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차량조차 마주치기 힘든 황량한 내륙 오지의 도로를 달리다가 마을을 만나면 다시금 인간세상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곳의 호텔 펍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이다.
호주 내륙 오지, 황량한 아웃백의 오아시스들
한여름의 호주 내륙은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진다. 견디기 힘든 햇살과 뜨거운 바람, 조금만 움직여도 갈증이 느껴지는 이 삭막한 아웃백(outback)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음료 이상 반가운 것도 없을 듯하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얼음박스에 채워진 맥주라면... 한낮의 무더위를 견디는 데 있어 이보다 더 나은 게 또 있을까.
오지 지역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트럭기사들, 양털깎기 농부들, 광산 근로자들, 오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펍(pub)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호주 여행작가 중 다니엘 스콧(Daniel Scott)씨는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및 노던 테러토리(Northern Territory)의 먼 오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WA, NT는 물론 호주 각 주의 아웃백을 찾아다니며 만났던 ‘아웃백의 오아시스’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10개의 펍을 꼽았다. 그는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대중음악의 가사 중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라는 구절과 함께 이어지는 노랫말을 ‘but, you might never want to leave’라고 약간 변형해 언급, 이 오지의 펍들이 그의 기억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한편 스콧씨가 언급한 오지의 펍들 가운데는 다른 여행 작가가 다룬 곳과 겹치거나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미디어에 소개된 명소(?)도 있다.
1. Iron Clad Hotel, Marble Bar, Pilbara, WA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북서쪽 내륙, 금광이 발견되면서 형성된 필바라(Pilbara) 타운, 마블 바(Marble Bar)라는 지역(suburb. 인구 약 200명)에 있는 호텔이다. ‘아이언 클래드’(Iron Clad)라는 말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미 광부들이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에서 무역을 위해 이용됐던 보트에 붙인 이름으로, 이 아웃백 광산타운의 펍 이름으로 차용됐다.
마블 바는 호주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지역으로 공식화된 타운이다. 지난 1923-24년 이곳은 한낮의 기온이 섭씨 37.8 이상에 달하는 날이 무려 160일 연속으로 이어진 기록을 갖고 있다. 또한 아이언 클래드 호텔은 이 지역을 강타한 사이클론 및 화재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126년의 역사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골이 진 철판의 지붕, 페인트 칠한 벽의 기포들이 그대로 남은 낡은 호텔의 펍이지만 용광로처럼 뜨거운 여름, 이 펍은 서부 호주 아웃백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로또당첨만큼이나 반가운 곳이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북서부 내륙, 필바라(Pilbara) 지역의 마블 바(Marble Bar) 타운은 호주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블 바(Marble Bar)에 있는 126년 역사의 아이언 클래드(Iron Clad) 호텔. 인구 200여명의 이 마을 사람들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명소(?)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펍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중계를 즐기는 사람들. 오지의 사람들에게 펍은 대중술집이자 집회장소이며 유일한 오락공간이다.
2. The Prairie Hotel, Parachilna, Flinders Ranges, South Australia
남부 호주(SA) 플린더스 레인지(Flinders Ranges) 지역에 자리한 프레이리 호텔(The Prairie Hotel)은 지난 6월 소개한 ‘Australia’s strangest road signs’(본지 1195호), 7월에 다룬 ‘10 weirdest outback experiences in Australia’(본지 1202호)에서도 황홀한 석양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언급된 바 있다. 플린더스 산맥은 남부 호주 주에서 가장 큰 산악지대로, 애들레이드(Adelaide) 북쪽 200킬로미터 지점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 지역 파라칠리나(Parachilina)에 있는 이 호텔은 1876년 펍 라이센스를 취득해 140여년을 이어온 곳이다. 처음 문을 연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난 1991년 ‘Fargher’ 가문이 매입한 뒤 독특한 마케팅으로 유명해졌다. ‘Australia’s strangest road signs’에서도 언급했듯이 파라칠리나의 오지에 호텔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에 낙타, 이뮤(Emu), 캥거루 그림을 등장시켜 야생 음식을 제공한다는 식의 마케팅이 오지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 것. 특히 프레이리 호텔은 저녁 해넘이의 멋진 풍경을 즐기는 명소로도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호텔이 자리한 지역의 거주 인구는 7명. 그럼에도 이 호텔이 잘 유지되는 것은 남부 호주 내륙을 여행하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플린더스 산맥 일대의 유일한 호텔 겸 펍이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남부 호주(South Australia) 북부, B83도로 인근의 파라칠리나(Parachilina)에 있는 프레이리 호텔(The Prairie Hotel). 오지의 석양을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876년 펍 라이센스를 취득해 140여년을 이어온 프레이리 호텔 펍은 야생의 동물 요리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B83 도로 상에 이뮤, 낙타, 캥거루 고기를 제공한다는 프레이리 호텔 표지판(사진).
