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프랑스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제1야당 공화당(LR)과 중도우파 경선대회가 오는 11월 20일과 26일 각각 실시될 예정이다. 11월 26일 2차 투표의 우승자가 차기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 일종의 ‘미니 대선’으로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시점에서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2017년 대선결승전 시나리오는 우파 대 극우파의 대결로 그려진다. 현 좌파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로 곤두박질하면서 우파 후보가 차기대권을 거머쥘 확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 우파의 ‘별들의 전쟁’
프랑스 정치사에서 우파 경선은 처음 실시되고 있다. 좌파 PS당이 2011년 미국식 경선대회를 도입했으나, 이전에도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정해왔던 터이다. 반면 우파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우두머리를 대선후보로 직접 추대해왔던 것이 관례였다. 전례 없는 이번 우파경선은 전직대통령과 전직총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후보로 대거 참여하여‘별들의 전쟁’으로까지 비유한다.
바로 2011년 좌파경선과는 다른 양상이다. 당시 좌파후보들은 전직 장관출신 두 명을 제외하고 국정경험이 없는 신참내기들이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던 올랑드 후보 역시 국정경력은 전무였다. 같은 해 5월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스트로스-칸(DSK) 전 IMF총재의 뉴욕소피텔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올랑드의 지지율은 불과 3% 수준에 머물렀었다.
당시 우파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선을 유지했던 상황이다. 즉 현직대통령의 한 자리 숫자 신임도, 깨진 조각들을 반창고로 붙여서라도 PS 집권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하는 전대미문의 정치판도 속에서 우파경선이 치러지고 있다.
▶ 국민신임도 4% 대통령
최근 발스총리가 올랑드대통령을 ‘좌파의 치욕’으로 공식적으로 비난하면서 현 정권이 분열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 19일 공개된 두 르몽드 기자들의 저서 ‘대통령이라면 발설하지 말아야했을 말들(Un président ne devrait pas dire ça)’에서 발단한다.
올랑드는 지난 4년 6개월 동안 르몽드지의 두 기자와 60차례 정규적으로 만나 대통령으로서 겪는 고충과 내심을 털어놓았다. 이 고백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놓고자 쌍방의 협상아래 녹음까지 허락했다는 점에서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책자의 출판시기였다.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둔 올랑드는 전략상 5년 국정임무를 정리하고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내년 5월에 책자로 발행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대통령으로서 발설하지 말아야했을 말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만 것이다. 올랑드로서는 ‘르몽드지는 내 신문’이라며 굳게 믿었던 도끼에 그만 발등이 찍혀버린 것이다.
문제의 책자에는 ‘프랑스에는 정말 쓸데없이 이민자들이 많다’는 극우적인 발언, 가난한 서민층을 두고 ‘이빨 없는 자들(sans dents)’이라는 야유적인 표현 등 좌파 이념과는 상반된 내용들도 포함되어 대통령의 최측근마저 경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 반-사르코지 정서
2012년 대선에서 올랑드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첫 공로자는 안티-사르코지 정서의 물결이었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현재 올랑드대통령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것도 그만큼 지지기반이 약했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프랑스 국민정서에 반-사르코지 정서는 여전히 깊이 스며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는 지지부동층도 20% 선에 이른다고 Ipsos 여론조사기관장이 밝혔다. 대선 2차 결승전에도 진출할 수 있는 비교적 높은 포인트이다.
지난 10월 9일 사르코지의 경선유세장 파리 제니트공연장에는 6천여 명이 몰려들었고, 그들의 챔피언을 향한 열광은 아주 대단했다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사르코지의 팬클럽은 유명 할리우드스타의 팬클럽 못지않게 히스테릭할 정도로 열정적인데, 다른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드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 차기대권은 알랭 쥐페?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시점에서 알랭 쥐페가 우파경선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경주자 사르코지도 넉넉하게 따돌리고 있다. 일부 미디어는 아예 차기 대통령으로 알랭 쥐페를 물망에 올려놓았다. 승리를 예감한 쥐페 진영도 요즘은 차기 총리와 내각결성, 2017년 총선준비로 움직임이 부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좌파정권의 위기가 쥐페 후보에게는 유리한 상황으로 부각된다. 전직, 현직 대통령에 대한 안티감정의 타고 ‘노장의 지혜와 침착함’이라는 이미지로 일부 유권자들의 성난 가슴을 달래주고 있다. 대선후보로서 72세라는 고령의 나이,케나다로 정치망명을 떠났던 과거전력이 핸디캡이 될 수 있음에도, 전직, 현직대통령을 향한 반감이 한층 강하여 문제화되지 않는 듯싶다.
