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주장하는 이유

(페어팩스=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학교 교수) = “당신들은 안락사가 싫으면 안 하면 된다. 안락사를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현재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성공회 명예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Tutu)가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10월 6일)에 올린 “나는 때가 오면 안락사를 선택하겠다”는 기사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무섭게 호통치고 있다. 또 투투 대주교는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에 올린 글에서도 종교인과 정치인, 국회의원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의 합법화 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한다.
 
tutu.jpg
▲ 투투 대주교. ⓒ 위키 대백과
 
오늘 칼럼은 다음 세 문제를 간단히 짚어보려 한다. 안락사 지지자들의 주장, 필자 가족의 안락사 체험 그리고 안락사 합법화의 세계적 추세 등이다.

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유는 일반 안락사 지지자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강력히 반대하는 가톨릭과 개신교 등과 같은 ‘종교인’으로서 안락사를 지지한다는 사실이 특이하고 의미가 크고 따라서 그 호소가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안락사 지지자들의 주장을 아래에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장기간 불치병을 앓는, 시한부 인생인 환자들의 경우 인공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 그 자체가 큰 고통이고 아픔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산 사람에 대한 ‘연민과 공평성’을 이들 환자에게도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시한부 환자들에게 언제 그리고 어떻게 지구를 떠날지를 선택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

둘, 이런 비참한 삶은 환자의 마지막 존엄성마저 쉽게 파괴한다. 살아 있는 우리의 의무는 이들에게 존엄성을 지키면서 삶을 마치도록 해 주는 것이다.

셋,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가장 귀중한 유산인 자식들에게 본의 아닌 엄청난 피해를 남길 수 있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무의미한 삶의 지속을 위해, 재정적인 손실뿐 아니라 심적 및 육체적 부담을 자식들에게 남긴다는 사실을 알 때 어느 누가 감히 안락사 선택을 주저할 것인가?

넷, 안락사 반대는 사회의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다섯, 안락사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신이 준 생명을 인간이 죽일 권리가 없다”는 논리는 비종교인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적용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종교인은 법률의 강제력을 동원해 그들의 주장을 관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투투 대주교가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 호소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이제 필자의 처제가 안락사를 선택하여 선종한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형부, 저 내일 병원에 들어가요.” 가냘프고 담담하고 평온한 목소리였다. 죽으러 병원에 들어가는 사람의 전화라고 믿을 수 없었다.

7년 전 어느 날 새벽 5시경, 벨기에에 사는 처제의 장거리 전화가 왔다. 벨기에 시각으로 그 전날 밤 11시경이었다. 지난 1년 이상 파킨슨병으로 심하게 고생하던 처제가 이제 거의 온몸이 마비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처제가 담당 의사와 브뤼셀 교구의 신부와 상의한 후 안락사를 선택했다. 몇 개월이 지난 그 날 밤, 내일 병원에서 안락사 주사를 맞는다는 사실을 한국에 있는 필자와 언니에게 전화로 알린 것이다.

“남는 식구들 걱정하지 마시고 평안히 가십시오.” 가장 상투적이고 멍청한 위로(?)의 말로 전화를 마치고, “나에게도 저런 행복한 죽음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을 가진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그 연장선에서, 현재 미국의 페어팩스(Fairfax)에 사는 우리 침실의 큰 거울에 붙어 있는, 40대의 아들과 딸에게 남기는 생전유언(Living Will)의 내용은 이렇다. “아빠와 엄마가 의식을 완전히 잃고 1주일이 지나면, 무조건 인공호흡기를 빼도록 하라.”

마지막으로 안락사의 합법화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전에 유의할 점 두 개가 있다. 첫째 허용된 안락사의 정의와 조건 등이 나라마다 다르다. 둘째 용어가 안락사(Euthanasia), 존엄사(Dying with Dignity), 조력자살(Assisted-Suicide), 선택적 안락사(Aid-in-Dying—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등 용어가 많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안락사가 허용된 나라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알바니아, 콜롬비아, 캐나다, 일본 그리고 현재 안락사 법안을 논의 중인 영국 등과 5개 주(오리건, 워싱턴, 버몬트,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에서 안락사가 허용된 미국 등이다.