3. Palace Hotel, Broken Hill, NSW
남부 호주 파라칠리나(Parachilina)에 비한다면, NSW 서부 내륙 브로큰 힐(Broken Hill)은 그야말로 아주 번잡한 대도시라 할 만하다. 지금은 인구가 줄었지만, 호주 최대 광산기업 BHP(Broken Hill Proprietary)를 태동시킨 광산도시로 3만 명 이상이 거주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의 팰리스 호텔(Palace Hotel)은 이 도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호주 유명 영화인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로도 유명세를 탄 곳이다.
호텔 사방으로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으며 내부의 화려한 벽화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Priscilla suite’이라는 이름의 48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의 펍에서는 정기적으로 라이브 공연도 연다.
NSW 주 내륙의 광산도시 브로큰 힐(Broken Hill)에 있는 팰리스 호텔(Palace Hotel). 19세기 호주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팰리스 호텔 내부를 장신한 벽화들. 무명의 화가들이 한 잔의 맥주를 얻어 마시며 ‘후딱’ 그려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4. Adelaide River Inn, Northern Territory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 다윈(Darwin)에서 남부 캐서린(Katherine)으로 가는 스튜어트 하이웨이(Stuart Highway) 상의, 다윈에서 10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애들레이드 리버(Adelaide River) 타운에 자리해 있다. 인구 약 200명의 작은 마을에 있는 이 호텔은 열대의 숲으로 조성한 정원과 잔디로 아웃백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을 갖고 있으며 스튜어트 하이웨이를 오가는 대형차량 운전자들, 인근 지역민은 물론 북부 호주 여행자들에게도 아주 잘 알려진 호텔이다.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의 주요 도로 스튜어트 하이웨이(Stuart Highway)는 백인 정착 초기 탐험가들의 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다윈(Darwin)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애들레이드 리버(Adelaide River) 마을의 호텔.
주민 200명 남짓한 오지 마을의 호텔이 오래도록 문을 열고 있는 것은 여행자들 때문이다.
5. Birdsville Hotel, Queensland
남부 호주(SA)와의 경계지점, 호주에서 가장 건조한 지대인 심슨 사막(Simpson Desert) 인근 버즈빌(Birdsville)에 있는 호텔이다. 매년 9월초 버즈빌 레이스(Birdsville Races)로 잘 알려진 퀸즐랜드(Queensland) 서부 내륙 오지의 작은 마을에 자리해 있다. 거주자가 없는 호주 중앙부 내륙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거주 인구는 고작 100여명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연례행사 ‘버즈빌 레이스’는 단 이틀 동안 이 지역에 7천명 이상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이벤트는 오지에서 응급 의료 지원을 펼치는 ‘Royal Flying Doctor Service of Australia’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목적이다.
내륙의 심슨 사막(Simpson Desert) 인근에 자리한 버즈빌(Birdsville) 타운의 유일한 호텔. 내륙으로 향하는 사막 여행자들에게 있어 이곳은 마지막 마을이자 마지막 펍이기도 하다.
퀸즐랜드 먼 내륙의 작은 오지 마을이 호주 전역에서 유명세를 타는 것은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버즈빌 레이스’(Birdsville Races) 때문. 이벤트가 열리는 매년 9월 이틀간, 인구 100명의 이 마을은 순식간에 7천여 명으로 북적거린다.
6. Family Hotel, Tibooburra, NSW
티부버라(Tibooburra)는 NSW 북서부 내륙, 퀸즐랜드와 남부 호주 경계 지점의 작은 오지 마을로, 브로큰 힐(Broken Hill)에서 300킬로미터, 시드니에서는 북서쪽으로 1천20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거주 인구는 약 200명에 불과하지만 음식점, 숙소, 주유소가 있으며, 대부분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부 호주에 자리한 거대한 에어 호수(Lake Eyre)로 가는 길목에 있어 사철 여행자들이 많은 편. 호주 유명 예술가들이 작업한 벽화도 이 작은 타운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이곳의 패밀리 호텔(Family Hotel)은 호주 아웃백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으로, 푸짐한 음식과 호텔 운영자인 윌리엄 & 멜리사씨의 넉넉한 친절도 이 호텔에 대한 기억을 오래도록 남게 해 준다.
퀸즐랜드(QLD) 및 남부 호주(SA)와 경계를 이루는 NSW 주 서부 티부버라(Tibooburra) 마을은 여행자 의존도가 높은 곳이다. 이곳의 유일한 펍인 패밀리 호텔.
