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혼자만의 대한민국인가?
민주사회 반역자 박정희, 그의 딸 박근혜가 18대 대선후보로 출마했을때, 수많은 시민들은 이 모순된 정치현상에 대해 한탄(恨歎)했습니다. 이 후 전개되는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과 정부기관의 정치개입으로 인해 대통령 선출의 순수성은 이미 오염되었고, 헌법정신은 붕괴되는 중대한 국기문란이 발생했습니다. 박근혜가 후보시절에 내놓았던 국민대통합은 지금 통합은커녕, 국민을 개.돼지화해 갈갈이 찢어져 있습니다.
친일 반역자 역사 세탁해 면죄부 주는 건국절 법제화 시도와 역사왜곡하는 국정화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파괴하고, 국가를 친일 민족반역자의 국가로 전락(轉落)시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그 어느때보다 대화의 단절로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북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대화를 하려하기 보다는 북한의 도발을 오히려 유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인권 존중은 이미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물대포 직사에 의한 사망, 위안부 문제 등으로 국가는 국민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헬조선으로 막장국가화 되었습니다.
권력의 2인자 우병우의 국정농단과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은 밤의 대통령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창조경제의 전도사 차은택은 문화계의 황태자로 대기업의 발목을 비틀어 강제기금을 모아 미르재단을 설립, 박근혜 퇴임이후 활동을 보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국감에 미르재단, K 스포츠 증인채택도 철벽방어로 유령국감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돼서는 안될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은 지금 처절한 업보(業報)를 되돌려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은 문대골 목사가 2012년 대선출마 경선자 박근혜에게 보냈던 공개서한 입니다. 다시한번 일독하시기를 추천합니다. 2016. 10.21. 미동부민주포럼 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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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혼자만의 대한민국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됩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필자가 박근혜 님께 이 같은 공개서한을 드리게 된 것은 지난 7월 1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박근혜 님께서 하신 것으로 보도된 답변 내용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박근혜 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5.16 당시를 돌아볼 때 국민들이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가난한 나라로 힘들게 살았고, 안보적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어서 박근혜 님께서는 "그 후 나라 발전이나 오늘 한국이 있기까지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믿는다" 했습니다.
체제를 두고서도 "유신 기간의 국가 발전 전략에 관련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님, 필자는 5.16과 유신에 대한 이 같은 박근혜 님의 발언 기사를 읽고 나선 한동안 멍했고, 그리곤 이내 이를 악물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아, 아직도 5.16이 계속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문제는 박정희가 아니라 박근혜로구나!' 했습니다.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 하고, 백척간두에 놓인 나라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다면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박근혜 님. 설령 100보, 1000보를 양보해 박정희 씨의 군사 반란을 용납한다하더라도 그것은 뼈를 깎는 부끄러움을 전제로 하고 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구국의 영단', '최선의 선택' 운운한다면, 그리고 그런 이에 의해 정권이 장악된다면 도대체 나라는 어디로 가며 어떻게 될 것인가요? 박근혜 님의 그 발언에 지금도 필자의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당신 아버지의 그 분명한 역사적인 범죄를 금번 대선을 통해 오히려 구국의 결단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당신의 의도로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님, 그렇다면 그것은 좌시할 수 없는 반역사, 반민주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근혜 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수호하려는 열심이 딸로서 효(孝) 이상 이하도 아니라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박근혜 님의 아버지에 대한 변호가 5.16에 미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박근혜 님과 박정희 씨의 관계에서 필자와 박정희 관계로, 민주주의와 독재, 군부 반란과 민주 정부의 관계로 달라지기 때문이요, 그것은 역사와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인격들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5.16은 혁명이 아니라 칼놀음이었다
5.16이 무엇입니까? 군사 반란 아닙니까?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어찌 기독교의 경전만입니까? 모든 고등 종교의 경전들의 예외 없이 사람이 하늘임을 증언합니다. 사람 안에 하늘(대우주)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아버지를 필두로 한 5.16의 무리들이 들고 나선 것은 칼이었습니다. 칼은 죽이자는 것입니다. 박정희와 그의 무리들이 칼을 뽑아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잘했거나 못했거나 5.16은 칼놀음이었습니다.