필자는 멀지 않은 장래에 많은 나라가 안락사를 합법화할 것으로 전망하며 그렇게 돼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선진국의 노령화 현상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가 급등할 것이며 또 안락사가 온갖 사회의 규범과 제약을 벗어난 인간 본성에 더 가까운 순수한 행위이며 절대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속보: 네덜란드 의회에서 시한부 환자가 아닌, 그러나 ‘더는 살고 싶지 않다(Done with life)’는 사람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하며 워싱턴 D.C. 의회에서 오는 11월1일 캘리포니아의 선택적 안락사(Aid-in Dying)와 비슷한 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필자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이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2010년 은퇴 후 미국 페어팩스(Farefax)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주장하는 이유

    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주장하는 이유 (페어팩스=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학교 교수) = “당신들은 안락사가 싫으면 안 하면 된다. 안락사를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현재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성공회 명예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Tutu...

    투투 대주교가 안락사를 주장하는 이유
  • 짧은 인생, 꾸미지 않고 살 수 없나? file

    디즈니에서 만난 80 노인을 보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오늘 아침 디즈니월드에 갔다가 아침 소나기를 만나 처마 밑에 들어갔다. 마침 내 옆에는 늙은 백인 노인이 디즈니 직원 복장을 하고 우비를 입고 있는데 판초 우의를 거꾸로 입은 줄 모르고 계속...

    짧은 인생, 꾸미지 않고 살 수 없나?
  • 머슴목사가 그리운 시절 file

    머슴목사가 그리운 시절   김명곤     어느 원로 목사님이 머슴출신 목사님을 그리워 하는, 글을 쓰셨네요. 아래를 일구는 사람이 위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반전도 반전이려니와, 어찌보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을 닮기에는 머슴 처럼 좋은 직업이 없...

    머슴목사가 그리운 시절
  • 진오스님과 함께 하는 탁발마라톤 동행기 1 file

    춘천 삼천동 정법사에서 청평리 청평사까지   뉴스로=강명구 칼럼니스트       풍광이 수려(秀麗) 한 곳에서 고독이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치유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오색 창연한 산사의 가을에 한적함 속에서 고단한 마음을 위로하고 풍경소리를 타고 자유로운 ...

    진오스님과 함께 하는 탁발마라톤 동행기 1
  • 최순실의 상자 file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대한민국이 패닉상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모든 권력은 최순실로부터 나온다'라고 고쳐야 할 판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수세에 몰린 박근혜 정권이 ‘개헌’이라는 묵직한 카드를 꺼내 들면서 국면전환을 꾀했으나, JTBC 뉴스룸...

    최순실의 상자
  • 개벽..여성 대통령 시대의 산고  file

    뉴스로=윌리엄 문 기자 moonwilliam1@gmail.com           백악관 취재를 갈 때마다 브리핑 룸내에 딸린 화장실 앞 정말로 작은 긴 테이블 꼭 하나 놓여 있는 자동판매기 앞 일명 간이 식당에 앉아서 갖고 간 커피와 음식을 들면서 백악관 ...

    개벽..여성 대통령 시대의 산고 
  • 국졸머슴도 목사가 될수 있습니까? [1] file

    뉴스로=이계선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부자와 천재를 좋아하는걸 보면 목사님도 뉴라이트목사인 모양이죠?”   “지난번 ‘이철승보다 잘난 부자이승룡‘ ’바보목사의 수제자가 된 천재지홍해‘를 쓴걸 보고 그러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머슴이야기를 써보려고 ...

    국졸머슴도 목사가 될수 있습니까?
  •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 새 점령자 미국에 비수

    [필화 70년 2] 첫 필화 사형수 시인 유진오   ▲ 조선문학가동맹이 1946년 2월 정식 출범을 선언하며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 장면. 당시 유진오는 조선문학가동맹의 문화공작대 제1대 소속으로 활동했다.   (서울=코리아위클리) 임헌영(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 8...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 새 점령자 미국에 비수
  • 문재인이 종북? 뭐묻은 개가 뭐묻은 개 나무라는 격

    정권 부패 물타기-대선용 ‘색깔론’ 당장 멈춰야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뜬금없이 헌법조항을 들먹이...

