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이계선칼럼니스트
LA천재 오인동박사가 인천 제물포 출신인걸 알고 물어봤다.
“우리 교인중에 제물포고의 중학교인 인중(인천중학교)출신 지홍해란 분이 있었어요. 나보다 6살 연상인데 ‘예수님의 수제자는 바울이요 이계선의 수제자는 지홍해’라고 나팔을 불고 다녔지요. 난 목회를 은퇴했고 그분은 돌아가셨지만 제물포출신 오박사를 만나니 그립네요. 혹시 지홍해를 아시오?”
“알다마다요. 중학교 3년 선배라서 만나본적은 없지만 제물포의 전설적인 천재로 소문난 분이지요. 그분은 안하무인 유아독존이라서 남을 인정하지 않는 분인데 이목사님을 스승으로 모셨다니? 이목사님이야 말로 천재중의 천재인 모양입니다.”
“인천중시절 삼년동안 전교일등에 영어 수학을 거의 만점을 받았다는 지홍해선생은 천재입니다. 하바드와 MIT에서 강의하고 인공고관절수술에 관한 영문책을 7권이나 내고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통일대박론을 강연하는 오박사는 세계적인 천재이구요. 난 동도공고 야간 15개월을 다니고 중졸도 들어가는 구식신학교 4년 다닌게 전부입니다. 바보코스이지요. 지홍해선생이 바보의 수제자가 된 사연이 있어요.”
지홍해 지홍해. 천재지홍해를 생각하면 난 행복한 바보가 되는 회상에 젖는다. 뉴욕 퀸즈 변방 릿지우드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상조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동네에 서울법대를 나온 천재가 있는데 한번 전도해주시지요.”
그가 지홍해였다. 서울법대를 나왔지만 월북한 형 때문에 연좌제로 묶여 버렸다. 관계나 정계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경복학원 영어대표강사생활을 했다. 40년전 사장보다 많은 월 2천5백만원수입. 그래도 출세길이 막혀 세상을 원망하며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탕진(蕩盡)하다가 당뇨병이 걸렸다. 아내가 죽자 외동딸 은주를 데리고 누나가 사는 뉴욕으로 이민 온 것이다. 늙고 병들었지만 지홍해는 여전히 사자였다. 전도하려고 찾아간 목사에게 던진 선전포고.
“난 교회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강남에 있는 소망교회를 6년간 다녔어요. 9만명이 모이는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이지요. 시와 수필이 가미된 곽선희목사의 지성적 설교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귀에는 달콤하게 쏙쏙 들어오는데 가슴으로 믿어지지가 않는거예요. 6년동안 개근생노릇 하다가 그만 졸업하기로 했지요. 초등학교도 6년졸업, 중고6년, 대학 대학원 6년 아닙니까? 6년 착실히 다녔으니 소망교회 졸업하자. 그때 아예 기독교를 졸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이 전도 오셨으니 나도 답례차 한번 나가주지요.”
맥이 풀렸지만 그냥 돌아갈수가 없었다. 에라, 먹지못할 수박 찔러나 보자! 단골찬송 “이기쁜 소식을 온세상 전하세”를 손벽치면서 불렀다. 성경을 읽은후 달려들어 머리에 안수기도를 했다. 은혜가 내리면 머리가 카스테라처럼 말랑말랑해진다. 지홍해씨의 머리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날정도로 무쇠바위였다. 서둘러 끝내려는데 살짝! 향기바람이 스쳐갔다. ???...구원 받는다는 건가? 다음주일에 한번교회 나가겠다는 말에 성경과 찬송을 주고 나왔다.
다음 주일 찾아갔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거칠게 전도한게 후회됐다.
(어차피 안 나올 사람 점잔케 대해줄 걸, 바보스럽게 안수기도로 윽박질러 놨으니!)
정확히 1년후 주일예배 때였다. 지홍해씨가 나왔다. 누님과 딸을 앞세우고. 간증.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웠어요. 내가 릿지우드교회로 나가야겠구나. 그러나 천하의 지홍해가 아무렇게 나갈수야 없지. 성경을 읽고 나가자. 목사님이 주신 영한대조성경을 영어와 한글로 읽고 관주로 연결해가며 공부했어요. 자는것 말고 하루종일 연구하며 읽었지요. 일년동안 신구약 6번 읽었습니다.”
그는 천정이 떠나가라 찬송했다. 설교시간이면 어린애처럼 울었다.
“전에는 귀로 들려오던 성경과 진리가 이제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고 믿어집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수제자라면 지홍해는 이계선의 수제자입니다.”
“좋습니다. 군자삼락(君子三樂)에 득천하 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 삼락야(三樂也)라-천하에 영재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니 세 번째 즐거움이라-했어요. 바보목사이계선의 수제자 지홍해천재! 참으로 멋진 사제지간입니다.”
“하하하하..허허허허..”
우리는 바보처럼 웃었다. 그렇게 해서 천재는 바보의 수제자가 됐다. 내가 천재였다면 지홍해는 절대로 내 제자가 되지 않았을것이다. 수제자는 바보처럼 스승을 졸졸 따라다녔다. 전도 심방하는 날엔 던킨도너츠집으로 끌고가 꼭 슈퍼 쿨라타커피를 사줬다. 바보스럽게 겨울에도 슈퍼 쿨라타다. 냉커피지만 비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뉴저지엘 가자고 졸랐다.
“뉴저지 호텔에서 이수성총리와 이문열소설가의 만찬강연이 있습니다. 내가 서울고를 나와 서울법대에 들어가보니 경기고출신들이 잡고 있더라구요. 경기고출신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내가 공부실력으로 경기고출신들을 흔들어놨어요. 그리고는 서울고를 나온 법대 1년선배 이수성 이강석(이승만양자)과 3인방을 만들어 서울고전성시대를 이룩했지요. 이수성선배가 대통령후보지명에 실패하여 머리를 식힐겸 왔어요. 목사님은 이문열심사로 소설가로 등단했으니 목사님의 등단소설이 실려있는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를 이문열씨에게 전하면서 인사하자구요.”
식사시간에 로열테이불에 4인이 둘러앉았다. 이수성 지홍해 이계선 이문열. 지홍해씨는 이수성총리와 나는 이문열씨와 음식을 들면서 대화를 나눴다. 친필 싸인을 한 “멀고먼 알라바마”를 가방에서 꺼냈다가 도로 넣어버렸다. 그가 내 작품을 심사했지만 나보다 2년 연하다. 아랫사람에게 아첨하는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다. 목회를 은퇴하고 릿지우드를 떠났는데 어느날 연락이 왔다.
“지홍해집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장례식 설교를 꼭 이계선목사님이 해달라고 유언으로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관속에 성경찬송을 넣어달랬어요.”
지홍해집사가 관속에 누워있었다. 기도하듯 가지런히 모은 두손으로 성경찬송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준 바로 그 성경찬송이었다. 살며시 망자(亡者)의 손을 잡아줬다.
(처음만나 안수기도할 때 보다 더 부드럽고 따듯하구나!)
“아빠와 지홍해집사님이 똑같은 신발을 신으셨네요?” “은범이가 옆에서 잘 봤구나. 그래 그분이 사주셨으니까.”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sarangbang&wr_id=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