칼을 뽑아 들었다면 이미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박근혜 님, 혁명과 반란이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혁명의 주체는 언제나 민중입니다. 옛날에도 이제도 민중은 싸움에서 그 몸을 내댑니다. 결코 칼을 쓰지 않습니다. 칼을 쓰지 않는 것은 그 대적(?)을 같은 인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민중입니다. 때 잘못 만나 너요 나요 하며 서로 싸우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같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반란은 언제나 흉기를 드는 것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군사 반란입니다. 왜 칼을, 왜 흉기를 듭니까? 죽이기 위해서 아닙니까? 죽이자는 것 아닙니까? 민중의 혁명과 군사 반란은 그렇게 다른 것입니다.
박근혜 님, 5.16이 혁명이라구요? 아닙니다. 5.16은 반란입니다.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서서 분명히 말하거니와 5.16은 반란입니다. 박근혜 님의 아버지는 반란의 주모자였고, 그 5.16을 최선의 선택이었다느니 구국의 결단이었다느니 하는 당신도 지금 그 반란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님은 당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5.16의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기가 막힌 무지요, 오만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당신의 입에서, 그것도 내로라는 언론인들이 운집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실상은 당신의 마음속에 '정권만 잡아봐라. 5.16은 혁명이었다고 확 바꿔 놓을 테니…' 하는 오기가 작동한 것 아닙니까?
미안하지만 박근혜 님, 역사는 소위 힘을 가졌다는 것들이 어느 때 어디에서 기록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기록이 어떤 계급, 계층에 의해서 되던 때가 있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따위 경우들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민중의 땀으로, 눈물로, 심지어는 형언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거치면서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5.16의 무리들의 경우 역사를 말하는 것마저도 부끄러운 일이지요.
당신 아버지와 맞서 싸운 내 아버지 함석헌
박근혜 님, 혹시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습니까? 필자는 열한 살 되던 해, 6.25의 참화로 부모를 잃었는데 하늘이 불쌍히 여겨 두 번째 아버지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함석헌입니다.
함석헌은 한국사에 특이한 인격으로 온 사람입니다. 박근혜 님의 아버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입니다. 함석헌과 박정희가 어떻게 다른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땅이 하늘에서 먼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이라는 것만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제 아버지 함석헌은 박근혜 님의 아버지 박정희와 20년을 대적하며 살았습니다. 5.16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5.16 군사 반란으로 민주합헌정부를 전복시키고 입법·사법·행정을 모조리 장악하고, 언론 기관까지 찍소리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며 온 나라 땅을 짐승 세상으로 이끌어갈 때, 당신 아버지를 향해 "한마디 하자"며 맨몸, 맨주먹으로 대들었던 민족의 큰 이름이셨습니다. 그는 당신의 아버지를 향해 5.16을 4.19와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맨주먹으로 일어났다. 이번은 칼을 뽑았다. 그때 믿은 것은 정의 법칙,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양심의 권위, 도리였지만 이번에 믿은 것은 연알(총알, 필자 주)과 화약이다. 그만큼 낮다. 그때는 민중이 감격했지만 이번은 민중의 감격이 없고 무표정이다. 묵인이다. 그때는 대낮에 내놓고 행진을 했지만 이번엔 밤중에 몰래 갑자기 됐다."
"학생이 잎이라면 군인은 꽃이다. 5월은 꽃달 아닌가? 5.16은 꽃 한번 핀 것이다. 꽃은 찬란하기가 잎과 비교할 수 없다. 저번은 젊은 목청으로 외쳤지만 이번은 총칼과 군악대로 행진을 했고 탱크로 행진했다. 그러나 잎은 영원히 길어야 하는 것이지만 꽃은 활짝 피었다가는 깨끗이 뚝 떨어져야 한다. 화락능성실(花落能成室)이다.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5.16은 빨리 그 사명을 다하고 잊혀져야 한다…."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 전적 찬성, 전적 참여 없이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독재는 있을 수 없다. 민중의 의사를 무시하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성의로 했다 해도 참이 아니다. 또 민중의 의사를 모르고 하는 것이 자기네로서는 아무리 선이라 하더라도, 또 사실 민중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의(誠意)는 아니다. 강아지를 아무리 잘 길러도 그것이 참사랑은 아니다. 참사랑은 내가 저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제가 또 나를 좋아하도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중을 동물로 사랑하고 기르고 불쌍히 여겨서도 '성의(誠意)'는 아니다. 그는 때리면서라도 사람으로 대접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민중을 내놓고 꾸미는 혁명은 참혁명이 아니다. 반드시 어느 때 가서는 민중과 버그러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즉 다시 말하면 지배자로서 본색을 나타내고야 만다. 그리고 오래 속였을수록 그 죄는 크고 그 해는 깊다(1961. 7. 사상계 '5.16을 어떻게 볼까')."