쥐페는 1990년대에 파리시청 유령직원들을 고용하여 챙긴 불법정치비자금으로 2004년에 14개월 집행유예와 1년 정치활동금지 선고를 받았다. 이런 전과기록이 언제고 그의 발목을 붙잡는 굴레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분열하는 우파진영
우파경선은 1,2위를 달리는 쥐페-사르코지의 경주대회로 압축된다. 두 후보들의 경선정략을 보자면, 쥐페는 대선결승전에 진출한 후보의 전략으로 좌파와 중도파의 표심을, 사르코지는 경선후보로서 LR당 지지유권자의 표밭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좌파와 중도파 진영은 쥐페를, 우파와 극우파 진영은 사르코지를 선호하는 양상으로 분열된다.
쥐페 진영은 올랑드정권에 실망한 좌파유권자들에게 우파경선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대로라면, 쥐페의 이러한 정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다. 2012년 올랑드에게 투표권을 행사했던 유권자들이 쥐페에게 표심을 돌리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진영은 쥐페가 ‘우파의 올랑드’라며 맹추격하고 있다. 격분한 사르코지 팬클럽은 우파경선에 좌파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반칙이라며, 좌파의 참여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렇듯 1,2위 경주자들의 쌍방전은 치열한 편이다. 5년 전 올랑드 좌파후보처럼, 쥐페 진영도 안티-사르코지 정서를 고취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에 사르코지 팬클럽은 2017년 대선결선이 쥐페-르펜 양자구도일 경우 차라리 극우파에게 투표권을 행사하겠노라며 맞서는 상황이다.
구심점을 잃은 좌파유권자들은 차기 우파대통령으로 사르코지보다는 차라리 쥐페가 낫다는 심정으로, 극우파는 르펜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사르코지가 낫다는 심정으로 우파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추정된다. 투표참여율이 높을수록 쥐페가, 낮을수록 사르코지가 우세할 것이라고 여론조사전문가들이 내다봤다. 그러나 투표당일 어떤 진영의 유권자들이 대거 동원될지 미지수라며 여론조사결과에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마크롱, 제 3의 변수?
반 정치시스템주의자로서 인기몰이를 하는 마크롱 전 경제부장관의 카드도 간과되지 않는다. ‘나는 좌파이지만 PS당원은 아니다’라고 표명한 후, 집권당과 거리를 둔 마크롱은 우파의 경선결과를 지켜본 후 2017년 대선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도파를 집중공략하면서 극좌파로부터 극우파까지 전반적으로 표심을 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현재 마크롱 바람이 대선향방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미지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마어마한 대선자금을 지원할 정당, 즉 기존정치시스템의 뒷심이 없다는 점이 그의 핸디캡으로 불거지고 있다.
한편 해외거주 유권자들의 우파경선 인터넷투표 신청이 지난 10월 16일자로 등록마감 됐다. 2011년 좌파경선에 7천 명이 참가했던 것에 반하여, 우파경선에 6만 명이 선거등록을 마친 것으로 집계된다. 이 숫자만 보더라도 우파경선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성마른 각종 여론조사의 예고보다는, 각 경선주자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정확한 동원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1월 20일과 26일 선거당일 투표함 뚜껑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할 것이다. 이때 차기 프랑스대통령 얼굴윤곽의 초벌그림도 대충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시점에서 프랑스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현안은 이슬람테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느 때보다도 이슬람과 실업문제에 맞서 뚝심 있는 강한 정권이 기대되는 분위기이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