 안중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됐어. 손벽을 쳐가면서 ‘이기쁜 소식’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슬픈구석이 하나도 없는 찬송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이기쁜 소식’을 참 많이 불렀다. 송장을 앞에 놓고 부르면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는듯 시퍼렇던 시신(屍身)이 부드러운 어린애살결로 바뀌곤 했다. 지금은 못 부른다. 대신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처럼 감상적인 트로트 복음성가를 부른다. 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교회는 아이돌그룹처럼 아예 랩과 째즈풍으로 부르고 있었다. 교인들은 지겹게 졸고있었다.
30분이 지나자 담임목사가 나와 개회기도를 했다. 개회기도만 하면 좋으련만 임직자들을 위한기도, 47주년이 되는 교회기념일기도까지 하고 있었다. 헌금기도자도 식사기도자도 나도 질세라! 담임목사 따라 하기였다.
70명 성가대는 일류였다. 쥴리아드 맨해튼음대 유학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국립합창단수준이었다. ‘대장간의 합창’ 비슷한 대곡을 찬양하는데 귀가 아팠다. 교회천정이 낮아 70명이 질러대는 고음과 화음을 제대로 흡수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6명이 부르는 헌금송은 금상감이었다. 음향시설이 6명합창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목사와 지휘자가 그걸 모를까? 허장성세(虛張聲勢)를 좋아하는 교인들에게 많게만 보이려고 인해전술(人海戰術)로 세를 과시하는구나!
한국교회의 예배는 옛날 그대로였다. 기복설교, 기복기도, 인해전술성가대. 2부로 치룬 임직식 행사도 그랬다. 임직안수기도는 메뉴얼북에 나온 기도문대로 해야한다. 그런데 가정심방때 빌어주는 만리장성 축복기도다. 지루한 축사, 삼천포로 빠져버린 권면사. 다 알아듣는 우리말로 하는 한시간 예배가 영어로 하는 2시간짜리 미국교회예배보다 지루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찬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미국교회 나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5년전 케네디공항 뒤에 있는 파라커웨이(Far Rockaway)로 왔다. 노인아파트를 신청했는데 시영아파트가 걸렸다. 걸어서 40분거리에 한인 90세대가 사는데 한인교회가 없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은 100세대인데 한인교회가 6개나 되는데. 노인아파트에 사는 은퇴한 노인들이라 헌금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참에 미국교회로 나갑시다. 청교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미국교회로...”
아파트앞에 순복음교회가 있었다. 1년간 다녀 봐도 찬송이 없다. 성탄절날 겨우 한번 부르는데 그것도 ‘동방박사 세사람’을 째즈풍으로 부르고 있었다. 청교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예배를 3시간 참석하고 나면 녹초가 됐다.
타운안내를 찾아보니 뉴욕시 역사유산기념교회당이 있었다. 건물만 봐도 맘에 들었다. 110년전에 럿셀여사가 35만불을 헌금하여 지은 교회다. 지금가치로 1억달러가 넘는 거금이다. 5백석규모인데 예루살렘성전처럼 정성을 다해 꾸몄다. 건물에 청교도 정신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하게 흐르고 있었다. 예배분위기는 더했다. 150명정도 모이는데 95%가 흑인이다. 의사 교수들로 정장을 하고 나오는 화이트칼러들이다.
예배순서가 30가지가 넘는데 사회자가 없다. 남녀노소가 예배순서에 참여한다. 사도신경 주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기도는 청교도시절에 사용하던 기도문을 낭송한다. 역사와 신앙이 녹아있는 명문들이라 언제 읽어도 감동이다. 초등학생이 헌금함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중학생들이 강단에 올라가 성경을 읽기도 한다. 20분설교하는 목사는 항상 후드를 걸친다. 청교도 흔적처럼.
이교회의 자랑은 음악이다. 14번정도 찬양을 한다. 4층높이의 천정은 카네기홀처럼 음향효과 만점. 전교인이 포르테로 후렴을 부를때는 신고산이 우르르 무너져내리고 바닷물을 가르고 태양이 떠오르는 감동이다. 솔로 듀엣 트리오 12명의 성가대가 일류다. 레파토리는 청교도시절의 그레고리안성가나 클래식. 난 주일마다 한시간을 걸어서간다. 고향시절의 주일학생처럼. 럿셀교회를 다녀오던 첫날 아내가 말했다.
“카네기홀음악회에 다녀온 기분이어요. 영어는 잘 못 알아듣지만 소프라노 스톤여사가 부른 ‘깊은 강’ 들은 것만 갖고도 본전을 뽑은 것 같아요. 세속적인 유행으로 부흥되는 교회보다는 청교도정신이 남아있는 기독교가 좋아요.”
우리부부가 다니고 있는 미국교회
*뉴스로 칼럼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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