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순국지도 모르는 韓심정부
뉴스로=윌리엄 문 칼럼니스트 moonwilliam1@gmail.com
미국 신문에 대한민국(Ta Han) 임시정부의 새 헌법이 공포(公布) 되었다고 처음으로 보도된 것은 1919년 6월 6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헤럴드 데모크랫 신문 등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신분제, 신체 체형, 매매춘 그리고 사형제 등을 폐지하고 만인의 평등권 등을 헤드라인으로 기사화 했다. “한국국가 연합의 총무 데이비드 리(David Lee)는 임시 내각과 대표단들에 의하여 1919년 4월 27일 헌법을 공포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승만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며, 이 날이 29년만의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년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히 한국 전체를 대표한 중앙정부임을 공포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완전히 일제로부터 국권을 완전히 회복하여 1948년 8월 15일 광복절에 출범한 초대 이승만 대통령 정권은 ‘대한민국 건국 또는 국가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정부수립축하식’이라고 했으며 이날의 기념우표도 ‘대한미국정부수립기념’이라고 발행을 했다. 정부의 관보 제 1호도 발행일자를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표기했다. 더하여 독립절이 아니고 광복절이라고 했으니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역사관에 대하여 찬탄하고 싶다.
이날 이 대통령은 “외국귀빈 제씨와 사랑하는 나의 동포 여러분! 8월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는 것입니다, 이날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온 사실이 실현된 것입니다” 라고 대한민국정부수립선포를 재외동포와 함께 축하면서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했다.
1919년 9월 17일 제6차 임시의정원 폐원식 기념 사진
미국도 독립기념일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여 정부를 구성한 1789년을 기점으로 하지 않고 독립을 선포한 1776년 7월 4일을 원년 원날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3월 1일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2016년은 대한민국 건국 97년, 광복 71주년이 바른 역사관이고 단일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지 않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평범하고 진리와 숭앙적 역사관이 아닐까.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7월 24일 중앙청에서 열린 취임사에서 남녀 동포들의 눈물들을 언급하면서 “목석간장(木石肝腸)이 아닌 만치 나도 뼈에 사무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오,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 이어서 표명되는 까닭입니다”라고 심연(深淵)의 눈물 속에 국권 광복의 희열을 강조하고 있었다. 더하여 “나의 사랑하는 3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 용진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시다”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하면서 ‘대한민국 30년 7월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라고 취임사를 마쳤다.
단일 역사 교과서를 추진하는 박정권 하에서 안중근의사가 투옥되고 순국(殉國)한 장소도 모르는 참모들이 눈앞에 보이고 광화문 대로에서 석고대죄(席藁待罪)하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민초들 심연을 헤아려 본다. 이정부의 권력자들은 1948년도를 건국절로 공식화 했을 경우 일어날 대한민국의 정체성, 국제 외교, 국내 법체계 그리고 일본 제국과의 관계성을 심도있게 분석하였는지 알고 싶다. 신건국절이 되면 한반도는 조선의 멸망 후 광복까지 무주공산(無主空山) 지대가 되어 일본제국의 침략을 합리화 시켜주는 데 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존재하는 위대한 광복투쟁의 역사도 말살(抹殺)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안중근 자손들은 미국에 살면서 한국어도 잃어버리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가슴이 터져온다. 그들을 고국에 편히 모시지 못하는 1948년 건국절 주창자들의 집안은 3대가 흥하는 그곳 출신들(?)임을 세탁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본은 매년 독도는 우리 땅 외치고 홍보를 하고 빌라 한 채 값 거출금을 받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거론 못하는 불가역적의 그물망에 걸려든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 유언에서 유해를 하얼빈(哈爾濱)에 매장했다가 고국으로 이장해달라"고 했다. 이런 사실도 제대로 파악 못하여 광복절 연설문에 오류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한국 박대통령을 조롱케 만든 보수파 정권의 건국절은 국격을 격하시키고 말 것이다. 더하여 광복절 식장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빵점을 받았다는 증거에 애통해하고 있다. SNS 논란이 되어 그때야 오류를 수정했다는 보도를 보고 아연질색하면서 이 정도의 역사관으로 국가을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한일위안부 협상은 새정부에서 파기 대상 1호일 것이다.
역사를 왜곡 과대 포장하려고 날리 치는 나라들 세상 속에 1.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2. 위대한 광복투쟁사 임시정부 정신의 계승을 단절 시키고 3. 일제에 한반도 침략 사면령을 내리려는 그들의 저의가 역사의 진리의 거울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이름으로 민주 평화 헌법의 이름으로 그들의 친일매국행위가 만천하에 밝혀 질 것이며 진정한 민족 민주 평화 정부가 수립된다면 그들은 법적 책임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오늘도 민중의 도전과 응전속에 긍정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이 순간에도 목도(目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12월 3일 귀국한 임정 요인들 <이상 사진 www.ko.wikioedia.org>
* 뉴스로 칼럼 ‘윌리엄 문의 IT세상’ 링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wil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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