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왜 한마디 말이 없오.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의 ‘어느 노부부의 노래’가 잔잔히 귓전에 울리는 듯 하다.
홀로 두고 먼 길 떠나는 남편을 차마 보내지 못하는 아내는 이내 담담히 받아들인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보드라운 손을 잡고 손등을 쓸어내리는 아내의 눈가엔 이슬이 촉촉이 맺혀있다.
마치 어제처럼 편안히 눈을 감고 잠들어 계신 듯 하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다시 눈을 뜨고 반겨 맞을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11월 1일 10시30분, 한묵 화백이 낙엽이 물드는 가을 속으로 영면의 길을 떠났다.
“선생은 오늘날 보기드문 고고한 예술가다. 오로지 화가로 살고 또 화가로 죽을 것이다. 나라니 교직이니 치부니 권위 따위에 얽매임 없이, 낯선 사람들로 웅성이는 파리에서 평생을 그림이라는 퍼포먼스로 보내고 있다. 그래서 선생의 그림은, 그 퍼포먼스가 남긴, 티없이 반짝이는 파편들로 보인다. 우리는 이 보석같은 파편들 앞에 서면 예술이 무엇인지,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숙연히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선생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신화이고 보배이다.”
한묵 선생님에 대해 이우환 화백이 남긴 글처럼 당신의 생은 고고한 학처럼, 절개있는 소나무처럼, 한 세기 넘는 질풍노도의 시기와 세상의 수많은 변화와 역경들을 겪고 지켜보며, 묵묵히 그리고 굳건하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키며 살아 오셨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과 강직함, 그런 이면에 자상한 모습은 우리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한묵 화백의 소중한 작품들과 발자취는 역사 속에 길이 남겨질 것이다.
또한 한묵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재불 예술인들은 물론 프랑스 한인들의 마음에 영원토록 각인되어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故한묵 화백 장례안내
프랑스 한인회는 11월 1일 향년 102세(1914년생)의 일기로 영면한 한묵 선생님(본명 한백유) 의 장례식을 "프랑스한인회장" 으로 치루기로 유족측과 협의 하였습니다.
102세의 현역 추상화가이자 최고령 한국 예술가로 알려진 한묵선생님은 이날 10시 30분경 숙환으로 별세했으며, 부인과 평소 가깝게 지낸 미술 협회 회원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과 함께 그간 못다한 작품세계를 하늘나라에서라도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애도의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1955년 홍익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1961년 교수직을 버리고 파리로 오게 되었고, 거장 이중섭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 예술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또한 초대~3대 한인회장으로서 프랑스 한인사회의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프랑스 한인회는 아래와 같은 장의위원을 선정하여 이번 장례식을 적극 도와 협조 하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소나무 협회와 청년작가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실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장례식 진행은 11월 2일 부터 4일까지 매일 14시 - 19시까지 한인회관에 빈소를 만들어 조문객들을 받고 추모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많은 분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시 15분 입관예배
10시 45분 병원 출발 Hopital Saint Antoine
11시 30분 ~ 12시 : 열결식
Crématorium du Père -Lachaise
71 rue des Rondeaux - Paris 20.
추모식 : 11월4일 금요일 18시 – 한인회관
빈소운영 : 11월2일~11월 4일 (14h~19h) - 한인회관
장의위원회
위원장 : 이상무 프랑스한인회장
위원 : 권순철, 조돈영, 진유명, 고송화, 정하민, 곽수영, 한홍수, 한요한, 이영배, 방혜자, 이우환, 오천룡, 김창렬, 이주덕, 이철종, 김제옥, 김화영, 한영철, 박창근, 조만기, 주종오, 신재창, 박광근, 최태호, 김현주, 오수연, 박홍근, 서정호, 신승섭, 심승자,김형수, 변정원, 조르즈 지켈메이어, 함미연, 이미정, 홍성부, 박현선, 한연미, 박세연, 박지은, 이상구, 이종선, 이석수, 정락석,오영교, 강승범, 김기만, 박광진, 오원배 (이상 무순)
【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