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NYT 대서특필
뉴스로=노창현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뉴욕타임스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사상 유례없는 대한민국의 국정농단 스캔들이 해외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물론, 지구촌 한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론지 뉴욕타임스가 28일 대서특필하자 미주 한인들은 당혹감을 가누지 못합니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대통령 스캔들을 전하며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을 수정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며 “이 ‘어둠의 충고자(shadowy adviser)’는 무당(shaman fortuneteller)으로 의심받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 벌어진 국정농단과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대통령과의 40년 인연 등 최근 한국언론이 잇따라 보도한 내용들을 빠짐없이 소개했습니다.
jtbc 화면 캡처
많은 한인들은 “지금까지 뉴욕타임스가 수많은 한국 소식을 다뤘지만 이렇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것은 처음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지도자에게 휘둘려 스캔들의 한 가운데 서게 된 것이 엄청난 충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엔 SF소설이나 공상과학(Syfy) 채널에서나 봄직한 단어들과 일국의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났다고 믿기엔 너무나 참담한 표현들이 줄을 잇습니다.
“불투명한 인물, 최순실은 보안허가권(security clearance)이 없는 민간인이었지만 대통령에게 막강한 영향을 휘두르고 있다..”
“대통령 보좌관들이 최순실 앞에서 굽실거리고(kowtowing) 명령을 받고 있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대통령이 특정한 날 어떤 종류와 무슨 색깔의 옷을 입을지 최순실이 일일이 결정했다..”
“대통령은 극소수 믿는 사람외엔 소통하지 않는 불통의 지도자(disconnected leader)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박대통령은 오랫동안 최태민이란 인물과 ‘충격적인 소문(lurid rumors)’에 휩싸여 있었다. ‘한국의 라스푸틴’에 비견되는 최태민이 과거 박 대통령의 심신을 지배했으며 대를 이어 딸 최순실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 화면 캡처
“영생교라는 모호한 종파의 교주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수여사가 사망한 1974년이후 40년동안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최태민은 자신의 꿈에 박대통령의 어머니가 나타나 도와주라고 했다는 편지로 접근했다..”
“전직 (일제시대) 경찰인 최태민은 7개의 이름을 쓰고 6번을 결혼했으며, 1994년 82세로 사망할때까지 박대통령의 정신적 멘토였고 새마음운동으로 불리는 친정부조직을 이끌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최태민을 박근혜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사이비목사(似而非牧師)로 지목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를 1979년 암살한 중정부장 김재규는 박근혜와 부패한 최태민을 떼어놓지 못한 것에 암살의 이유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순실은 박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며, 내각 임명과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의 중대한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게 없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등장한 라스푸틴(1869-1916)은 러시아 제정 말기의 수도사(修道士)였습니다. 황태자의 혈우병을 호전시켜 황실의 신임을 얻은 그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알렉산드라 황후가 심한 신경쇠약으로 라스푸틴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자 이를 이용해 니콜라이 2세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농민들로부터 가혹한 세금을 거둬들여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웠고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총탄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결국 라스푸틴의 폭정(暴政)을 견디다 못한 반대세력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 당합니다.
최순실 스캔들에서 고려말 공민왕의 신임을 업고 권세를 휘두른 승려 신돈(辛旽 1322-1371)과 조선조 재상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鄭蘭貞 ?-1565)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요즘 TV드라마 옥중화(獄中花)에서도 등장하는 정난정은 조선 명조때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윤원형과 정난정의 자녀들과 앞다투어 혼인줄을 놓기도 했습니다. 문정왕후의 신임 덕분에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작호까지 받았으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 사림의 탄핵을 받아 자결로 생을 마감했지요.
흥미롭게도 공민왕과 신돈의 인연은 박근혜-최태민처럼 꿈이 계기였습니다. 공민왕이 어느 날 꿈에서 누군가의 칼에 죽기 직전 자신의 생명을 구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를 꼭 닮은 사람이 신돈이었습니다.
당시 사랑하는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방황했던 공민왕은 신돈을 '신승'으로 여기며 왕의 사부(師傅)로서 국정을 맡겼습니다. 신돈은 권세가와 호족들이 불법으로 탈취한 전답과 노비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등 기득권 세력을 개혁하기도 했으나 권문세가의 원한을 사게되었고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 공민왕을 암살하려다 발각되어 참살(慘殺)되었습니다.
라스푸틴과 신돈, 정난정.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최순실의 국정농단 정황(情況)도 라스푸틴과 신돈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봉건왕조에서 군주의 절대적 신임속에 전횡(專橫)을 휘두른 반면, 최순실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인했듯) 봉건왕조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라스푸틴과 신돈도 울고갈 판국입니다. 수도사였던 라스푸틴과 승려였던 신돈이 기성 종교인들이었다면 최순실은 사이비종교 교주의 ‘무당급’ 딸이라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인간승리(?)라고 해야할까요.
SBS-TV 화면 캡처
독일로 도피했던 최순실이 30일 급거 귀국했습니다. 한국 언론은 물론, 외국 언론까지도 그녀를 추적하는 상황에서 딸과 손자, 말과 개, 고양이 등 동물농장(?)을 이끌고 더 이상의 잠행(潛行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분노한 국민들로부터 하야 요구를 받는 ‘언니 박근혜’가 그녀의 생명줄인만큼 일정부분 죄를 덮어쓰고 방패(?)가 되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의 시녀노릇만 했던 검찰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대다수 국민들도 현 상황에서 특검도 아닌 검찰이 진실의 전모(全貌)를 밝혀내는 대신 ‘적당한 봉합(封合)’으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예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의 괴이한 관계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미진(未盡)할수록 여론의 역풍(逆風)은 10배, 20배로 커질 것이며, 대한민국 국격을 땅에 떨어뜨린 무늬만 대통령 ‘박근혜 퇴진’을 부르짖는 분노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게 울려퍼질 것입니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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