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정원 9] 플로리다에서 키우는 '여수 돌산갓' 이야기
▲싱싱 펄펄한 여수 돌산갓 |
지하철에서 내려 기웃 기웃 한참을 걷다보니 씨앗가게들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씨앗 보다는 좀 희귀한 씨앗을 구하겠단 생각으로 달래, 냉이, 고들빼기, 도라지 씨앗 등을 주문했더니 주인 아저씨가 "이거 한 번 심어보라"며 쥐어 주셨습니다. '여수 돌산갓'이었습니다.
주섬주섬 이런 저런 씨앗을 주어 담아서는 여행백에 넣어 가지고 왔는데요, 씨앗을 들여오기 위해선 공항에서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몰래 가져오다 적발되면 벌금은 물론 '블랙 리스트'에도 오른다고 합니다.
문익점이 목화씨 가져오듯 챙겨온 씨앗들을 2~3년 정도만에 다 써 버려 바닥이 날 즈음에서야 돌산갓 씨앗이 생각났습니다. 2 월말께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돌산갓씨를 뿌렸는데 약간 쌀쌀한 날씨탓이었는지 두어달 후에서야 움이 텄습니다. 좀처럼 자라지 않기에 속으로 '2~3주 더 기다렸다가 여차하면 뭉개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터입니다.
그런데 따뜻한 봄날이 계속되자 녹색잎이 쑥쑥 자라더니, 왠걸 4~5월이 되니 온통 밭이렁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 '타라 농장'에서 잘 자라고 있는 여수 돌산갓 |
며칠 후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돌산갓잎에 돼지고기를 먹다 아악!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얼마나 맵던지 매운 기운이 콧속을 지나 눈께로 가면서 눈물을 찔끔거리게 했고, 드디어는 골속을 때리는 듯했습니다. 아 그런데요, 그 매운 돌산갓잎 두어 다발을 그날 저녁식사에서 모두 헤치워 버렸습니다. 은근 밥도둑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끼니때마다 먹고 싶어질 정도로 씹는 순간 알싸하고 매큼하고 톡 쏘는 맛에 어느새 중독이 되었습니다. 돌산갓의 독특한 매운 맛은 정신은 물론 입맛도 번쩍 들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내를 부추겨 김치도 담아 먹게 되었는데요, 글쎄 이게 설익으면 설익은데로 매큼한 풋내가 입에 감겨오고, 묵으면 묵은대로 쫄깃쫄깃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입니다.
▲ 다듬어 놓은 여수 돌산갓. |
4~5년 전 쯤 서울을 방문한 길에 우연히 신설동 반찬가게 뒷골목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혹 여기에도 돌산갓 반찬거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언뜻 들어 이 가게 저 가게 반찬 진열대를 두리번 거리며 걸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반찬가게 앞을 지나치다 앞치마 두른 아주머니가 급히 다가 오기에 얼른 말을 꺼냈는데, '돌산갓'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 거 뭐시냐 톡 쏘는 거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어마마 아자씨, 톡 쏘는 것은 빼갈인디 여그와서 그걸 찾으면 어쩐데요?"
"하이고 참, 아무렴 반찬가게 와서 빼갈을 찾을라고요!"
"시상에, 농도 못하요? 뭣이냐,시큼 매큼한 홍어를 찾는거네요. 맞죠?"
"에잇참, 그만 두세요!"
그러고는 한 참을 걸어가다 어느 가게 좌판에 걸쭉하고 시커멓게 버무려 놓은 돌산갓 짱아찌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5천원을 내고는 얼른 한가닥을 입에 가져 갔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씩 웃으며 밥 한공기를 가져다 주기에 양복 입은 체면을 무릎쓰고 달달 짭짤한 돌산갓 짱아찌 한사발을 후다닥 먹어치웠습니다(꿀깍!).
▲ 먹음직하게 담아놓은 돌산갓 갑치 |
돌산갓을 키우며 종종 생각합니다, 플로리다 모래땅에서 사시사철 잘 자라서 매콤하고 신선한 맛으로 몸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와 같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을 푸념하며 그럭저럭 무기력하게 살기보단 매콤 새콤한 맛으로 주변 세상을 이롭게 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