    문재인이 종북? 뭐묻은 개가 뭐묻은 개 나무라는 격
  • 상대방 지위보다 자신의 책임감이 중요한 사회

    대통령보다 식당 직원이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도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닉슨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었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 그는 제가 살고 있는 곳에 가까운 샌 클레멘테라는 곳에 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상대방 지위보다 자신의 책임감이 중요한 사회
  •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자” file

    김영란법과 자조정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최근 어느 아주머니로부터 “빚 없는 내가 최고의 부자다”라는 할아버지의 글을 잘 읽어 보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신상을 자세히 전한 아주머니는 글 속에 등장하는 하사용 옹의 새마을 운동에서 강조...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자”
  • 노벨상의 온도차 file

    뉴스로-이홍천 칼럼니스트     주요 언론들이 예상한대로 올해는 오스미 요시노리(大隅 良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포가 자신의 단백질을 분해해서 재활용하는 오토파지 현상을 규명한 것이 수상 이유다. 일본은 지난해 오무라 사토시 ...

    노벨상의 온도차
  • 바보목사의 수제자가 된 지홍해천재 file

    뉴스로=이계선칼럼니스트   LA천재 오인동박사가 인천 제물포 출신인걸 알고 물어봤다.   “우리 교인중에 제물포고의 중학교인 인중(인천중학교)출신 지홍해란 분이 있었어요. 나보다 6살 연상인데 ‘예수님의 수제자는 바울이요 이계선의 수제자는 지홍해’라고 나팔을 불...

    바보목사의 수제자가 된 지홍해천재
  • 행복한 가을 file

      뉴스로=신필영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전에도 이미 뇌성마비 시인 김준엽의 시를 보내여 드린적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윤동주 詩라고 보내드린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보셨습니다       저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김준엽의 "내 인생에 황혼이 ...

    행복한 가을
  • "최악의 대선 2차 토론의 패자는 미 국민이다"

    [박영철의 국제 경제 읽기] 美 대선 2차 토론의 승자와 패자 (애틀랜타=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학교 교수) = 지난 10월 9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소재한 워싱턴 대학교에서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미국 대선 2차 토론이 치러졌다. 오늘 칼럼은 다음 3...

    "최악의 대선 2차 토론의 패자는 미 국민이다"
  • 백악관 텃밭에서 만난 미셸 오바마 file

    ‘뉴스로’ 백악관 생생 취재   백악관=뉴스로 윌리엄 문 칼럼니스트 moonwilliam1@gmail.com     백악관 텃밭(키친가든) 속으로 들어가 고구마 잎을 만지고 주렁주렁 달린 빨간 토마토에 눈 맞춤을 하고 서양 고추밭에 서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에...

    백악관 텃밭에서 만난 미셸 오바마
  • 대학교수들 ‘이승만 하야’ 최초 요구 file

    <下>미국의 이박사 제거작전 막전막후   뉴스로=김태환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강력한 라이벌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켜서 이 박사는 수월하게 당선을 기대했는데 또 다른 야당의 조병옥 대통령 후보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 있다가 병세 악화로 죽어서 ...

    대학교수들 ‘이승만 하야’ 최초 요구
  • 한국 언론의 '필화 70년' (1)

    해방 직후부터 수난의 길, 한국 언론의 '필화 70년' 만담가 신불출 '신탁통치 미국이 큰코다치지' 만담에 만신창이 올해 4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70위를 기록하고 있는 등 한국의 언론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KB...

    한국 언론의 '필화 70년' (1)
  • 한미 양국은 북한과 평화협상에 나서라! file

    [시류청론] 북한의 힘 길러준 한미 대북정책 폐기해야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세계의 핵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실험 이후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자, ‘우드로 윌슨 센터’ 제인 하머 소장(민주, 전 연방하원의...

    한미 양국은 북한과 평화협상에 나서라!
  • 명석한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2) file

    실패에 미련두기, 차별, 경영능력 부족 등은 마이너스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지난호에서 이어짐) 다섯 번째의 실패 이유는 불운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영리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불가항력적인 환경의 돌출로 인하여...

    명석한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