박근혜 님, 제 아버지 함석헌의 글 '5.16을 어떻게 볼까'의 일독을 정중히 권합니다. "5.16은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당신이 반드시 한 번쯤은 읽어 보셔야 할 정말 귀중한 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아버지 함석헌의 글 한 곳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5.16 혁명 공약의 행방"이라는 글 속의 "5.16은 혁명이 아니다"라는 작은 제목의 글입니다.
"5.16은 혁명이 아니다. 우리는 또 한 번 목소리를 높여 외칩시다. 5.16은 혁명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이 혁명이라면 큰일입니다. 정신도, 뜻도, 도리도 다 없습니다. 그 일을 만들어 낸 그 일파와, 너절하게 도둑놈의 것 나누어서 얻어먹는 추종자들은 그것을 애써 혁명이라 하고 공문서, 신문, 강연 등 갖은 수단을 통해 변명 선전을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 혼이 살아있는 한 그런 것을 허락해 둘 수는 없습니다. 7, 8년이 되어 일이 굳어질 대로 다 굳어진 오늘, 혁명이라면 무엇 하며 폭동이라면 무엇 하느냐고, 큰 마음먹은 듯이 체념의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큰마음이 아닙니다. 멍청입니다. 10년 후라도 100년 후라도 밝혀내야만 하는 큰일입니다. 글자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의 싸움이요 역사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물고 뜯고 할퀴다가 힘이 모자랐거나 피곤한 잠을 자다가 얼결에 억울한 강간을 당하고도 멍청히 울고 있으면 정말 정조 없는 계집이 돼 버리고 맙니다. 분명히 '놈은 짐승이다' 하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설혹 죽어도 사람이고 그놈은 비록 제 맘대로 살더라도 짐승입니다. 창피한 것을 말해 무엇 하느냐, 말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 내가 지켰으면 되지 할는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은 혼자의 생명이 아니요 정신도 홀로의 정신이 아닙니다. 정신은 남 속에 살려서만 살아있고 역사는 후의 자손에게 주어서만 역사입니다. 역사는 결코 일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악독한 지배자들이 민중을 맘대로 짜먹으면서도, 평안한 잠을 못하고 그 지정머리가 도둑질이 아니라고 변명 선전하기에 애를 썼습니다. 우리는 5.16에서 강간을 당했는데, 그리고도 우리가 동의해서 됐다고 나라 안팎에 선전을 하는데 어찌 가만있어 되겠습니까?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전집 17, 185, 186)."
박근혜 님, 그리고 함석헌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오월의 햇빛을 바라고 갸웃해 웃는 아욱꽃을 네가 칼로 자를 수 있느냐? 칼은 다하는 날이 와도 웃는 아욱은 영원히 아니 없어진다!
오일육(汚一戮)아!"
박근혜 님, 함석헌은 5.16을 한글로 오일육이라 쓰고, 그리고 괄호를 열어 汚一戮이라고 한문을 달았습니다. '더러운 살육'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 이 원수 놈의 5.16아!"라는 울부짖음입니다. 그런데 박근혜님은 함석헌의 그 5.16을 당신 아버지의 구국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했고, 구국의 결단이라 했습니다. 총과 화약으로 민주 헌정을 전복한 군사 반란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도 민주주의 신념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님,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民主)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3.1 정신과 4.19를 계승하는 국가로 헌법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님, 필자가 박근혜 님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필자는 박근혜 님의 인생의 멘토였다는 최태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필자가 민중답지 못해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났던 겁니다. 그는 정말이지 제가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최태민을 만나게 된 동기를 말씀드리기 위해 필자의 신분을 간단히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필자는 1940년생으로 1957년 4월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해병대 지원 입대, 1959년 11월 29일까지 군복무를 필했고, 1971년 한양신학교와 웨슬레신학교라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두 신학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고 당시 도봉구 상계동에 생명교회(예수교대한감리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섬기기를 열심히 했고, 교회는 튼튼히 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1976년이 되었습니다. 이 1976년 연회(예수교감리교총회)에서 필자가 감독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말이 총회지, 전국 교회 50개도 되지 않는 교단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어쨌든 총회의 대표는 대표입니다.