내부 벽을 장식한 그림들은 호주 유명 화가들이 직접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7. The Daly Waters Pub, Northern Territory
데일리 워터스(Daly Waters)는 다윈에서 남쪽으로 620킬로미터, 사반나 웨이(Savannah Way)와 스튜어트 하이웨이(Stuart Highway) 교차 지점에 있는, 인구 약 50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당 규모의 미군이 주둔했던 곳이며 이 지역민들이 주장하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공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항공기가 운항되던 초기, 이곳은 런던으로 가는 항공기가 착륙했다가 가는 거점이기도 했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이곳에 자리한 데일리 워터스 펍(Daly Waters Pub) 때문. 전형적인 오지의 펍 형태에 내부 벽은 온통 여행자들이 남긴 물품들로 장식해 놓았는데, 이것이 또 다른 여행자들을 불러오고 있다. 이 장식물 가운데는 명함, 해외 여행자들이 남긴 각국 지폐, 티셔츠, 모자, 심지어 여성용 속옷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북부 호주 데일리 워터스(Daly Waters)에 자리한 ‘데일리 워터스 펍’은 호주 오지의 유명 펍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방문객들이 남긴 명함, 각종 메모, 각국 지폐, 티셔츠, 모자 등으로 벽을 장식해 놓았으며, 천장에는 여성 여행자들이 남긴 속옷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다윈(Darwin)에서 남부 캐서린(Katherine)으로 가는 스튜어트 하이웨이(Stuart Highway), 다윈에서 106킬로미터 지점의 애들레이드 리버(Adelaide River)를 지나 다시 50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 만나는 마을이 데일리 워터스이다. 1930년부터 문을 연 데일리 워터스 펍.
한낮부터 더위를 식히려는 여행자들이 찾는 이 펍에서 만취한 이들에게 제공한다는 택시 서비스. 삭막한 오지에서 이런 유머는 한층 빛을 발하기도 한다.
8. Imperial Hotel, Ravenswood, Queensland
퀸즐랜드(QLD) 북부 광산도시 타운스빌(Townsville) 남쪽 90킬로미터 지점의 레이븐스우드(Ravenswood)에 있는 펍으로, 금광개발 당시 문을 연 두 곳의 펍 가운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펍이다. 레이븐스우드의 현재 인구는 약 200명 정도. 한때 금광으로 크게 번성했던 도시로 지금은 거의 고스트타운이 되었지만 퀸즐랜드 북부를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여행 작가인 다네일 스콧씨는 “밤에는 귀신이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이 곳 여행자들 사이에 많이 떠돌고 있다”며 “확인을 하고 싶다면 직접 이 호텔에서 밤을 보내시라”고 적극(?) 권고하기도.
퀸즐랜드 북부, 광산도시 레이븐스 우드(Ravenswood)에 있는 ‘임페리얼 호텔’(Imperial Hotel). 금광개발 당시 세워진 호텔이며 당시 만들어진 두 개의 펍 가운데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온 펍이기도 하다.
‘임페리얼 호텔’의 펍 내부. 다른 오지의 펍과 유사하게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갖가지 물건들을 장식해 놓았다.
9. Silverton Hotel, Silverton, NSW
브로큰 힐(Broken Hill) 북서쪽 26킬로미터 지점에 자리한, 인구 8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은이 발견돼 형성된 마을이지만 지금은 쇠락한 채 여행자 의존 비즈니스가 주를 이룬다. 호주 시골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실버튼 호텔은 여러 광고에도 등장했으며, 멜 깁슨의 이름을 알린 영화 <매드맥스>를 비롯해 호주 오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주요 촬영지로 사랑받은 곳이다. 이 호텔 밖에는 특별하게 변형시킨 지역 예술가들의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다.
NSW 내륙, 브로큰 힐(Broken Hill)에서 북서쪽으로 2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인구 80명의 오지 마을 실버튼(Silverton)에 있는 ‘실버튼 호텔’은 초기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 유명 광고 또는 영화 촬영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호주 오지의 펍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실버튼 호텔의 펍 내부.
10. Pub in the Paddock, Pyengana Valley, Tasmania
파이엔가나(Pyengana)는 타스마니아 북동부, 삼림지대에 자리한 작은 농촌 마을로 인구는 약 120명이다. 이곳에 자리한 ‘Pub in the Paddock’은 1880년 허가된, 타스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펍이자 호텔로, 호주 시골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숙소. 이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활용한 음식이 돋보인다. 한적하면서도 빼어난 자연 풍광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펍이며, St Columba Falls 등 주변에 볼 거리도 많다.
타스마니아(Tasmania) 주 동북부 파이엔가나 밸리(Pyengana Valley) 삼림지대 안에 자리잡은 ‘Pub in the Paddock’. 한적한 시골 마을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아 일부러 찾는 이들도 많다.
‘Pub in the Paddock’의 발코니에서 바라본 파이엔가나 밸리 풍경.
‘파이엔가나’의 농장 지역에 서 있는 ‘Pub in the Paddock’ 표지판.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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