하루는 총회의 한 실행위원으로부터 "최태민 총재께서 감독님을 좀 만나 뵙고 싶어 하시는데 한 번 만나주시겠습니까? 자리를 제가 만들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알고 보니 저와 최태민이 동석하는 자리를 만든 우리 총회의 그 실행위원은 이미 당신과 최태민이 총재와 명예총재를 번갈아가며 맡아 한 구국봉사단의 사회국장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필자는 안내하는 목사를 따라 후에는 새마음봉사단인가로 그 이름이 바뀌는 어떤 곳을 거쳐, 광화문 한 건물로 안내를 받아 갔습니다. 노인이라하기에는 아직 이르게 보이는 아주 듬직한 몸집의 인사를 만났습니다. 안내했던 우리 쪽 유 아무개 목사가 "감독님, 최태민 총재님이십니다" 하고 소개를 했습니다.
박근혜 님, 그런데 말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 문대골 목사입니다" 하는 제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뭐랬는지 아십니까? "거, 문 목사도 반정부 운동하시오?" 하고 잠시 뜸을 들이는 듯하더니 "국가를 반역하는 놈들…문익환이 박형규, 함석헌이 모두 다 광화문에서 총살시켜야 할 놈들이오" 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님, 그때 필자의 심정은 철퇴로 뒤통수를 맞은 듯했습니다. 그 다음해 1978년 필자는 예수교감리회를 떠나 한국기독교장로회로 소속 교단을 옮겼습니다. 군사정권과 혈투(血鬪)를 위해서였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역사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다"는 아주 분명한 신학 사상을 가진 신앙 공동체였으니까요. 박정희와 최태민은 적어도 필자에겐 쌍태아였습니다.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폭력배들이었습니다.
박근혜 님, 구약성경 창세기에 노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야훼는 노아의 시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를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고 말입니다. 창세기 6장 12절은 구체적으로 세상을 쓸어버릴 수밖에 없는 당시의 죄가 무엇이었는가를 증언합니다.
<표준새번역 성서>는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했는데, <개역 성경>에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충만한지라…" 했습니다. <새번역 성서>의 '무법천지', <개역 성경>의 '강포'는 힘 있는 놈들이 맘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힘없는 것들이 찍소리 못하는 세상입니다. 강포, 힘의 악용은 5.16 이후 군사 정치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박근혜 님, 당신은 어떤 자리에선가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만은 제가 만난 최태민은 천하에 둘도 없는 완전히 조폭의 수괴 같은 자였습니다. 하긴 최태민이 광화문네거리에서 총살시켜야 할 놈들이라 한 그 함석헌, 문익환, 박형규라는 분들은 죽을 때까지, 죽기로 당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군사반란 5.16을 몸으로 거부한 이들이었으니, 그 5.16을 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느니 구국의 용단이었다느니 하는 당신의 입장에선 그 최태민을 고마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당신이 그렇게 예찬하는 5.16 군사반란의 주모자 아버지 박정희, 적어도 한 시대를 초월한 의인들을 광화문네거리에 총살시켜야 할 놈들이라며 입에 거품을 무는 최태민, 그리고 그런 이들을 원호하는 박근혜 님은 민주주의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2012년 당신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박근혜 님의 개인적인 어떤 행위들, 심지어는 5.16 유신으로 이어지는 기간의 당신 아버지의 동지(?) 중에 있었던 적고 큰 범과들에 대해서는 정말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유신 체제'의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오직 하나 문제 삼는 것은 5.16입니다. 5.16은 누가 뭐래도 힘의 철학이 작동한 것이었습니다. 논리도 합의도 다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칼 뽑아 들고 나를 따르라'였습니다. 그것은 정말 한 가지 방법 말고는 용서받을 수 없는 반란이요 범죄였습니다.
5.16은 민주사의 반역이었다고 말하라
박근혜 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말은 사람이야말로 절대 의지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절대 의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사람 안에 절대 의지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것을 '속의 빛'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그 빛의 조명을 받아 살아갑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안에도 그 빛이 존재합니다.
5.16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그 빛을 무시,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칼을 뽑아 들고 호령한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입니다. 자기 때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을 예감한 예수는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는데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올라왔습니다. 예수께서 완전무장한 병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예수를 잡기 위해 올라온 병사가 예수를 포박하기 위해 붙잡습니다. 이때 예수 곁에 있던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잡으려는 자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조용히 베드로에게 이르십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박근혜 님, 5.16의 무리들에게 한 치 다름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힘자랑하고 망하지 않는 놈 없습니다. 역사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비결이 아직 있습니다. "5.16은 민주사의 반역이었다"고 지금 박근혜 님의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공개서한을 드리는 필자의 마음 역시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억울하고 분합니다. 당신의 그 5.16의 미화(美化) 때문에.
아, 너 오일육(汚一戮)아!
2012. 8. 8
문대골 /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